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 형성의 메커니즘

년 초 국내의 한 증권회사가 발간한 투자전략보고서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주가의 장기추세는 경제성장률의 함수다.’그리고 이런 설명이 뒤따른다.‘장기 투자에 대한 믿음은 경제 성장에 대한 믿음과 다르지 않다. 어떤 식으로든 경제는 성장하게 마련이고, 그 경제 내에서 우월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상장사들의 이익 증가율은 경제 성장률에 수렴하거나, 혹은 경제 성장률보다 높은 경우가 많다. 이런 점에서 GDP 성장률은 장기적인 주가 흐름을 설명할 수 있는 대리지표(proxy)로 볼 수 있다.’적정주가에 대한 복잡하고 어려운 금융이론을 이처럼 간단하게 풀어준 문장을 찾기는 쉽지 않다. 약간의 설명을 덧붙이면 이렇다. 주가의 적정가치(Fair Value)는 기업이 미래에 창출할 현금흐름(혹은 기업이익)의 현재가치의 합계인데, 기업의 이익과 경제성장은 상관관계가 높으므로 주가란 경제성장률의 함수라고 할 수 있다.만약 경제 성장률이 낮은데도 주가가 크게 오른다면 이런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2009년 1분기 우리 경제의 성장률은 IMF 위기 이후 최악이었다. 작년 4분기의 -3.4%에 이어 2009년 1분기는 -4.3% 성장하였으니 외환위기가 끝나가던 1998년 4분기의 -6.0% 이후 최악의 경제 성장률이었다. 경제는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데 주가는 KOSPI 기준 작년 11월21일의 914에서 5월7일 1,401까지 53%나 폭등했다. 위 보고서의 기본 명제인 ‘주가의 장기추세는 경제성장률의 함수다’와 일치하지 않는 게 분명해 보인다.이런 불일치를 설명해주는 이론 중의 하나가 주가의 선행성이다. 주가는 경제보다 앞서 움직인다는 명제는 모든 사람이 보편적 진리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므로 경제 성장률이 2009년 하반기에 강한 성장세로 돌아선다면 1분기의 주가 급등은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 된다.만약 그렇지 않다면? 경제가 하반기 혹은 좀 더 길게 보아서 이듬해 상반기까지도 강한 상승세를 보이지 않는다면 이런 현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정치적 영향을 비교적 덜 받아서 상대적으로 신뢰도가 높은 IMF의 최근 발표를 보면 어느 정도 판단이 가능하다. 4월22일 IMF가 발표한 세계경제전망 중 한국경제에 관한 내용을 보면 한국경제는 올해 -4.0%로 침체한 뒤 내년에는 1.5%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우려되는 점은 올 1월에는 내년 성장률을 4.2%로 전망했는데 3개월 만에 전망치를 대폭 하향조정했다는 점이다.IMF는 세계 경제에 대해서도 비관적이다.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을 지난 1월만 해도 0.5% 성장으로 전망했는데 3개월 만인 4월22일 -1.3%로 대폭 하향조정했다. 그만큼 세계경제가 급속히 악화되고 있음을 반증한다고 하겠다. GDP에서 수출이 55%를 점하는 우리 경제 역시 세계경제의 장기침체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강한 반등세를 보이기 어려운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IMF 전망에 의하면 우리 경제가 올해는 말할 것도 없고 내년에도 강한 회복세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주식 가격은 폭등했다. 부동산 시장의 폭등은 주식시장보다 더 심상치 않다. 5월2일자 MBC 9시 뉴스의 보도 내용에 의하면 “강남의 한 재건축 아파트는 지난 해 말 6억 원대였던 49㎡ 아파트가 두 달 만에 3억 원이나 뛰어 9억 원대에서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경제는 크게 좋아지지 않는데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 역시 준비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주식시장의 역사에 이따금 등장하곤 했었다. 버블이 바로 그것이다. 올해 들어서 주식과 부동산 시장이 들썩거릴 때 주위에서 자주 듣던 말이 있다.“시중에 돈이 워낙 많이 풀리고 돈이 갈 데가 없다. 결국 돈이 주식이나 부동산 시장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다.”