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물량 부족으로 가격상승 지속될 듯

매매시장은 수급과 더불어 개발호재 등의 변수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지만 전세시장은 철저하게 수요과 공급의 원칙에 의해 가격이 결정된다.늘에서 양동이로 물을 쏟아 붓는 것처럼 장맛비가 내려 하루 강수량이 190mm를 기록했던 지난 7월 9일. 서울 마포구 대흥동의 한 아파트에서 전세계약이 이뤄졌다. 세입자는 폭우 속에서 전세 매물을 둘러 본 탓에 온몸이 흠뻑 젖은 채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야 했다. 전용면적 59㎡형 전세값은 1억8000만 원. 두 달 전과 비교해서 2000만 원가량 오른 가격이다. 그는 “전세매물이 눈에 띄게 줄었고 가격 오름폭도 예사롭지 않다는 불안감에 빗속을 헤매게 됐다”며 “괜히 버티고 있다가 전세값이 1000만 원이라도 더 오르면 손해라고 생각해 당장 행동에 나섰다”고 말했다.불과 반년 전만 하더라도 역전세난이 빚어졌던 서울 강남권도 전세매물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 지난 해 입주에 들어간 서초구 반포자이 아파트의 경우 115㎡형 전세값이 연초에는 3억 원대를 맴돌았지만 지금은 4억5000만 원을 훌쩍 뛰어넘었다.전세시장이 심상치 않다. 예전 같았으면 휴가철과 장마철이 맞물린 여름 비수기로 시장의 움직임을 느끼기 어려웠겠지만 올해는 다르다. 정부공인 통계를 내고 있는 국민은행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6월 15일 현재) 서울 아파트 전세값은 2.7%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작년 하반기에 3.8% 하락했고 같은 해 상반기에도 1%가 오르는 데 그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반등 기미가 확연하다. 송파구는 올 들어 11%나 전세값이 올랐으며 강동구 상승률은 7.9%를 기록했다. 광진구와 서초구도 각각 5.9%와 5.6%가 상승했다. 게다가 올해 전세값 오름세가 2분기 들어서 탄력을 받았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최근 전세시장만 놓고 보면 세입자들이 우려할 만한 수준이라고 평가하고 있다.전세값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보다 수급불안 영향이 크다. 전세집을 찾는 사람은 꾸준한데 공급이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한다는 얘기다. 부동산정보업체인 스피드뱅크 조사 결과 올해 서울에서 입주하는 아파트는 3만여 채로 10년간 연평균 물량(5만2000채)의 57%에 그쳤다. 지난 10년간 한해 3000채 이상의 새 아파트가 들어섰던 노원구는 고작 706채에 불과하다. 반면 올해 뉴타운 지역 14곳(153만㎡)에 있는 주택이 헐리고 수도권 기준으로는 해마다 10만 채 이상이 사라진다. 스피드뱅크 박원갑 소장은 “매매시장은 수급과 더불어 개발호재 등의 변수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지만 전세시장은 철저하게 수요과 공급의 원칙에 의해 가격이 결정된다”며 “전세집이 필요한 사람보다 매물이 적으면 곧바로 전세값 상승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같은 서울에 있어도 은평뉴타운에서 입주가 진행되는 은평구는 올해 들어서도 전세 값이 0.8% 하락했다. 작년에는 하반기 송파구 잠실주공1·2단지와 잠실시영을 재건축한 아파트 1만6000여 채가 집들이에 들어가면서 전세값이 폭락하기도 했다.전세 매물 부족현상은 국민은행이 중개업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전세공급 충분지수를 봐도 알 수 있다. 전세공급 충분지수는 중개업자들이 수요 대비 전세물량을 얼마나 확보하고 있는지 나타내는 수치로 서울 강남권은 작년 말 61.2%에서 현재는 9%에 불과하다. 중개업자 100명 가운데 9명만 전세 매물이 넉넉하다고 응답한 것이다. 강북권도 같은 기간 58.3%에서 5.7%까지 떨어졌다.전세값 상승이유는 더 있다.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집값이 올라 동반상승 압력이 컸고 교육 목적의 전세수요 쏠림현상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강서구 등은 지하철 9호선 개통으로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세입자들이 몰려들면서 전세값을 밀어 올렸다.문제는 전세시장이 안정을 찾을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다는 데 있다. 내년 신규 아파트 입주물량은 4만 채 정도로 여전히 예년 수준보다 1만 채 이상 적다. 전세값이 오름세를 타고 있는 노원구와 송파구에서는 오히려 올해보다 신규 입주가 더 줄었다. 만약 실물경기가 회복세를 타고 집값이 추가로 오른다면 전세시장은 더욱 들썩거릴 수밖에 없다.