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BUCKET LIST] 시애틀, 커피처럼 감미롭고 와인처럼 달콤한 도시
입력 2014-09-15 09:23:58
수정 2014-09-15 09:23:58
시애틀에 다녀왔다. 톰 행크스가 출연한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과 현빈이 출연한 영화‘만추’로 유명한 곳. 스타벅스 1호점에 들러 커피를 마셨고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을 거닐었다. 오래된 와이너리에 앉아 달콤한 와인을 마시며 시애틀의 속살을 즐기기도 했다. 바람은 따스했고 햇살은 찬란했던, 시애틀에서 보낸 며칠.
시애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커피 향이 여행자를 반긴다. 시애틀은 미국에서 커피로 가장 유명한 도시. 한 집 건너 스타벅스와 카페가 자리하고 있다. 항공, IT 기술자 등 고급 인력이 많아 커피 소비가 막대하다고 한다.
커피 향 가득한 시애틀의 거리
시애틀은 스타벅스가 처음으로 문을 연 도시다. 1971년 시애틀의 웨스턴 애비뉴에 처음 문을 연 스타벅스. 샌프란시스코에서 새로운 커피 문화를 만들고 있던 피츠 커피(Peet’s Coffee)에 영향을 받아 싸구려 아메리카노를 밀어내기 위해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에 자리한 이 원조점은 1977년에 자리를 옮긴 것으로 전 세계 스타벅스 중에서 가슴을 드러낸 갈색의 인어 로고를 달고 있는 유일한 가게다.
가게는 작다. 66㎡ 남짓. 하지만 원조의 맛을 찾아온 전 세계 관광객들이 가게 밖까지 줄을 선다. 가게에는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몰린다. 9시가 넘어 찾으면 적어도 20분은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그다지 지루하지는 않다. 스타벅스 1호점 앞은 거리의 악사의 명당이다. 하루에 20명 남짓한 악사들이 돌아가며 연주한다. 이들의 활기찬 연주를 듣다 보면 어느새 자기 차례가 돌아온다.
시애틀 커피의 진수는 스타벅스가 아닌 캐피톨 힐(Capitol Hill)이라는 곳에서 느낄 수 있다. 이곳 사람들이 시애틀을 커피의 도시라 부르는 진짜 이유는 이곳에 자리한 수많은 독립 카페들 덕분이다. 독립 카페는 농장 단위로 원두를 구매해 지역 커뮤니티에 밀착해 다양한 개성을 만들어 내는 로스터리 카페를 말한다. 이 카페들은 직접 해외 유명 커피 산지에서 농장 단위로 원두를 구매해 독특한 커피들을 재생산해서 공급한다. 캐피톨 힐은 우리나라 홍익대 주변과 비슷한 분위기다. 예술가와 게이, 자유분방한 캐피톨 힐 사람들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여유로움으로 가득한 곳이다.
시애틀 여행이 즐거운 또 다른 큰 이유는 최고의 와인이 있기 때문이다. 시애틀에서 15분 거리에 위치한 우딘빌(Woodinville)은 샤토 생 미셸과 컬럼비아 와이너리가 들어선 이후, 워싱턴 주 와인의 허브로 재탄생했다. 워싱턴 주는 캘리포니아 주와 오리건 주, 뉴욕 주와 함께 미국에서 와인을 생산하는 지역. 캘리포니아 와인은 우리에게 이미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워싱턴 와인도 최근 들어 그 영역을 조금씩 넓혀 가고 있다. 워싱턴 주는 동쪽의 야키마 밸리에 포도밭이 많이 자리하고 있다. 이 지역은 강우량이 극히 적어 인근 컬럼비아 강에서 강물을 끌어다 관개를 한 후 포도를 생산하는데, 이곳에서 생산된 포도는 시애틀로 옮겨져 와인으로 재탄생한다.
우딘빌에 자리한 수많은 와이너리 가운데 ‘샤토 생 미셸(Cha^teau Ste. Michelle)’은 시애틀을 대표하는 와이너리다. 매년 25만 명 이상이 찾는다고 한다. 포도밭에 자리 잡은 4300명 규모의 대형 원형극장에선 해마다 여름이면 콘서트를 볼 수 있는데 케니 지,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핑크 마티니 등이 무대를 꾸민다.
