아이비리그 6개 대학 합격한 김시정 학생
는 공부보단 학문을 해왔다고 스스로 생각해요. 공부라 하면 성공하기 위한 수단으로 들리잖아요. 하지만 저는 순수하게 학문을 추구해 왔어요.”아직 소녀티를 못 벗은 꼬마 숙녀는 자신의 조기유학 성공 요인을 묻는 질문에 당찬 어조로 이렇게 답했다. ‘15세에 배움에 뜻을 두고(吾十有五而志于學)…’라고 했던 공자의 말씀을 떠올리게 하는 답변이다. 노대가에게서나 들을 법한 이런 ‘학문관’을 피력한 주인공은 올해 미국 대학 입시에서 하버드 대학에 합격한 김시정 학생. 서울 청담 중학교를 졸업한 후 2006년 조기유학 길에 올랐던 김 양은 이번 입시에서 하버드를 포함, 아이비리그 6개 대학에 합격했다. 조기유학의 전형적인 성공 케이스를 보여준 김시정 학생을 만나 유학 성공담을 들어봤다.“중학교 때는 공부를 벼락치기로 했어요. 평소엔 공부를 하나도 안 하다가 시험 전날 밤을 꼴딱 새고는 했죠. 그렇게 해서 운 좋으면 전교 5등 안에 들기도 하고, 운이 안 좋거나 졸리면 시험을 망치고 그랬죠. 국문학, 한문, 영어, 중국역사, 수학을 좋아했어요. 그렇지만 공부를 즐기면서 하고 그런 건 아니었어요. 취미로는 락, 재즈, 블루스 등의 음악을 많이 즐겼어요. 중학교 3학년 때 베이스 기타를 시작해서 지금까지 쭉 하고 있어요. 커서 글을 쓰거나 작곡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그다지 깊게는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초등학교 6학년 때 의사이신 아버지(김재도·49)께서 UCSF에 1년간 펠로우십을 가게 되셔서 샌프란시스코에서 1년 동안 공립학교를 다녔어요. 한국 초등학교와는 달리 마치 대학교를 다니는 것처럼 좋았죠. 그 때 공부도 안하고 친구들이랑 놀기만 해서 미국생활은 다 그런 것인 줄 알고 유학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보다 직접적인 동기는 남동생이 5학년 때 미국 보스턴 근교의 명문 사립 중학교로 서머를 갔다가 스카우트돼서 그 해 갑작스럽게 유학을 가게 된 사건(?)이었어요. 워낙 미국 학교생활을 동경하던 중에 동생이 먼저 떠나는 것을 보고 나니 샘이 나서 부모님께 저도 유학 보내달라고 졸라댔죠.”“사전 준비가 거의 없었어요. 미국에 유학 중인 사촌 언니의 가디언에게 학교 선정을 다 맡기고, SSAT도 형편없게 본데다 2번째 본 성적이 더 나빴는데도 학교에 보내는 실수까지 했죠. 몰라도 너무나 모른 거죠. 간신히 한 학교에만 합격했는데, 그 학교는 제 중학교 내신 성적과 제가 하는 얘기에 대해서 엄청 호감을 보이더라고요. 갑작스럽게 유학을 준비하게 돼서 SSAT 준비 못한 걸 설명했더니 다른 학교와는 달리 자세히 들어주더라고요. 인터뷰 후 점심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해서 느낌이 좋았죠. 지금 생각해 보면 인터뷰를 잘해서 합격한 것 같아요. 떠나기 전에 어학 공부는 ‘Friends’, ‘Gilmore girls’ 등 미국 드라마를 매일 본 것이 도움이 됐어요.”“제가 어렸을 때 미국에서 1년 살아본 경험이 있는데다 워낙 미국 드라마를 많이 보고 영어로 된 곡들도 많이 듣고 해서 의사소통은 어렵지 않았어요. 어려웠던 점이라면 첫 학기 때 친구가 많이 없었다는 정도? 워낙 문화가 다르다 보니 농담 스타일도 다르고... 몇 달 지나니 자연스럽게 친구가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역시 다른 미국 애들이 친구를 만드는 것보다는 늦었죠.”“많은 과목을 듣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은 5~6개 과목을 9학년 때 정해서 12학년 때까지 수준을 점점 올리는 식으로 커리큘럼이 진행돼요. 쉬웠던 과목은 수학이었어요. 