월세시장도 마찬가지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일반적으로 월세값은 전세값을 기준으로 정해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전세값 상승에 대해 준비할 필요가 있다며 전세를 구해야 한다면 가을 성수기가 오기 전부터 준비하는 것도 유용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재계약을 앞둔 세입자들은 주변 시세를 고려해 집주인과 미리 상의를 해두면 좋다. 만약 전세값이 현재 가격보다 1000만~2000만 원 정도의 차이 밖에 없으면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 재계약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 재계약을 하지 못하면 세입자는 중개수수료 이외에도 이사비용이 추가로 들고 집주인은 도배비용 등이 들기 때문이다. 다만 재계약을 할 때는 지역에 따라 세입자와 집주인의 위상이 바뀔 수 있다. 최근 들어 전세값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2년 전 시세보다 떨어진 곳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강동구의 경우 3.3㎡(1평)당 2007년 7월 전세값은 562만 원에서 546만 원으로 2.79% 떨어졌다. 강일지구의 대규모 입주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경우라면 세입자는 부담을 느낄 필요가 거의 없다. 서초구도 3.3㎡당 865만 원에서 842만 원으로 하락(2.66%)해 재계약 시 걱정이 덜하다. 하지만 종로구는 같은 기간 626만 원에서 705만 원으로 12% 이상 올랐고 송파구는 698만 원에서 754만 원으로 8% 가까이 상승했기 때문에 이들 지역에 사는 세입자 가운데 재계약을 앞뒀다면 자금 마련에 나서야할 상황이다. 서울지역 전체적으로는 3.3㎡당 619만 원에서 지난 2년간 629만 원으로 1.62% 올랐다.그렇다면 전세가 상승 바람을 타고 주택임대사업에 나서보는 것은 어떨까? 전문가들은 매력이 크지 않다고 분석한다. 종합부동산세가 완화됐다고는 하지만 주택을 많이 갖고 있으면 여전히 부담이 되는데다 최종적으로 시세차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대수익도 높지 않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집값이 대세 상승기라는 확신이 부족하다며 전세값이 오른다는 사실만으로 성급하게 임대사업에 뛰어들었다가는 자금만 묶일 확률이 높다고 경고한다.여기에 정부는 3세대 이상 보유자가 전세를 줄 때 임대소득세를 부과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꼬박꼬박 임대수익을 얻으면서 나중에 차익까지 실현하겠다는 주택임대사업이 예전만큼 좋은 상황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 확실해진 셈이다. 기획재정부가 최종 과세 방안을 확정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도입 시기를 결정하는 일만 남겨 둔 것으로 보인다. 전세 임대소득세 도입으로 월세에는 임대소득을 물리면서 전세는 비과세 혜택을 주는 과세형평성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데다 재정건전성 확보도 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일단 조세연구원은 전세 임대소득세 과세대상을 3주택 이상 다주택 소유자로 제한하자는 안을 내놨다. 집을 두 채 이상 갖고 있으면서 그 가운데 한 채가 9억 원 이상인 고가 주택 소유자가 대상이 될 전망이다. 연구원은 주택 전세의 경우 전세보증금의 60% 정도 금액에 일정 이자율을 곱해 임대소득세를 부과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전세보증금이 3억 원이라면 이의 60%인 1억8000만 원에 정기예금이자율(3~4%)을 곱해 나온 금액을 대상으로 세금을 부과하자는 의미다.주택임대사업자(매입임대사업자)로 등록해 임대에 나서는 것도 큰 의미가 없어졌다.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제도가 한시적으로 폐지되면서 임대사업이 사실상 무의미해졌다. 임대사업자로 등록해서 주택을 임대하면 취득·등록세가 감면되고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에서 제외된다. 무엇보다 집을 많이 갖고 있더라도 양도소득세가 정상 과세된다는 장점이 있다. 일정 기간(5~10년) 임대사업을 지속한다는 조건이다. 하지만 3·15세제개편으로 내후년 3월15일까지 취득한 주택에 대해서는 보유 주택수와 상관없이 일반세율인 6~35%(내년부터 6~33%)로 양도세를 내면 된다. 취득·등록세와 종부세를 피하기 위해 임대사업에 나설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한국경제신문 건설부동산부 박종서 기자cosm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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