“샤토 생 미셸 포도밭은 캐스케이드 산맥 동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산맥이 서쪽에서 불어오는 습한 바람을 막아주는 데다, 연간 강수량이 200mm 이하입니다. 위도가 높아 캘리포니아보다 여름 평균 일조량이 2시간 이상 길죠. 건조한 날씨와 척박한 토양이 포도의 풍미를 높이고, 따뜻한 기후와 일조량은 포도를 완숙하게 하죠. 여기에 큰 일교차로 인한 서늘한 기온은 산도가 탁월한 와인을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그 결과 보르도, 부르고뉴와 견줄 만한 와인이 탄생한 것입니다.”
설명을 들으며 와인을 테이스팅한다. 기본적으로 무료 테이스팅이지만 5달러를 더 내면 중가의 와인까지 추가로 테이스팅할 수 있다.
한 잔 맛을 본다. 2009년 빈티지. 밸런스도 피니시도 괜찮은 편. 미국 와인답게 적당한 중량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부드럽다. 그리고 캐주얼하다. 까다로운 프랑스 와인처럼 열리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열자마자 꽃이 피듯 향이 환하게 올라온다. 치즈도 좋고 고기도 어울릴 듯. 안내하는 이는 ‘아메리칸 그랑 크뤼’라는 표현까지 서슴지 않는다. 와인 전문지 와인 스펙테이터가 매년 선정하는 ‘톱 100 와인’에서 11년간 14개 와인이 수상한 경력을 내세운다.
신나는 시애틀, 즐거운 시애틀
시애틀을 찾은 이들이 가장 먼저 달려가는 곳은 스페이스 니들(Space Needle)이다. 시애틀의 랜드마크다. 1962년 세계박람회 개최지였던 시애틀센터에 자리한 곳으로 높이약 185m의 전망대다. 이곳에 서면 시애틀 시내뿐만 아니라 푸른 태평양과 유니언 레이크, 흰 눈을 덮어 쓴 해발 4392m의 레이니어 산봉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스페이스 니들 옆에는 세계적인 유리 조형의 거장 데일 치훌리(Dale Chihuly)의 전시관이 있다. 미국 최초의 무형문화재인 그의 작품들은 전 세계 관광객이 찾는 주요 도시의 200개 이상의 유명 박물관과 정원에 전시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그의 전시가 열린 적이 있다고 한다. EMP 박물관 옆에 자리한 치훌리 가든&글라스 전시관에는 치훌리의 유리 조형물과 그림을 만나볼 수 있는 곳. 그의 대표작인 유리공예 시리즈와 개인 컬렉션까지 볼 수 있다. 전시관 밖에 자리한 높이 13m, 넓이 418㎡의 글라스하우스 역시 웅장하고 화려한 그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전시관 옆에 자리한 컬렉션 카페(Collections Cafe)에도 가보자. 그가 개인적으로 수집한 카니발 쵸크웨어(Carnival Chalkware), 오래된 아코디언, 라디오와 카메라 등을 보며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치훌리 가든 가까이 자리한 EMP(Experience Music Project) 박물관은 록 마니아들 사이에 성지라 불리는 곳. 시애틀은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가 태어난 곳이다. 1942년 시애틀에서 태어난 그는 1970년 영국 런던에서 만 27세로 요절한다. 주요 무대 활동 4년, 스튜디오 음반 3장 발매. 헨드릭스의 약력은 이것이 전부이지만 그는 영원한 전설로 남아 있다.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 흰색 팬더 스트라토캐스트가 반긴다. 헨드릭스가 생전에 연주했던 기타다. 그 뒤로는 500여 개의 기타로 만든 대형 조형물이 시선을 빼앗는다. 너바나의 흔적도 더듬을 수 있다. 이들의 손때 묻은 악기와 의상, 유품도 전시돼 있다. 시애틀은 너바나, 앨리스 인 체인즈, 사운드가든, 펄잼 등 1990년대 그런지(grunge) 열풍의 진원지기도 하다.
여성 록 뮤지션의 연대기도 훑을 수 있다. 마돈나의 의상과 조니 미첼의 친필 노트, 팝스타 레이디 가가의 피아노 등이 전시돼 있다. 체험관에서는 기타와 드럼을 비롯해 각종 이펙터와 턴테이블을 연주할 수 있다.
