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경기 침체로 위축된 부자들… 금융권 PB 영업도 어렵다

현장을 가다 광주광역시·전남권

지방 부자들이 전반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띤다지만, 광주·전남 지역 부자들은 그 정도가 더한 편이다.

부자 수가 다른 권역에 비해 적은 데다 지역 규모도 워낙 작아 자신의 부가 드러나는 걸 꺼려하는 측면이 강하다.

더구나 이렇다 할 개발 이슈가 없었던 탓에 부의 확대 또한 두드러지지 않아 더욱더 안정을 추구한다.

이런 이유로 지역 내 금융 관계자들은 프라이빗뱅킹(PB) 영업에 어려움을 토로하는 실정이다.


기아자동차 광주 공장의 정문에 세워진 기아자동차 쏘울 조형물. 광주 지역은 기아자동차, 금호타이어 등 지역 내 대형 제조업체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도시는 조용했다. 주 역세권이 송정역으로 옮겨간 탓도 분명 있겠지만, 고속철도(KTX) 광주역에서 금융기관이 밀집한 금남로까지 이동하는 동안 시야에 들어온 도시의 풍경은 예상보다 훨씬 더 소박했다. 심심찮게 보이는 중대형 이상 고급 외제차들이 그나마 부유층의 삶을 대변하는 듯했다. 이러한 분위기를 뒷받침하듯 광주 지역에서 만난 금융권 관계자들은 “광주 지역은 별다른 이슈 없이 침체가 계속되고 있다”고 거듭 말했다. 실제로도 광주를 비롯한 전남 지역은 별반 눈에 띄는 호재가 없었던 게 사실. 광주전남혁신도시가 조성 중이긴 하지만 생각만큼 반향도 크지 않은 편이다.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의 ‘2013 한국부자보고서’에서 명시한 부자 수를 보더라도 광주가 2700명, 전남이 2200명으로 부산 및 경남, 대구 및 경북 지역에 비해 적은 수치다.


광주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값을 자랑하는 봉선동 포스코 더 샵 단지

사업 소득 바탕으로 금융 투자로
돈 번 부자 많아
광주 지역 부자들은 전국 분포와 비슷하게 50대가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40대 이하의 경우에는 의사 등 전문직에 종사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부의 축적 과정을 보더라도 광주·전남 지역은 기아자동차, 금호타이어 등 지역 내 대형 제조업체들과 관련된 중소 하청업체와 건설사 등 사업체 운영 소득이 첫째이고, 그다음으로 신도심 개발 등으로 인해 부동산 혜택을 본 경우와 금융 투자로 수익을 창출한 경우 등이 있다. 금융 투자는 보통 사업에서 일차적으로 얻은 소득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크게는 최고경영자(CEO)형 부자와 대기업 직원 및 전문 직군 기반의 부동산형 부자로 나눌 수 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건 다른 지역에 비해 상속 부자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최현진 하나대투증권 광주지점 VIP 프라이빗뱅커(PB)는 이에 대해 “보통 상속 부자라고 하면 부동산을 물려받아 이뤄지는데, 광주 지역은 빌딩이라고 해 봐야 가격이 높지 않다”며 “현재 상권이 밀집한 지역도 최근에 형성된 것이라 과거에 부모로부터 부동산을 물려받았다면 별로 돈이 안 되는 농지나 토지가 대부분일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2013년 국세청 통계를 보면 광주와 전남 지역 피상속인 수는 각각 55명, 38명으로 전국에서 거의 꼴찌에 가깝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자들은 부동산 자산보다 금융 자산 보유를 선호하는 편이다. 부자라고 하더라도 자산 규모가 크지 않고, 지역 부동산 또한 투자 개념으로 접근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 그나마 부동산 투자에 관심 있는 부자들은 지역을 벗어나 투자처를 확대하는 양상이다. 조해란 광주은행 PB복합사업부 PB센터장은 “부동산 투자의 경우 임대소득을 올릴 수 있는 상가 투자가 많은 편인데, 광주에 국한하지 않고 서울에 오피스텔을 구매하는 등 서울·경기권으로 확대하는 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서는 최현진 PB도 의견을 같이 한다. 그는 “특히 50억, 100억 원 이상 초고액자산가들이 포트폴리오를 분산, 운용하는 과정에서 전국 무대로 간 지는 꽤 된 것 같다”며 “서산이나 당진 등 개발 이슈가 있는 지역을 비롯해 서울, 경기도 쪽으로 진출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수입차 매장 모습

일부 부동산 투자에 적극적인 고액자산가를 제외하고 광주 지역 부자들은 자의 반 타의 반 금융 자산을 50% 이상 높게 가져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금융 자산 내에서도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를 선호하는 편인데, 특히 나이가 있는 전통 부자들은 돈을 굴리기보다 갖고 있는 자산을 잘 지켰다가 자녀 세대에게 물려주려는 의식이 강해 훨씬 더 보수적인 성향을 띤다. 최현진 PB는 “보수적인 성향의 부자들은 주가연계증권(ELS)이나 주식혼합·채권혼합형 펀드처럼 안정적 수익을 추구하는 편이고, 일부 젊은 부자들의 경우 공격적인 주식형 펀드나 해외 펀드에도 투자하며 해외 출장 등 글로벌 경험이 있는 극히 일부는 해외 주식에 직접 투자하기도 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주식투자 종목에서도 지역 성향이 드러난다. 기업을 운영하는 CEO들은 사업 연관성으로 지역 내 상장 기업에 투자하기도 하고, 비사업자라 하더라도 지역을 기반으로 한 종목에 투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역 사회 특성상 한 다리 두 다리 건너 얻을 수 있는 기업 관련 정보들을 주식투자 등에 활용하는 편이라는 게 금융권 관계자들의 얘기.