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주식과 부동산 시장에 뛰어 들면서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오른 것이다. 그 사람들은 경제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오로지 돈의 힘만 믿고 주식과 부동산에 풀베팅을 하고 있다. 이처럼 실물경제와 괴리되어 돈의 힘만으로 자산가격이 오르는 현상을 버블이라고 부른다. 올 들어 우리나라 주식과 부동산 가격의 폭등, 즉 버블의 팽창이 과다한 시중 유동성에 의해 발생했다는 것은 통계수치에 의해서도 뒷받침 된다. 시중 유동성이란 달리 말하면 통화량이다. 그러므로 시중 유동성이 얼마나 증가했는지를 보려면 통화량 증가를 보면 된다. 오른쪽 그래프를 보면 지난 4년 간 통화량이 엄청난 속도로 증가해온 사실을 한눈에 볼 수 있다.2004년 4.6%였던 총통화(M2) 증가율이 계속 상승하여 2005년 6.9%, 2006년 8.3% 증가하였고, 2007년에는 11.2%로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하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총통화 증가율이 2008년 14.3%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2008년은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휩쓸던 시기다. 금융위기 여파로 세계 각국의 통화량이 감소했는데 유독 우리나라만 통화량이 더 가파르게 증가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났다. 2006년~2008년의 3년간 늘어난 통화량만 404조 원에 이른다. 이것이 시중 유동성을 넘쳐나게 했고, 부동자금 800조 원의 원천이었다. 이러한 풍부한 유동성이 주식과 부동산 가격을 밀고 올라가 자산가격에 버블팽창을 야기하였다.시중 유동성이 엄청나게 늘었으니까 자산가격이 앞으로도 더 오를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버블과 관련한 중요한 사실 하나를 말해 주겠다. 그것은 통화량 증가의 메커니즘과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의 통화량을 누가 결정하느냐고 물으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한국은행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정확한 말은 아니다. 한국은행이 통화량 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절대적으로 옳다. 하지만 통화량 공급에 있어서 한국은행은 그 일부만을 담당한다. 나머지 더 큰 부분은 은행들이 담당한다.은행이 어떻게 통화량을 증가시키는가? 우리가 고등학교 경제 시간에 배운 통화창출이 바로 그것이다. 통화창출 이론은 다소 복잡하여 여기에서 세세한 설명까지는 할 수 없지만 그 핵심은 간단하다. 은행이 100을 대출하면 통화량이 100만큼 증가한다고 이해하면 핵심을 이해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은행이 대출을 통해 시중에 유통되는 통화량을 증가시키는 것이다.지난 3년간의 총통화(M2) 증가와 대출증가액을 비교해 보면 금방 이해된다. 지난 2월17일자 한국은행이 발표한 ‘2008년 금융기관대출금 동향’에 의하면 2006~2008년의 3년간 금융기관의 대출금 총액은 397조 원 증가하였다. 같은 기간 총통화(M2) 증가금액은 404조 원이다. 대출증가가 바로 통화량 증가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버블의 주범인 통화량 증가가 대출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무서운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대출이란 부채다. 그러므로 통화량이 증가하여 시중 유동성이 증가한다는 것은 그만큼 빚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구나 잘 알듯이 은행대출이란 언젠가는 갚아야 할 돈이다. 빌린 돈을 갚기 위해서는 그 돈으로 투자한 자산을 다시 팔아야 한다. 그 결과 자산가격은 하락할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버블은 반드시 꺼지는 것이다.버블에 의해 가격이 오를 대로 오른 부동산과 주식시장에 지금이라도 뛰어들지를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버블을 키우는 돈의 힘이란 것이 알고 보면 빚내서 마련한 자금이라는 사실을 꼭 명심해야 할 것이다.송기균 기업금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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