EMP 박물관 가까이에 라이드 덕을 탈 수 있는 정류장이 있다. 라이드 덕은 시애틀에서만 탈 수 있는 시티투어버스로 오리 모양으로 생긴 수륙양용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장갑차로 만들었지만 쓸모가 없어지면서 관광버스로 변신했다.
라이드 덕 운전사는 그냥 차만 운전하는 것이 아니라 각 여행지에 대한 해설도 곁들인다. 복장도 요란하다. 우스꽝스런 모자로 탑승객을 즐겁게 한다. 하드록 카페 앞을 지날 땐 시애틀의 록 역사를 설명해 준다. 그냥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요란한 록 음악을 귀청이 떨어질 듯 크게 튼다. 스타벅스 앞을 지날 때는 커피에 어울리는 음악을 틀어 준다. 버스에 탄 사람은 운전사의 리드에 따라 박수도 치고 노래도 함께 한다. 투어 내내 차가 들썩인다. 길 옆으로 지나가는 사람들도 손을 흔들며 호응을 해 준다.
시내를 빠져 나온 라이드 덕은 유니언 호수(Lake Union)로 풍덩 빠져든다. 차에서 배로 변신. 유니언 호수는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 톰 행크스의 보트 하우스가 있던 곳이다. 톰 행크스는 밤이면 쓸쓸히 베란다로 나와 호수를 바라보곤 했었다. 유니언 호수에는 아직도 선상 가옥이 있는데, 이는 1890년대 어부와 선원들이 처음 지어 살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것. 1930년대 대공황 때 세금을 아끼고 값싼 주택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대거 몰려와 2000가구까지 늘어났다고 한다. 지금도 500개 정도가 남아 있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
어딜 가나 시장 구경은 빼놓을 수 없다. 시애틀에서 여행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은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Pike Place Market)이다. 시내 1번가라 할 수 있는 퍼스트 애비뉴와 파이커 스트리트 사이 엘리엇 만을 끼고 위치해 있다. 방금 잡아 올린 신선한 생선과 농부들이 직접 재배해 가져온 과일과 채소, 향기를 듬뿍 머금은 꽃, 직접 만들어 온 미술품 및 공예품 등이 가득한 곳이다.
시장은 1907년 문을 열었다.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 가깝게는 영화 ‘만추’에서 주인공들이 누볐던 곳이다. 원래 어시장이었지만 지금은 종합시장으로 변모해 시애틀 시민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80여 년 전에 세워진 네온사인 시계는 지금도 멀리서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생선가게 ‘파이크 플레이스 피시 마켓’에는 사람으로 바글바글했다. 이 가게는 ‘나는 물고기’로 유명하다. 막 판매된 팔뚝만 한 참치가 점원의 손에서 손으로 날아다니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입구에 ‘레이철’이라는 대형 돼지저금통을 만들어 놓고 기부를 받아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도 한다.
푸드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도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을 즐기는 좋은 방법이다. 45달러를 내면 해설사를 따라 주요 상점을 돌며 전통 먹을거리를 맛볼 수 있다. 100년 묵은 사연과 함께하니 그 맛이 더했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에서 내려와 워터프런트로 갈 수도 있다. 시애틀 서쪽에 있는 잔잔한 바닷가 워터프런트는 엘리엇 만이 인접한 곳으로 부두에서는 관광 유람선이 출발한다.
Plus Info.
인천공항에서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직항을 이용하면 10시간 15분 정도 걸린다. 델타항공을 이용해 일본 나리타공항에서 환승해도 된다. 시애틀공항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다운타운이 있다. 시애틀 시티패스(citypass.com)를 이용하면 스페이스 니들, EMP 박물관, 항공박물관 등 시애틀 대표 관광지 6곳을 45% 할인된 가격에 둘러볼 수 있다. 시애틀의 또 다른 별칭은 ‘숲의 도시’다. 이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은 올림픽 국립공원(Olympic National Park). 짙은 안개에 둘러싸인 신비롭고 몽환적인 숲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트와일라잇’, ‘트윈픽스’, ‘씬 시티’, ‘다크 엔젤’ 등의 초현실 판타지들을 찍은 곳이기도 하다. 가장 접근하기 쉬운 곳은 허리케인 리지(Hurricane Ridge). 해발 1600m의 전망대까지 차로 오를 수 있다. 전망대에서는 올림픽 국립공원 내의 최고봉인 올림퍼스산(2430m)을 바라볼 수 있다. 길을 가며 심심찮게 만나는 야생 노루가 국립공원에 왔음을 실감케 해 준다.