미국은 워낙 한국에 비해 수학 수준이 낮아서요. 반대로 어려운 과목은 문학이었죠. 친구가 두 장 쓸 시간에 저는 한 장 쓰고 했어요. 하지만 외국어로 글을 많이 쓰다 보면 언어에 대한 시야도 넓어지고… 이 때 영문학을 많이 좋아하게 됐어요.”“예를 들자면 제 역사 선생님이에요. 9학년 때, 역사를 처음으로 암기 중심이 아닌 해석 중심으로 배워 보았어요. 첫 시간의 주제가 ‘역사학자 되는 법’이었는데 고대 아테네에 관한 기록 자료들을 여러 개를 나누어 주시고 그것들을 해석해서 저희는 에세이를 썼어요. 나중에 더 고학년의 역사 수업에서는 토론을 해요. 학생들마다 믿는 바가 서로 다른 게 당연할 정도로요.11학년 때 프랑스에 교환학생으로 가서 다닌 미국학교에서의 영어 선생님도 정말 좋았어요. 헤밍웨이, 버지니아 울프 같은 작가들을 읽게 하고 그 작가들의 문체를 따라 저희가 글을 쓰게 하셨어요. 시도 써서 읊게 하고요. 작가가 장인이라는 개념도 머리에 새겨 주셨죠. 하지만 미국 학생들 중에도 열심히 하지 않는 아이들은 정말 게을러요. 게다가 시스템이 억지로 시키지도 않고... 그런 애들은 수업 시간에 아무 것도 못 배우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한국에서 정해진 규율 안에서 공부하는 법을 배웠고 그게 정말 필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미국에 가서 깨우쳤죠.”“SAT1은 책을 많이 읽는 것 외에는 왕도가 없는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독서에 흥미가 있어야 하겠죠. 학원도 다녔는데 요령 위주로 가르쳐 주셔서 짧은 시간 배웠지만 도움이 꽤 됐어요. 하지만 독해 기본기가 없으면 학원 아무리 다녀봤자 소용없죠. SAT2 화학은 문제를 많이 풀어보면 시험 때 나오는 문제들이 다 낯익게 되더라고요. 솔직히 그다지 비법은 없어요. 미국 College Board가 SAT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기본 논리 능력을 측정하는 것’이라고 반박한다는데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요. 일단은 그 과목에 해당하는 학문을 좋아하고 거기에 능해야 해요. 그 다음에는 문제지를 많이 풀거나, 스스로 안하는 스타일이면 학원에 등록해서 시험 요령만이라도 익혀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교육이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보지는 않아요. 제 SAT 점수를 보면 저의 독해, 쓰기, 수학 능력을 잘 측정했다고 생각했거든요.”“우선 아이비리그 위주로 선정했어요. 2년 전 동생이 다니는 학교인 필립스 앤도버 아카데미의 오케스트라 연주회에 갔다가 레퍼토리 수준을 보고 제가 다닌 학교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죠. 당시 제가 너무나 좋아하던 라벨, 바버 등 현대 음악가들을 연주했어요. ‘역시 명문은 다르구나’하는 느낌이랄까요? 대학은 꼭 명문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러고도 막상 대학을 고를 때는 정말 고심했죠. 같은 아이비라도 예를 들어 컬럼비아는 노벨문학상 배출이 제일 많고 뉴욕을 좋아하는 개방적인 아이들이 많이 와서 좋아했어요. 유명한 작가들도 많이 나왔고 아이비 대학교로선 유일하게 문예창작이 전공으로 인정되는 학교구요. 그에 비해 프린스턴은 다른 매력이 있어요. 수학, 철학, 언어학 같은 순수학문은 프린스턴보다 더 좋은 곳이 없고, 대학원생이 거의 없어서 교수님들이 학부생에게 집중한다는 점도 장점이죠. 스미스 칼리지도 미술사로 유명해서 지원했어요. 