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만든 고전들_일곱 번째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한 줄기 구원과 희망을 꿈꾸며 굴뚝에 올라 작은 공을 쏘아 올렸던 난장이는 공과 함께, 희망과 함께 굴뚝에 처박혔다.그는 분명 죽었지만 그대로 묻을 수가 없다. 아직은 그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영원히 추락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70년대 개발 붐 속에 희생된 하층민의 삶을 다룬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한 ‘불편한 진실’들을 직시하게 한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다. 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돼 내려왔는데, 다른 아이는 그을음이 전혀 없는 상태로 내려왔다. 두 아이 중 누가 얼굴을 씻을 것인가. 선생님이 물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그을음이 잔뜩 묻은 아이가 씻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깨끗한 아이가 더러운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심정으로 얼굴을 씻을 것이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그러자 교사는 모두 틀렸다고 말한다. “두 아이는 함께 똑같은 굴뚝을 청소했다. 따라서 한 아이의 얼굴이 깨끗한데 다른 아이의 얼굴이 더럽다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그렇지 않은가. 그럼에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두 아이의 얼굴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그저 선생님의 물음에 답변하기에 급급했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실린 ‘뫼비우스의 띠’의 한 장면이다. 정녕 굴뚝 안에 같이 있었다면, 두 아이의 얼굴은 같을 것이다. 그럼에도 ‘다를 수도 있다’고 가정하자, 교실 안의 아이들은 금세 그 물음에 답하기에 급급하다.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보자. 앉은뱅이와 꼽추의 집은 무너졌는데, 쇠망치를 든 자의 집은 무너지지 않았다. 누가 그 자리에 집을 다시 지을 것인가. 소설에서 다시 묻는다. 사람들은 집이 무너진 자들이 다시 집을 지을 거라고 얘기할 수도 있고, 쇠망치를 든 자가 집을 지을 것이라고 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알다시피 이런 답변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못한다. 물어야 할 것은 왜 꼽추와 앉은뱅이의 집이 무너지는 해괴한 참경이 벌어졌는지 하는 이유다. 소설이 물어야 할 것을 제대로 묻지 못 한다면 그것은 단지 언어놀음일지도 모르겠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1976년 발표된 후 현재까지 100만 부 이상 팔린 명실공히 베스트셀러이자 한국의 대표적인 고전, 일명 ‘난쏘공(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약어)’이다.
행복동 46번지, 철거로부터 시작된 몰아치는 불행
‘난쏘공’은 1970년대 개발 붐 속에서 희생되는 하층민의 삶을 다루고 있다. 한 집안의 가장이자 아버지인 ‘김불이’는 117cm 키에 몸무게가 37kg으로 묘사되는 ‘난장이’이다. 이렇게 김불이 씨를 ‘난장이’로 부르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난장이의 아들 영수는 사람들이 아버지를 ‘난장이’로 부르는 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맞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난장이’라는 사실밖에는 알지 못한 채 난장이라고만 부르는 이 식별의 방식은 ‘다섯 식구의 모든 것을 걸고 그들이 옳지 않다는 것을 언제나 말할 수 있다’. 김불이 씨는 영호의 아버지였으며, 책읽기를 좋아했고, 때로 남들과 악수할 때 발뒤꿈치를 들어야 함에도 ‘우리들에겐 거인처럼 보이는’ 한 집안의 가장이자 또 한 생명이다. 그런데 이들은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지 못한다. 이들에게 몰아치는 불행은 ‘김불이’를 포함한 ‘식구의 모든 것’을 밑동 채 흔들고 거두어 버린다.