글·사진 최갑수 여행작가
시애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커피 향이 여행자를 반긴다. 시애틀은 미국에서 커피로 가장 유명한 도시. 한 집 건너 스타벅스와 카페가 자리하고 있다. 항공, IT 기술자 등 고급 인력이 많아 커피 소비가 막대하다고 한다.
커피 향 가득한 시애틀의 거리
시애틀은 스타벅스가 처음으로 문을 연 도시다. 1971년 시애틀의 웨스턴 애비뉴에 처음 문을 연 스타벅스. 샌프란시스코에서 새로운 커피 문화를 만들고 있던 피츠 커피(Peet’s Coffee)에 영향을 받아 싸구려 아메리카노를 밀어내기 위해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에 자리한 이 원조점은 1977년에 자리를 옮긴 것으로 전 세계 스타벅스 중에서 가슴을 드러낸 갈색의 인어 로고를 달고 있는 유일한 가게다.
가게는 작다. 66㎡ 남짓. 하지만 원조의 맛을 찾아온 전 세계 관광객들이 가게 밖까지 줄을 선다. 가게에는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몰린다. 9시가 넘어 찾으면 적어도 20분은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그다지 지루하지는 않다. 스타벅스 1호점 앞은 거리의 악사의 명당이다. 하루에 20명 남짓한 악사들이 돌아가며 연주한다. 이들의 활기찬 연주를 듣다 보면 어느새 자기 차례가 돌아온다.
시애틀 커피의 진수는 스타벅스가 아닌 캐피톨 힐(Capitol Hill)이라는 곳에서 느낄 수 있다. 이곳 사람들이 시애틀을 커피의 도시라 부르는 진짜 이유는 이곳에 자리한 수많은 독립 카페들 덕분이다. 독립 카페는 농장 단위로 원두를 구매해 지역 커뮤니티에 밀착해 다양한 개성을 만들어 내는 로스터리 카페를 말한다. 이 카페들은 직접 해외 유명 커피 산지에서 농장 단위로 원두를 구매해 독특한 커피들을 재생산해서 공급한다. 캐피톨 힐은 우리나라 홍익대 주변과 비슷한 분위기다. 예술가와 게이, 자유분방한 캐피톨 힐 사람들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여유로움으로 가득한 곳이다.
시애틀 여행이 즐거운 또 다른 큰 이유는 최고의 와인이 있기 때문이다. 시애틀에서 15분 거리에 위치한 우딘빌(Woodinville)은 샤토 생 미셸과 컬럼비아 와이너리가 들어선 이후, 워싱턴 주 와인의 허브로 재탄생했다. 워싱턴 주는 캘리포니아 주와 오리건 주, 뉴욕 주와 함께 미국에서 와인을 생산하는 지역. 캘리포니아 와인은 우리에게 이미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워싱턴 와인도 최근 들어 그 영역을 조금씩 넓혀 가고 있다. 워싱턴 주는 동쪽의 야키마 밸리에 포도밭이 많이 자리하고 있다. 이 지역은 강우량이 극히 적어 인근 컬럼비아 강에서 강물을 끌어다 관개를 한 후 포도를 생산하는데, 이곳에서 생산된 포도는 시애틀로 옮겨져 와인으로 재탄생한다.
우딘빌에 자리한 수많은 와이너리 가운데 ‘샤토 생 미셸(Cha^teau Ste. Michelle)’은 시애틀을 대표하는 와이너리다. 매년 25만 명 이상이 찾는다고 한다. 포도밭에 자리 잡은 4300명 규모의 대형 원형극장에선 해마다 여름이면 콘서트를 볼 수 있는데 케니 지,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핑크 마티니 등이 무대를 꾸민다.
