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C ODYSSEY] 음악 그 자체, 모차르트에 관하여

김준 경방 사장의 ‘The Classic’ 10th

음악사에 가장 중요한 세 사람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바흐와 모차르트, 베토벤을 들 수 있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는 클래식 음악의 원천이 됐고, 베토벤은 고전파 음악을 완성하고 낭만파 음악의 선구자가 돼 시대적으로 중요한 한 축을 담당했다. 모차르트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사실 모차르트는 설명이 불필요하고 또 불가능한 존재다. 천재니 신동이니 하는 말조차 지극히 미미하다. 모차르트는 음악으로 태어나 음악으로 죽은, 음악의 대명사를 넘어 음악 그 자체이니까.



하이든과 모차르트, 베토벤을 중심으로 한 고전주의 음악에 대한 필자의 애정은 각별하다. 무한 애정과 존경의 대상인 베토벤의 존재감이 그 이유만은 아니다. 무릇 음악이란 끌리는 감정과 감동이 더 중요한 법이니, 앞뒤 역사를 따지고 논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수도 있겠지만 고전주의만큼은 다르다. 고전주의가 음악의 가장 기초이자 중심으로 모든 음악이 거기서부터 파생됐기 때문이다. 클래식에 입문하는 사람이 어떤 음악부터 들어야 하느냐 묻는다면, 주저 없이 고전주의 음악을 꼽는 것도 그런 이유다.

모차르트는 고전주의의 핵심이기도 한 소나타 폼을 완성하며 고전주의를 완전히 꽃피웠다. 고전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소나타 폼이다. 낭만 음악이 감정대로 흐르는 것이라면 고전주의 음악은 일정한 형태 안에 곡을 담은 것으로, 소나타 폼은 말 그대로 곡의 형식이지만 이는 규칙으로서의 형식이 아닌 가장 자연스런 형태로서의 발견에 더 가깝다. 이러한 형식을 통해 가장 기초가 되면서도 듣기 편하고 또 가장 간단하다는 평을 듣는 모차르트의 곡은 그러나 결코 쉽지 않다. 음악가들이 모차르트로 입문해 모차르트로 끝낸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시작하기는 쉽지만 알면 알수록 어려운 곡이 바로 모차르트인 것이다.


음악의 시작이자 끝, 모차르트의 존재감
모차르트는 교향곡에서부터 콘체르토, 소나타, 듀엣, 사중주, 오중주, 오페라 등 모든 장르에 걸쳐 수많은 곡을 남겼다. 그뿐만 아니라 악기의 사용에 있어서도 남들이 보통 주 악기로 쓰지 않는 악기들을 과감히 선택해 소위 판에 박힌 곡이 아닌 그만의 곡들을 완성했다. 그러나 장르 불문, 모차르트 음악을 관통하는 핵심이 있으니 바로 앙상블, 즉 ‘조화’다. 모차르트의 곡이 어려운 건 이처럼 전체 악기의 조화를 이뤄 내야 한다는 데에 있다. 누구 하나 튀어서도 안 되고 완벽한 앙상블을 통해 감명을 주어야 하니, 모차르트 곡의 지휘로 정평이 나 있는 브루노 발터와 카를 뵘 같은 대가들에게도 모차르트를 모차르트답게 연주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실제로 많은 연주자들이 모차르트의 곡을 연주하기 힘들다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에 통달한 명연주자 아르투르 슈나벨이 대표적인 예. 그는 “피아노 소나타 중 가장 어려운 음악은 바로 모차르트”라고 말했다.

모차르트가 다양한 악기를 쓸 수 있었던 건 스스로도 많은 악기를 다룰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모차르트의 천재성이 입증되지만, 그것만으로는 빙산의 일각이다. 알려진 대로 모차르트는 세 살부터 이미 악기 연주에 있어 신동 소리를 들었고, 여섯 살부터 연주 여행을 다니고 작곡을 시작했다. 서른다섯 살이라는 젊디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으면서도 엄청난 양의 곡을 남길 수 있었던 것도 일찌감치 작곡을 시작한 덕분이었다. 설령 그렇다 해도 물리적 시간에 비해 작곡한 곡이 엄청나게 많았는데, 머릿속에 떠오른 악상을 거침없이 악보 위에 옮겨놓으며 단숨에 곡을 완성하는 등 그의 진짜 천재성은 작곡의 과정에서 십분 발현됐다.