대학을 선정할 땐 이런 식으로 대학교 사이트에 들어가서 사전 조사를 많이 해야 해요. 아무리 명성이 높다 해도 대학마다 자기한테 맞고 안 맞는 학교가 있거든요. 그리고 이렇게 사전조사를 하다 보면 대학 원서에 쓸 이야기도 많아져요. 다시 강조하지만 학교 사전조사는 ‘자신의 대학생활을 결정짓는다’는 생각으로 철저히 준비해야 해요. 스무살에서 스물네살까지, 너무 중요한 그 시기를 싫은 학교에 가서 지내면 시간낭비죠.아이비로는 하버드, 프린스턴, 컬럼비아, 브라운, 코넬, 다트머스에 합격했고 그 외에 시카고, 노스웨스턴, NYU, 웰레슬리, 스미스, 바나드에서도 합격 통지를 받았어요. 마지막에 하버드, 컬롬비아, 프린스턴, 브라운을 두고 고민했는데 하버드를 선택한 이유는 여럿이었어요. 첫째는 역시 국제적으로 최고라는 명성이었죠. 그게 안 좋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그게 다는 절대 아니에요. 학문과 나름의 스타일로 명성이 높은 캠브리지라는 도시에도 반했어요. 프린스턴은 학부 프로그램이 좋아보였지만 아무래도 제게는 너무 보수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에 비해 브라운은 너무 널널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프린스턴 투어 때 재학생들이 브라운을 비하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거든요.”“저는 공부보단 학문을 해왔다고 스스로 생각해요. 공부라 하면 성공하기 위한 수단으로 들리잖아요. 하지만 저는 순수학문을 추구해 왔어요. 결국 아이비 대학들도 학문을 하기 위한 터전이에요. 예전 우리 조상들의 선비정신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많은 유학생들이 그걸 잊고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하버드 입학 사정 때 불문학을 가르치던 분과 인터뷰를 했는데 그 때 제가 불어로 쓰고 있던 논문 ‘Rimbaud, plus romantique que les romantiques’ (랭보, 낭만주의자들보다 더 낭만적인)에 관한 이야기를 엄청 오래했어요. 제가 불문학을 정말 사랑한다는 것을 눈치 채시더라고요. 불어의 유용성이 아니라 순수 학문적 가치를 생각한다는 것을 높게 평가해 준 것 같아요.”“어렸을 때부터 수학을 아주 잘해서 명문고에 입학했다가, 다른 과목이 많이 힘들어서 명문대 진학에 실패한 사례를 많이 봤어요. 또, 부모님이 너무 주도하셔서 아이들이 지친 경우도요. 부모님들이 극성이시면 명문고 진학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봐요. 때문에 그 ‘극성’이 나쁜 것이라고는 생각 안 해요. 하지만 고등학교부터 공부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정말 부모가 설 자리는 줄어드는 것 같아요. 또, 명문대를 명문 교육이 아닌 명문 봉급을 생각하며 준비하는 학생들이 너무 많아요. 그렇다고 다 실패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학문이라는 개념을 조금이나마 생각한 아이들이 더 성공하더라고요.”“이제부터 4년 동안은 캠브리지에서 맘껏 배우는 데 집중하려고요. 고등학교 때는 통계학처럼 제가 싫어하는 과목도 들어야 했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과목에 집중하고 싶어요. 그 후는 그 때 가서 생각할래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처럼….”글 임혁 편집장·사진 이승재 기자limhyu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