“샤토 생 미셸 포도밭은 캐스케이드 산맥 동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산맥이 서쪽에서 불어오는 습한 바람을 막아주는 데다, 연간 강수량이 200mm 이하입니다. 위도가 높아 캘리포니아보다 여름 평균 일조량이 2시간 이상 길죠. 건조한 날씨와 척박한 토양이 포도의 풍미를 높이고, 따뜻한 기후와 일조량은 포도를 완숙하게 하죠. 여기에 큰 일교차로 인한 서늘한 기온은 산도가 탁월한 와인을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그 결과 보르도, 부르고뉴와 견줄 만한 와인이 탄생한 것입니다.”
설명을 들으며 와인을 테이스팅한다. 기본적으로 무료 테이스팅이지만 5달러를 더 내면 중가의 와인까지 추가로 테이스팅할 수 있다.
한 잔 맛을 본다. 2009년 빈티지. 밸런스도 피니시도 괜찮은 편. 미국 와인답게 적당한 중량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부드럽다. 그리고 캐주얼하다. 까다로운 프랑스 와인처럼 열리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열자마자 꽃이 피듯 향이 환하게 올라온다. 치즈도 좋고 고기도 어울릴 듯. 안내하는 이는 ‘아메리칸 그랑 크뤼’라는 표현까지 서슴지 않는다. 와인 전문지 와인 스펙테이터가 매년 선정하는 ‘톱 100 와인’에서 11년간 14개 와인이 수상한 경력을 내세운다.
신나는 시애틀, 즐거운 시애틀
시애틀을 찾은 이들이 가장 먼저 달려가는 곳은 스페이스 니들(Space Needle)이다. 시애틀의 랜드마크다. 1962년 세계박람회 개최지였던 시애틀센터에 자리한 곳으로 높이약 185m의 전망대다. 이곳에 서면 시애틀 시내뿐만 아니라 푸른 태평양과 유니언 레이크, 흰 눈을 덮어 쓴 해발 4392m의 레이니어 산봉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스페이스 니들 옆에는 세계적인 유리 조형의 거장 데일 치훌리(Dale Chihuly)의 전시관이 있다. 미국 최초의 무형문화재인 그의 작품들은 전 세계 관광객이 찾는 주요 도시의 200개 이상의 유명 박물관과 정원에 전시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그의 전시가 열린 적이 있다고 한다. EMP 박물관 옆에 자리한 치훌리 가든&글라스 전시관에는 치훌리의 유리 조형물과 그림을 만나볼 수 있는 곳. 그의 대표작인 유리공예 시리즈와 개인 컬렉션까지 볼 수 있다. 전시관 밖에 자리한 높이 13m, 넓이 418㎡의 글라스하우스 역시 웅장하고 화려한 그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전시관 옆에 자리한 컬렉션 카페(Collections Cafe)에도 가보자. 그가 개인적으로 수집한 카니발 쵸크웨어(Carnival Chalkware), 오래된 아코디언, 라디오와 카메라 등을 보며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치훌리 가든 가까이 자리한 EMP(Experience Music Project) 박물관은 록 마니아들 사이에 성지라 불리는 곳. 시애틀은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가 태어난 곳이다. 1942년 시애틀에서 태어난 그는 1970년 영국 런던에서 만 27세로 요절한다. 주요 무대 활동 4년, 스튜디오 음반 3장 발매. 헨드릭스의 약력은 이것이 전부이지만 그는 영원한 전설로 남아 있다.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 흰색 팬더 스트라토캐스트가 반긴다. 헨드릭스가 생전에 연주했던 기타다. 그 뒤로는 500여 개의 기타로 만든 대형 조형물이 시선을 빼앗는다. 너바나의 흔적도 더듬을 수 있다. 이들의 손때 묻은 악기와 의상, 유품도 전시돼 있다. 시애틀은 너바나, 앨리스 인 체인즈, 사운드가든, 펄잼 등 1990년대 그런지(grunge) 열풍의 진원지기도 하다.
여성 록 뮤지션의 연대기도 훑을 수 있다. 마돈나의 의상과 조니 미첼의 친필 노트, 팝스타 레이디 가가의 피아노 등이 전시돼 있다. 체험관에서는 기타와 드럼을 비롯해 각종 이펙터와 턴테이블을 연주할 수 있다.
EMP 박물관 가까이에 라이드 덕을 탈 수 있는 정류장이 있다. 라이드 덕은 시애틀에서만 탈 수 있는 시티투어버스로 오리 모양으로 생긴 수륙양용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장갑차로 만들었지만 쓸모가 없어지면서 관광버스로 변신했다.
