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ARCHITECTURE] 무거운 건축을 벗고 유쾌한 건축을 입다

‘이상한 나라’의 건축가 문훈

“내 건축은 건축주와 컬래버레이션한 결과물이다.” 문훈건축발전소의 문훈 소장은 건축주가 자신의 뮤즈이자 영감의 원천이라고 했다. 설령 유치한 요구라 해도 의뢰인의 ‘생각’에서 출발해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건축가가 그다.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꿈을 실현하되 재미를 놓치지 않는 공간, 문 소장의 건축은 다분히 유쾌하다.



‘이상한 나라’가 따로 없다. 누군가가 ‘점집 같다’고 표현했던 공간은 한 마디로 빨갰다. 입구에 걸려 있는 커다란 손바닥 그림이며,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정자, 벽면을 가득 채운 다양한 그림들까지 공간의 정체성이 모호하던 찰나, 마치 부적처럼 보이는 ‘문훈건축발전소’ 명패가 눈에 띈다. 건축사무소가 아니라 건축발전소라서 다행이었다. ‘발전’을 위해서라면 이 다양한 영역의 숱한 오브제들의 존재가 그리 이상할 것도 없었으니까. 그래도 온통 빨간색 천지인 건 뭔가 설명이 필요해 보이는 부분. 익숙한 질문이라는 듯 문훈 문훈건축발전소장은 “이유를 만들 수는 있지만 사실 이유가 없다”고 했다. 정답이다. 이유 없이 좋은 게 진짜 좋은 것일 테니. 화투패의 ‘팔광’을 명함 이미지로 차용하고, 그의 건축 어딘가에는 거의 필연적으로 빨간색이 등장하고, 서슴없이 빨간색 옷을 즐겨 입고 다니는 것도 빨간색을 좋아해서 생긴 결과론적인 것들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이 공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 소장의 캐릭터도, 건축에 대한 태도와 추구하는 방향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문 소장은 단지 (우리가 생각하는 한정된) 건축만을 하는 건축가가 아니다. 다시 말해 그에게 건축은, 경계가 없진 않지만 외연적으로 확대된 영역이다. 건축 관련 전시를 하고(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에 건축가로서는 유일하게 참여해 일러스트레이션 작품을 전시했다), 책을 내고(최근 수십 년간 그린 그림을 모아 에세이집 ‘달로 가는 제멋대로 펜’을 펴냈다), 동영상과 퍼포먼스 등 다양한 형태로 소통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두 가지가 있으니 본질적으로는 건축에 이르는 과정이라는 점이고, 그를 움직이게 하는 재미 요소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건축에 대해 경직된 태도를 갖고 있지 않아요. 심각해야 한다든가, 영원해야 한다든가 하는데, 그렇게 진지하고 심각할 필요가 있나요. 건축에서 말하는 사회적 책임도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당연한 거예요. 그런 건축가의 모습이 저는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어요. 건축은 답이 없어요. 미리 정해 놓지 말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한번 가보자 하는 게 제 태도인 거죠. 유쾌하고 재밌게 이야기를 풀어가도 충분히 좋을 수 있거든요. 아주 유치한 생각이나 아이디어에서도 중요한 걸 발견할 수 있는 거고요. 결코 건축을 무시하거나 우습게 생각해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어깨에 힘 빼고 놀이처럼 재밌게 해야 제대로 되기 때문이에요.”

대놓고 ‘건축을 가지고 논다’고 하는 문 소장인데도 건축주들의 의뢰가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고, 내놓는 결과물마다 국내외에서 주목(그의 건축물들은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에 한국의 기발한 집들이라는 제목으로 여러 번 소개됐다)을 받고 있으며, 그를 이단아로 바라보는 건축계에서도 제대로 인정(2009년 그는 건축학과 교수들이 선정한 한국 건축을 대표하는 12인에 선정됐다)받고 있는 건 놀이로 접근하지만 지킬 건 지키는 균형감 때문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건축에 대한 호불호가 분명히 갈리는 것만은 사실이다. 뿔 달린 펜션인 ‘락 있수다’, 막대 사탕 모양을 한 ‘롤리팝 하우스’, 망사 모양으로 외형을 감싼 묵동 다세대주택 등 그의 건축물이 갖고 있는 외형적 ‘파격’이 주된 이유다.

