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을 위한 단절 연습
미국 실리콘밸리의 경영자들 사이에 연결을 위한 단절 훈련이 유행이다. 내 뇌로 끊임없이 유입되는 외부 자극을 잠시 차단하고 내면과 연결하는 훈련을 통해 내가 나를 모니터링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모니터링 능력이 커지면 삶의 여유가 생기고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진짜 내 인생을 살기 위해 필요한 모니터링 능력,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가와 관련된 중심 단어는 무의식과 시스템이다. 내가 내 인생을 모두 결정해 행동하는 것 같지만 실제는 무의식과 시스템의 영향을 부지불식간 깊이 받고 있다.
그렇다면 무의식과 시스템은 어떤 녀석들일까? 무의식은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뇌의 활동이다. 내 머리 안에 있는 뇌의 최소 반은 자동으로 작동하고 있다. 자동이란 말은 좋은 말이고 다르게 표현하면 내 통제를 받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다. 마음에 잘 와 닿지 않는다면 꿈을 생각해 보면 된다. 꿈꾼 기억이 나지 않아도 모든 사람은 하루 평균 30분의 꿈을 꾼다. 현실적인 불안이 내용으로 나오기도 하지만 아주 황당하고 기괴한 내용의 꿈을 꾸기도 한다. 내가 내 마음을 다 통제하고 있다면 꿈의 내용을 원하는 것으로 정할 수 있을 텐데 불가능하다. 내 의지가 손닿지 않는 영역인 무의식이 자체 제작하는 단편 영화인 셈이다.
무의식은 꿈꿀 때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눈을 감고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면 끊임없이 여러 생각들이 들락날락한다. 내가 의지로 만들어 낸 것들이 아니다. 그 생각들을 없애 버리려 노력해도 잘 되지 않는다. 마음을 관리하는 게 어려운 건 내 마음인데 내 마음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갑자기 사랑에 빠지는 것도, 보자마자 괜히 싫고 미운 사람도 무의식의 반응이다. 내가 결정한 듯하지만 막상 논리적인 이유가 떠오르지 않을 때가 많다.
자아의 분리 능력을 키우기 위한 몇 가지 팁
그럼 시스템은 무엇일까. 무의식이 내부적, 생물학적 영향력이라면 시스템은 외부적, 사회적 영향력이다. 사회에서 의미 있다고 여겨지는 가치들이 언어를 통해 개인과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고 점점 확대돼 큰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시스템이 주는 메시지를 절대적인 것이라 믿는 경향이 있지만 절대적 가치라 믿었던 것이 반세기가 지나기도 전에 완전히 반대되는 가치에 자리를 내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어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란 말을 요즘 했다가는 큰일 나겠지만 20년 전만 해도 이 이야기는 여성이 여성에게도 했던 말이다. 여자는 조용히 집안 일 하며 남편 내조하는 것이 의미 있는 삶이라는 시스템의 메시지가 개인에게 영향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페미니즘은 그 시스템의 메시지에 반격하는 새로운 메시지다. ‘여성은 남자의 보조자도 아니고 남자보다 약하지 않다’란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진 것이다. 과거에는 한 살 연하와 결혼해도 창피해서 수십 년을 숨기고 산 어머님들도 있었는데 요즘 연하남과 결혼하는 것은 특별한 일도 아니고 능력 있고 멋있는 여성이라는 느낌마저 주고 있다. 우리 마음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시스템의 메시지가 변한 것이다.
그런데 시스템과 무의식이 나도 모르는 사이 서로 내통하는 것으로 돼 있다. 시스템이 주는 메시지가 무의식화된다는 것이다. 메시지와 무의식의 내재된 본능이 서로 엉켜 내 마음에 자리 잡고는 나를 움직이고 있다. 심리학적 자유는 그 영향력을 내가 볼 수 있을 때 찾아온다.
디지털 세상을 주도했던 미국 실리콘밸리의 경영자들에게서 ‘disconnect to connect’ 즉 연결을 위한 단절 훈련이 유행이다. 내 뇌로 끊임없이 유입되는 외부 자극을 잠시 차단하고 내 내면과 연결하는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왜일까.
연결을 위한 단절 훈련은 자신의 내부를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이를 자아의 분리(ego-splitting)라고 한다. 이론적인 이야기이지만 자아는 내가 ‘나’를 ‘나’라고 인식하는 영역이다. 나는 살면서 주변과 반응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주체다. 이 친구를 두 개로 나누는 훈련을 하는 것인데 하나는 삶을 경험하고 실제 살아가는 자아와 그 삶 속의 자아를 관찰하는 자아로 나눈다는 것이다. 즉 내가 나를 모니터링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모니터링 능력이 커지면 삶의 여유가 생기고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채찍질만 해대는 무의식과 시스템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하나의 정보로 그것을 다룰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내가 내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한 발짝 떨어져 내 뇌가 만드는 생각과 감정을 모니터링하는 연습이 필요한데 실제 우리는 뇌에서 무언가를 지시하면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내 마음을 잘 모니터링하기 위해서는 우선 뇌에서 흘러나오는 내용들에 즉각 반응하는 것을 잠시 끊고 살며시 내 마음을 바라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몇 가지 팁을 정리해 보았다.
1. 세 번 깊게 호흡하며 그 호흡의 흐름 느끼기
출근해서 컴퓨터가 켜지는 동안, 회의 시작 전에 또는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면서 호흡의 흐름을 느끼며 마음을 느껴 본다.
2. 조용한 곳에서 밥 음미하며 먹기
음식의 색깔, 향, 그리고 밥알의 움직임을 느끼며 먹는 천천히 먹기(slow eating)도 내부 세계에 집중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3. 하루 10분 사색하며 걷기
여유롭게 몸의 움직임을 느끼는 경우 뇌의 긴장감을 이완시키고 내 마음을 바라보는 여유가 생긴다.
4. 일주일에 한 번 벗과 힐링 수다 떨기
지치고 불안한 마음은 내 마음의 바라볼 여유를 가지지 못한다. 공감 수다만 한 위로가 없다.
5. 슬픈 영화나 슬픈 작품 주 1회 감상하기
즐겁고 재미있는 내용으로 마음을 조정하는 것을 기분 전환이라 하는데 기분 전환만 주로 쓰다 보면 내 마음의 슬픈 콘텐트를 바라보는 능력이 줄게 된다.
6. 일주일에 세 편의 시 읽기
사람의 마음은 논리보다 은유에 움직인다. 은유에 친숙해지는 것은 내 마음을 바라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7. 스마트폰 집에 두고 당일치기 기차여행 하기
기차 창문을 멍하니 보다 보면 명상 효과가 일어나고 내 마음을 바라보는 힘이 자라난다.
단순해 보이지만 이런 연습을 하다 보면 내 뇌가 만들어 내는 생각과 감정이 하얀 스크린에 비춰지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심리학적 자유는 내가 나를 바라보는 여유에서 찾아온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여유가 창조적 마인드를 갖게 하고 비즈니스에서의 성공도 가져온다는 것이 최신 뇌과학의 주장이다.
글·사진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