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개껍데기(shell): 유해 속에 담긴 생명
태생적으로 바다, 물, 생명과 관련된 조개껍데기는 종교와 신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 모티프로 사용됐다. 조개껍데기가 지닌 이런 상징적 이미지는 어디에서 출발한 것일까.피서 인파가 지나간 바닷가 모래밭에서 조개껍데기를 줍던 추억이 있다. 한때 생명체의 일부였지만 잔해로 남은 조가비는 바닷물에 씻기고 닦여 예쁜 보물처럼 단단하게 반들거린다. 그 표면 위에는 부챗살이나 나선형 무늬들이 오묘하게 퍼져 나가며 자연이 새겨 넣은 규칙 속에 깃든 생명의 신비를 말없이 전해 준다.
조개껍데기는 태생적으로 바다, 물, 잔해, 생명과 관계가 있다. 그 때문에 오랫동안 삶과 죽음을 내포한 심오한 상징물로 여겨져 왔다. 조개 중에서도 가리비의 껍데기는 특히 종교와 신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 모티프로 사용된다. 그중 하나는 성 야고보(Saint James, Santiago)와 관련된 순례자의 상징이고 또 하나는 아프로디테(비너스)와 연결된 풍요와 다산의 상징이다. 전자는 기독교적이며 남성적이고 조개껍데기의 볼록 면을 상징 이미지로 사용하는 반면, 후자는 신화적이고 여성적이며 주로 껍데기의 오목 면을 사용한다. 서로 반대되는 이 두 가지 상징은 동전의 양면처럼 묘하게도 결국 하나로 융합된다. 우리는 조개껍데기라는 작은 사물을 통해 르네상스 시대에 기독교 사상이 어떻게 이교도 신앙인 신화와 융합됐는지 알아볼 수 있다.
순례자의 상징이 된 가리비 껍데기
가리비 껍데기가 순례자의 상징이 된 것은 성 야고보에 관한 전설에서 유래한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는 베드로, 요한과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의 3대 제자에 속한다. 그는 그리스도가 사망한 후 멀리 이베리아 반도까지 가서 선교 활동을 펼쳤다.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그는 참수를 당해 예수의 제자 중 첫 번째 순교자가 된다. 제자들이 그의 시신을 빈 배에 태워 바다에 띄웠는데 놀랍게도 이베리아까지 떠내려갔다고 한다. 해안에 닿은 야고보의 시신은 조개껍데기들에 싸여 손상되지 않은 채 보존돼 있었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어떤 말 탄 기사가 바닷물에 빠졌는데 야고보의 도움으로 살아났다. 물 위로 떠오른 그의 몸이 조개껍데기로 싸여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일화에 따라 가리비 껍데기는 야고보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치유와 구원의 능력을 가리키게 됐다.
스페인에 도착한 야고보의 유해는 그 후 행방이 묘연했다가 9세기에 이르러 갈리시아 지방에서 그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이 발견됐다. 그 유해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 안치되자 유럽 전역에서 신자들이 야고보의 성골을 참배하러 몰려들었다. 산티아고 대성당에 이르는 순례 여행 루트들이 개발됐고, 이러한 순례 여행은 15세기까지 성황을 이뤘다. 이슬람 세력에 대항해 기독교도들의 정신적 결속을 다지고자 정책적으로 순례 여행을 장려했기 때문이었다. 12세기에 제작된 필사본 ‘코덱스 칼릭스티누스’는 산티아고 순례를 권장하기 위해 만든 책으로, 그중 한 삽화에서 우리는 기사의 모습을 한 야고보 성인 주위로 조개껍데기들이 별처럼 흩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산티아고로 향하는 순례자들은 모자나 옷, 전대 등에 가리비조개 껍질을 달았다. 조개껍데기는 죽음의 잔재라는 점에서 덧없는 삶이나 야고보의 순교와 연관되는 한편 그가 보여 준 기적처럼 오히려 죽음을 물리친 구원과 부활의 상징이기도 하다. 실용적 목적으로도 조개껍데기는 순례자가 피곤한 여로에서 때때로 물을 떠 목을 축일 수 있는 그릇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또한 순례자가 어느 교회나 수도원이나 성에 도착해 가리비 그릇을 내밀면 음식이나 술을 채워 줬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도 굶주리지 않고 순례에 참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또 순례를 끝낸 사람들은 더 나아가 대서양에 접한 유럽 대륙의 끝에 가서 여행의 완성을 기념해 가리비 껍데기를 주워 달았다고도 한다.