“제 건축에 대한 호불호는 분명 나뉘겠죠. 누군가는 너무 튀는 것 같아 싫을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자유로운 방식이라며 좋아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말이죠, 저는 그냥 제 삶을 살 뿐, 별로 그런 시선이나 평가에 신경 쓰지 않아요. 어떤 면에서 분명한 기호가 더 좋은 것도 있어요. 저를 찾아오는 의뢰인들은 간을 보러 오는 게 아니라, 거의 하겠다는 결정을 하고 온 분들이 많거든요. 제 건축에 대한 강한 편견을 갖고 그걸 받아들일 용의가 있는 분들이 오는 거죠. 그런 분들과의 작업은 재밌고 순조로울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외형만 보고 그의 건축을 말한다면 겉핥기에 불과하다. 외형이 상상력으로 무장하고 있다면, 내면은 철저히 경험에 의존한다. 대중은 밖에서 본 그의 건축에 갑론을박하지만, 건축주의 만족은 실상 내부 공간들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스토리에서 나온다. 괴짜 건축가로 유명하지만 알고 보면 건축주와 이만큼 잘 소통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현실화시키는 건축가가 또 있을까 싶다.


탑승형 로봇의 몸통 같은 형태를 하고 있는 ‘코난하우스’ 외형.

‘코난하우스’
로봇을 매개로 한 건축주와 건축가의 ‘합작’
실제로 ‘락 있수다’ 펜션은 스페인 투우를 보고 영감을 받은 건축주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었고, 경기도 기흥의 주택인 ‘롤리팝 하우스’도 ‘이상한 집’을 짓고 싶다는 건축주의 막연한 생각에 영감을 받아 구현한 결과물이었다.

대전의 방동저수지 앞 완만한 경사 위에 마치 조각품처럼 서 있는 ‘코난하우스’는 건축주의 취미가 영감을 준 경우다. 지방 방송사 PD인 건축주는 결혼 전부터 프라 모델을 수집했는데, 어린 시절 일본 만화영화 ‘미래소년 코난’(그래서 ‘코난하우스’다)에 나오는 탑승형 보행 로봇을 좋아했던 문 소장은 거기서 큰 영감을 받았다. ‘어른 아이’ 같은 마음을 가진 건축주와 건축가의 궁합은 탁월했다. 외형은 탑승형 보행 로봇의 형태로 하되 공간은 로봇 수집이라는 건축주의 취향과 어울린 오브제를 적극적으로 합치는 방식이었다. 거기다 건축주가 처음부터 주문한 ‘스킵 플로어(skip-floor)’ 형태가 더해지면서 세상에 없던 집이 탄생했다.



스킵 플로어 형태의 집은 가운데 책장과 로봇 전시장을 중심으로 계단을 따라 빙글빙글 올라가며 다양한 공간과 만나게 돼 있다.

스킵 플로어는 건물 각 층의 바닥 높이를 일반적인 건물과 같이 1층씩 높이지 않고, 각 층계참마다 반층 차 높이로 설계하는 방식으로, ‘코난하우스’는 반층씩 계단을 오르며 다양한 공간을 만나도록 설계돼 있다. 반층 내려가면 지하의 서재가 있고 다시 올라가면 1층 거실로 이어지며, 다시 반층을 오르면 주방, 그리고 식당을 지나 안방으로, 아이 방과 놀이방으로, 미끄럼틀이 있는 꼭대기 다락방을 만나는 식. 스킵형으로 빙글빙글 올라가며 새로운 공간을 경험하는 ‘재미’는 계단 중앙에 위치한 책장과 거대한 로봇 전시장이 더해지며 정점에 이른다.

“제가 생각하는 건축의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역동성과 깊이감이에요. 깊이감은 3차원을 말해요. 집은 분명 3차원적 공간인데 우리는 2차원의 평면 공간에 살죠. ‘코난하우스’는 가운데 전시장을 중심으로 깊이감이 실현됐어요. 전시장이 가운데 자리하고 있어 위에서 내려다보면 아찔함이 들거든요. 어지러움을 유발하는 공간을 개인적으로 좋아해요. 역동성은 아이들이 있는 집엔 필수죠. ‘코난하우스’ 건축주도 어린 아들이 있어서 아이가 뛰어놀 수 있는 집을 원했고요. 계단을 따라 새로운 공간이 나타나니 공간이 갖는 역동성도 있지만, 이 집은 기본적으로 가만히 있어야 좋은 집이 아니라 뛰어다니기에 좋은 집이죠.”