모차르트의 음악적 재능은 다분히 유전적, 환경적 영향이 크다.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난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 교회당의 부악장이며 궁정 전속 작곡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훌륭한 음악가인 아버지를 둔 덕에 자연스레 음악을 접하고 재능을 일찍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클래식 역사에 있어서도 분명 큰 영향을 끼쳤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처럼 모차르트를 논함에 있어 아버지는 그 존재감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절대적이다. 모차르트는 단순히 부모로부터 DNA만을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 의해 삶이 설계되고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일곱 명의 아이 중 다섯을 유아기에 잃고 모차르트와 바로 위 누나인 마리아 안나만을 무사히 키운 아버지에게 모차르트는 너무나 특별한 아들이었겠지만, 문제는 그렇다 해도 간섭이 지나쳤다는 점이다. 아버지 입장에선 아들을 위한 ‘헌신’이었어도 모차르트에게 아버지는 넘어서야 할 벽이자, 갇혀 있는 세계였다. 음악 이외에(여행을 빼놓고는) 그 어떤 것도 허락되지 않고 오로지 음악으로만 점철돼 있었던 모차르트의 삶은 차라리 아버지의 것이었다.


행운과 불행이 공존한 천재 음악가의 삶
필자는 바로 이 지점에 모차르트의 행운과 불행이 공존한다고 본다. 재능을 일찍 발견하고 키워 갈 수 있었던 건 다분히 행운이었지만, 나이가 들고 자신만의 세계를 펼쳐야 할 시점에서도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건 불행이었다. 더구나 아버지는 모차르트의 음악적 재능을 돈벌이에 많이 활용하는 등 아들을 ‘혹사’했다. 이처럼 모차르트와 아버지의 관계는 평생토록 애증의 관계가 계속됐는데, 요즘의 부모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어릴 때 자녀들의 삶에 개입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다 커서도 아이들 주변을 빙빙 맴돌며 독립적 주체로서의 삶을 어렵게 하는 일명 ‘헬리콥터 맘’들이 결과적으로 자녀들을 얼마나 불행하게 하고 있는지와 맥락이 닿아 있다고나 할까.

그런데 만일 아버지가 아들의 음악 세계를 인정하고 믿어 주며 그저 옆에서 독려하는 정도의 역할만 했더라면 모차르트의 음악과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짐작컨대 모차르트가 인간적으로도 좀 더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이고, 음악적으로도 더 풍부한 세계를 펼쳐 보였을 것이다. 앞서 행운이라고 했던 재능의 이른 발견 또한 어떤 면에서는 꼭 장점인가 싶기도 하다. 좀 더 늦게 재능이 발현됐더라도 모차르트는 분명 지금과 같은 영향력을 갖기에 충분했을 테니까.

그 반증으로 모차르트는 서른다섯 나이로 요절했지만 양적, 질적으로 어마어마한 결과물을 남겼다. 특히 모차르트의 곡 중에서도 명곡으로 꼽히는 곡들이 10대 중후반부터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41곡의 교향곡 중 25번부터가 10대 후반의 곡들로 어릴 때 작곡해 내놓은 곡들과는 분명 다른 느낌을 준다. 교향곡 중 부제가 달린 31번, 35번, 36번, 38번, 41번 등은 필히 감상해 볼 것을 권한다. 27곡의 피아노 콘체르토는 9번부터가 이 시기에 해당하는 곡들로 9번과 17번, 19번, 20번, 21번, 25번, 그리고 마지막 곡인 27번 등이 반드시 들어 봐야 할 곡들이다. 그뿐만 아니라 하이든이나 베토벤에 비해 수적으로 적은 19곡의 피아노 소나타, 바이올린 소나타와 5곡의 바이올린 콘체르토,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과 ‘돈 조반니’, ‘마술피리’, ‘코지 판 투데’ 등 숱한 명곡들은 일일이 손으로 꼽기 어려울 정도다.

일반적으로 모차르트의 곡은 깨끗하고 밝은 이미지로 대변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다양한 감정이 교차하고 있다. 다만 모차르트는 슬프고 우울한 마이너(단조) 곡들조차도 열정적으로 표현하곤 했는데, 한편으론 불행했던 삶의 반어적 표현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개인적 추측을 해 본다. 바로 그 때문에 안타깝게도 필자는 모차르트의 인생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삶이 그대로 음악에 투영됐던 베토벤과 달리 모차르트는 삶과 음악의 일관성이 느껴지지 않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모차르트가 베토벤처럼 자기 삶에 대해 깊은 고뇌를 했더라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자기만의 생을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지만 그럼 어떠랴. 모차르트가 남긴 수많은 레퍼토리가 이미 후세들을 충분히 행복하게 하고 있는 것을.


정리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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