라이드 덕 운전사는 그냥 차만 운전하는 것이 아니라 각 여행지에 대한 해설도 곁들인다. 복장도 요란하다. 우스꽝스런 모자로 탑승객을 즐겁게 한다. 하드록 카페 앞을 지날 땐 시애틀의 록 역사를 설명해 준다. 그냥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요란한 록 음악을 귀청이 떨어질 듯 크게 튼다. 스타벅스 앞을 지날 때는 커피에 어울리는 음악을 틀어 준다. 버스에 탄 사람은 운전사의 리드에 따라 박수도 치고 노래도 함께 한다. 투어 내내 차가 들썩인다. 길 옆으로 지나가는 사람들도 손을 흔들며 호응을 해 준다.
시내를 빠져 나온 라이드 덕은 유니언 호수(Lake Union)로 풍덩 빠져든다. 차에서 배로 변신. 유니언 호수는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 톰 행크스의 보트 하우스가 있던 곳이다. 톰 행크스는 밤이면 쓸쓸히 베란다로 나와 호수를 바라보곤 했었다. 유니언 호수에는 아직도 선상 가옥이 있는데, 이는 1890년대 어부와 선원들이 처음 지어 살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것. 1930년대 대공황 때 세금을 아끼고 값싼 주택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대거 몰려와 2000가구까지 늘어났다고 한다. 지금도 500개 정도가 남아 있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
어딜 가나 시장 구경은 빼놓을 수 없다. 시애틀에서 여행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은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Pike Place Market)이다. 시내 1번가라 할 수 있는 퍼스트 애비뉴와 파이커 스트리트 사이 엘리엇 만을 끼고 위치해 있다. 방금 잡아 올린 신선한 생선과 농부들이 직접 재배해 가져온 과일과 채소, 향기를 듬뿍 머금은 꽃, 직접 만들어 온 미술품 및 공예품 등이 가득한 곳이다.
시장은 1907년 문을 열었다.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 가깝게는 영화 ‘만추’에서 주인공들이 누볐던 곳이다. 원래 어시장이었지만 지금은 종합시장으로 변모해 시애틀 시민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80여 년 전에 세워진 네온사인 시계는 지금도 멀리서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생선가게 ‘파이크 플레이스 피시 마켓’에는 사람으로 바글바글했다. 이 가게는 ‘나는 물고기’로 유명하다. 막 판매된 팔뚝만 한 참치가 점원의 손에서 손으로 날아다니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입구에 ‘레이철’이라는 대형 돼지저금통을 만들어 놓고 기부를 받아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도 한다.
푸드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도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을 즐기는 좋은 방법이다. 45달러를 내면 해설사를 따라 주요 상점을 돌며 전통 먹을거리를 맛볼 수 있다. 100년 묵은 사연과 함께하니 그 맛이 더했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에서 내려와 워터프런트로 갈 수도 있다. 시애틀 서쪽에 있는 잔잔한 바닷가 워터프런트는 엘리엇 만이 인접한 곳으로 부두에서는 관광 유람선이 출발한다.
Plus Info.
인천공항에서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직항을 이용하면 10시간 15분 정도 걸린다. 델타항공을 이용해 일본 나리타공항에서 환승해도 된다. 시애틀공항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다운타운이 있다. 시애틀 시티패스(citypass.com)를 이용하면 스페이스 니들, EMP 박물관, 항공박물관 등 시애틀 대표 관광지 6곳을 45% 할인된 가격에 둘러볼 수 있다. 시애틀의 또 다른 별칭은 ‘숲의 도시’다. 이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은 올림픽 국립공원(Olympic National Park). 짙은 안개에 둘러싸인 신비롭고 몽환적인 숲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트와일라잇’, ‘트윈픽스’, ‘씬 시티’, ‘다크 엔젤’ 등의 초현실 판타지들을 찍은 곳이기도 하다. 가장 접근하기 쉬운 곳은 허리케인 리지(Hurricane Ridge). 해발 1600m의 전망대까지 차로 오를 수 있다. 전망대에서는 올림픽 국립공원 내의 최고봉인 올림퍼스산(2430m)을 바라볼 수 있다. 길을 가며 심심찮게 만나는 야생 노루가 국립공원에 왔음을 실감케 해 준다.
글·사진 최갑수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