산티아고로 가는 여행은 르네상스 이후 점차 쇠퇴했지만 20세기 말에 다시 부흥해 지금도 매년 수십만 명의 여행객이 이 길을 걷기 위해 찾아간다. 오늘날 그 길은 종교적 순례만이 아니라 개인적 명상이나 건강을 위한 수련의 길로서 걷기 여행의 가장 좋은 모델이 되고 있다. 가리비 껍데기는 여러 가지 디자인으로 변형돼 그 길의 곳곳에 새겨져 이정표 역할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증명서나 여행 상품 등 각종 기념물에도 첨가돼 전통적 상징의 의미를 전하고 있다.
‘비너스의 탄생’에 등장하는 조개껍데기
한편 조개껍데기의 오목하고 벌어진 형태는 고대부터 여성적 특징과 연결됐다. 즉 조가비는 여성의 생식력을 환기시키며 풍요와 다산의 염원을 담은 상징물로 여겨졌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바다의 물거품 속에서 탄생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조가비와 연결됐다. 기원전 1세기경에 제작된 조각상들 중 아프로디테가 조개껍데기에서 나오거나 그 속에 들어 있는 모습이 발견되기도 한다.
르네상스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는 바다에서 탄생한 아프로디테가 해안에 도착하는 장면을 그렸다. 바로 ‘비너스의 탄생’이라 불리는 유명한 그림인데, 여기서 비너스는 큰 조개껍데기 위에 나체로 서 있다.
이 그림은 고대 이후 중세 때 사라졌던 신화의 주제를 대형 회화 속에 다시 등장시킨 점에서 획기적인 작품이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 피렌체에서 유행한 신플라톤주의 사상 덕분이었다. 신플라톤주의는 그리스 로마의 문화유산과 기독교를 결합하고자 한 사상인데, 이에 따르면 비너스는 지상의 여신이자 천상의 여신이라는 두 가지 속성을 지닌다. 비너스가 해안에 도착한 것은 신성한 존재가 지상에 와 인간이 된 것, 즉 새로운 이브로 탄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비너스가 옷을 입지 않은 것도 순수한 사랑의 존재로서 에덴동산의 이브를 암시한다. 그런데 실낙원 이전 죄를 짓지 않은 이브는 원죄 없이 태어난 성모 마리아와 공통점이 있다. 이로써 비너스는 이브와 동일시되며 다시 성모 마리아로 연결된다.
보티첼리의 그림에서 비너스가 타고 온 조개껍데기는 생명과 사랑을 키우는 자궁이나 요람과 같고 여신을 무사히 지상으로 인도하는 배처럼 보인다. 그것은 비너스와 이브와 성모 마리아를 모두 포함함으로써 신화의 이야기를 기독교와 합치시키는 시각적 모티프로 여겨진다. 결국 그 조가비는 신성함을 세속으로 이끄는 매체이며 다시 세속에서 신성함을 추구하는 데 필요한 도구인 것이다. 그렇다면 세속에서 신성함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길은 바로 성 야고보가 제시한 순례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닐까? 비너스의 가리비 껍데기는 이렇게 다시 야고보의 가리비와 부합되며 육체적, 정신적 순례의 모든 의미를 상징적으로 가리킨다.
박은영 미술사가·서울하우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