그런가 하면 금융종합과세 기준이 2000만 원으로 낮아지면서 과세를 피하기 위한 용도로 비과세 혜택을 볼 수 있는 보험 상품에는 세대 구분할 것 없이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조해란 센터장은 “금융 자산 내에서도 예금이 40% 이상을 차지하고, 안정적인 혼합형 상품이 30%, 보험이 20% 정도”라고 설명했다. 최현진 PB는 “지방 부자들의 경우 금융종합과세에 더 민감해한다”고 전제한 뒤 “부자 수가 많지 않다 보니 과세 대상이 되면 그만큼 더 튀어 보일 수 있다는 생각에 불안해하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신도심의 이전으로 분위기가 썰렁한 광주역 인근

같은 이유로 지역 내 금융권 PB들은 영업 환경이 녹록지 않다. 이 부분에서 은행 PB와 증권사 PB의 고민은 약간 다른 경향을 띤다. 조해란 센터장은 “PB 영업을 하려면 안정형과 투자형이 함께 가면서 활발하게 이뤄져야 하는데, 진짜 부자 고객들은 절대 안정을 추구하기 때문에 다양하게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고, 최현진 PB는 “부가 드러나는 것을 극히 꺼리다 보니 자산 규모를 솔직하게 오픈하지 않아 힘든 점이 있지만, 마음 열기가 어려운 만큼 한번 고객이 되면 오래간다는 장점이 있다”고 전했다. 광주 외 다른 전남 지역은 아예 PB 자체가 없어 파이낸셜플래너(FP) 추천에 따라 그때그때 상품을 조정하는 상황. 자산관리를 받는 경우라 해도 부동산 자산 50%, 금융 자산 50%(은행 40%·증권 10%) 등으로 절대 안정을 추구한다.


수완지구·봉선동 등
학군 중심 단지에 부유층 밀집
광주 내 부동산 경기는 신도심 개발과 궤를 같이 한다. 큰 변화 없이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도 관련 이슈가 있을 때면 조금씩 들썩이며 지역 내 부의 이동을 이끌어 왔다. 수완지구 개발이 그 대표적인 예. 2000년대 초반 시작돼 후반 마무리된 수완지구는 분당을 개발 모델로 한 주거 도시로 설계됐다. 현재 아파트와 고급 주택 단지 등이 들어서 있는 수완지구에는 3만여 가구가 살고 있으며 단연코 광주에서 가장 떠오르는 지역이다. 거주하는 인구 또한 전문직, 대기업 직원 등 광주 내 신흥 부유층에 해당하는 이들이 대부분. 교통이 편리하고 모든 편의시설이 인근에 갖춰져 있는 데다 특히 유흥가가 없는 교육특구라는 점 때문에 앞으로 더 발전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광주에서 부동산으로 부를 축적한 이들의 상당수가 수완지구 덕을 톡톡히 봤다. 최초 분양 당시에 비해 현재 가격이 2배 이상 오른 데다, 이 지역의 아파트를 여러 채 소유하고 있는 부자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원래는 주거 기반으로 설계됐지만 인구 유입이 많아지면서 고급 상권도 함께 형성 중이다. 수완지구 인근 부동산 관계자에 따르면 수완지구 내 고급 상권은 3.3m²당 2000만 원에 육박하기도 한다고. 가장 번화한 상권으로 꼽히는 상무지구는 권리금, 임대료 등이 수완지구보다 높지만 업종별로 빈익빈 부익부가 심해 현재는 상권도 수완지구로 옮겨가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광주에서 가장 가격이 높다는 포스코 더 샵이 들어서 있는 서구 봉선동도 과거 대비 아파트 가격이 많이 오른 지역으로 손꼽힌다. 광주 내 최초의 브랜드 아파트로 분양 당시 엄청난 화제가 됐던 포스코 더 샵은 3.3m²당 1200만~1300만 원 선.


전주 한옥마을 전경. 전주·전북 부자들 중 다수는 부동산으로 부를 축적했다.

신흥 부자들의 확대는 광주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부자가 많기로 유명한 여수에서도 나타난다. 화학 경기와 운명을 같이 하는 여수의 경우 최근 화학 경기가 둔화하면서 하청업체 오너들의 성장세는 더디고 공단 메이저 기업 근로자들이 고임금을 바탕으로 신흥 부자 대열에 합류 중이라는 게 미래에셋증권 여수지점 관계자의 얘기.

신흥 부자들은 소비도 함께 이끌고 있다. 광주에는 최근 신도심을 중심으로 수입차 매장이 확장되거나 새로 들어서는 등 달라진 소비 분위기를 증명하고 있는데, ‘사모님’들이 주요 고객이다. 송정역을 중심으로 백화점들도 즐비하지만 서울·경기권처럼 명품 등이 입점하지 않아, 간혹 ‘명품대전’ 등이 열릴 때면 줄을 설 정도다.

아파트 및 부동산 가격을 중심으로 조금씩 꿈틀대고 있는 광주 지역 분위기는 2015년까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KTX 호남고속철도가 개통되고, 2015년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선수촌 아파트가 들어서며, 전남도청 등이 무안으로 이전하면서 도심 공동화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는 금남로 주변 구도심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오픈하는 등 이슈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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