이렇듯 이 집의 핵심은 바로 계단이다. 외형상 탑승형 로봇 형태를 하고 있으니, 계단을 따라 꼭대기로 뛰어가는 아이는 마치 조종석을 향해 가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아이에겐 더없는 놀이의 공간인 것이다.


길고 좁은 땅에 롤 모양으로 들어선 ‘롤 하우스’ 전경. 왼쪽 튀어나온 부분이 게스트 룸이다.

‘롤 하우스’
땅이 주는 영감과 역동적 에너지가 출발점
‘코난하우스’가 건축주의 취향을 근간으로 한 역동성이라면 경남 밀양의 ‘롤 하우스’는 땅 모양 자체가 다분히 역동적 에너지를 품고 있었다. 도로에 인접해 길고 좁은 형태의 땅은 주택을 짓기에 ‘난감’했지만 그 극단적 상황이 오히려 문 소장을 자극했다.

“롤 하우스는 도로에서 보면 규모가 엄청나게 커 보여요. 그런데 실은 긴 칼자루 모형이죠. 그 땅도 흥미로웠지만, 집이 위치한 밀양의 지형 자체가 사실은 롤 하우스 형태의 출발이 됐어요. 인터넷에서 밀양 지도를 찾아보면 롤처럼 생겼거든요. 그래서 자연스레 ‘롤’이란 이름이 붙었고 많은 기능이 합쳐졌다는 뜻의 ‘롤’ 개념까지 더해졌죠. 집을 짓기 어려운 형태라 ‘꼭 집이 아니어도 좋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결과물은 아주 재밌고 놀이 공간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집이 됐죠.”


자갈밭과 잔디가 있는 옥상 정원. 헛벽 아래로 난 계단을 따라가면 아늑한 높이의 데크 공간이 나타난다.

‘롤 하우스’ 건축주 역시 문 소장의 상상력과 기발함을 절대적으로 믿고 모든 것을 맡겼다. 젊은 교사 부부인 건축주의 요구는 별다를 게 없었다. 그저 방이 세 개이면 좋겠다는 것, 이층이었으면 좋겠다는 것 정도의 기능적인 주문이 전부였다. ‘롤’ 형태의 이 집은 단을 조금씩 올리는 방식으로 1층에 거실, 마루, 식당, 주방 등이 배치돼 있고, 2층으로 오르면 계단을 사이에 두고 좌측에 포켓 형태의 게스트 룸과 오른쪽에 욕실, 아이 방, 드레스 룸, 안방 등이 위치해 있다. 집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형태의 땅에 다양한 기능의 공간들이 들어서 있는 것도 놀랍지만, 헛벽과 연결된 계단 아래에 마련된 아늑한 높이의 정자 공간, 자갈밭과 잔디밭이 있는 작은 옥상정원 등 이 집에는 스토리가 있는 재밌는 공간들이 여기저기 숨겨져 있다.


‘놀이’는 문훈 소장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 곳곳에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생겼다.

“집이고 놀이터고 극장이고 그렇죠. 헛벽에 빔프로젝트를 쏘게 돼 있어서 야외에서 영화 감상도 가능하거든요. ‘롤 하우스’는 불균질이 모여서 만들어 낸 공간들이에요. 어떤 덴 낮고 어떤 덴 좁고 그렇죠. 산에 한번 가보세요. 높은 데도 있고 고개를 숙여야 지나갈 수 있는 좁은 데도 있잖아요. 자연은 그런 거예요. 불균질이 모여 재미를 만드는 거죠. 액티브와 다이내믹, 불균질이 이 두 가지를 만들어 내면서 약 115.7㎡에 불과한 집이 많은 이야기를 품게 됐어요.”

건축주의 만족도가 어땠는지, 굳이 묻지 않아도, 공간만 보고도 ‘답’이 나왔다. 문 소장의 건축을 바라볼 때 외형적 독특함에 먼저 주목하는 많은 이들은 결정적 오류를 범하고 있음을 그가 만들어 낸 이 공간들이 말해 주고 있었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 | 사진 이승재(인물) 기자, 남궁선(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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