그 일은 철거로부터 시작된다. 서울시 낙원구 행복동 46번지에 날아든 철거 계고장(戒告狀). 입주권을 준다고는 하지만 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해서 필요한 나머지 자금이 턱없이 부족하고, 혹여 어렵게 들어간다 하더라도 매달 내는 돈을 감당할 수 없다. 심지어 입주권을 판다 하더라도 세입자 몫으로 떼 주고 나면 이들이 가져가는 돈은 거의 없다. 김불이 씨는 돈이 되는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려고도 한다. 서커스단 일이다. 평생 그가 해 온 일은 채권 매매, 칼갈이, 고층 건물 유리닦이, 펌프 설치하기 등 다섯 가지 일인데 이젠 나이도 들어 눈도 어두워지고 머리숱도 많이 빠져서 또래의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선택한 일이 서커스 일이다. 김불이 씨는 자신이 무대 위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해 꼼꼼히 듣고 궁리도 해 보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학교에 다니던 영호와 영희는 학교를 그만두었다. 어머니는 인쇄지 제본공장에 가서 접지 일을 했다. 맏아들 영수도 인쇄소 일을 했다. 학교를 그만둔 둘째 아들 영호까지 가구공장에 나갔다. “우리는 죽어라 하고 일했다. 우리의 팔목은 공장 안에서 굵어갔다.” 이 ‘난장이’ 가족들은 ‘남아프리카 원주민이 일정한 구역 안에서 보호받듯이 이질집단으로서 보호를 받는다’고 느낄 정도로 학교로부터, 사회로부터, 친구로부터, 연인으로부터 멀어져 간다. 오직 남은 것은 김불이 씨와 아내, 그리고 ‘죽어라 일하는’ 세 남매뿐이다.
이 집안의 막내, 영희에게는 한 가지 바람이 있다. ‘주머니가 달린 옷을 입고 싶다’는 것이다. 남들처럼 주머니가 달린 옷을 입으면 그 안에 ‘돈’도 넣을 수 있고 먹을 것도 누군가 넣어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희에게는 먹을 것도 ‘돈’도, 그리고 ‘주머니 달린 옷’도 없다. 사람들은 영희가 ‘난장이 딸’이라고 해도 믿지 않았다. 영희가 예쁘게 생겼기 때문이다. 맏아들 영수도 ‘아버지가 난장이가 아니었다면 학자가 됐을’ 사람이다. 틈만 나면 책을 읽었다. 영수가 본 세계는 공부를 한 자와 못 한 자로 나뉜다. 영수가 이 세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슨 책이든 읽어야 한다. 영호와 영희도 오빠 영수의 말을 따라 인쇄소에서 가져 온 교정쇄를 읽었다. 책은 이 아프리카 원주민이 된 난장이 가족이 달나라를 상상하고,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 유일한 망원경이자 창문이다. “책은 형에게 무엇이든 주었다.” 그러나 동생 영호의 생각은 달랐다. 책을 본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아버지 김불이도, 형 김영수도 책을 보았지만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봐야 ‘난장이의 자식들’일 뿐이다. 아버지의 아버지도,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도, 그리고 그 아버지의 아버지와 영호도 새로운 삶을 꿈꾸었겠지만, 결국 난장이로 사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적어도 영호가 보기에, 그리고 분명히 단언할 수 있는 것은 굴뚝에 들어간 두 아이의 얼굴 중 한 아이의 얼굴에만 지속적으로 그을음이 묻는다는 사실이다.
우리 모두가 아는 비밀 ‘난장이는 죽었다’
벼랑 끝에 놓인 김불이 씨, 더 이상 이 세상에 거처할 공간도 그 어떤 일조차 쉽지 않은 김불이 씨. 그럼에도 그는 뉴턴이 주장한 법칙과 언론이 떠드는 우주 개척시대의 이상 속에서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대해 꿈꾼다. 달나라에서도 ‘유리닦이’는 필요하지 않을까. 그곳에서라면 ‘유리닦이’를 계속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 땅에서 끝까지 고생하다 바짝 마른 몰골로 죽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김불이 씨는 결국 입주권을 팔게 된다. 그가 선택한 것은 벼랑 끝에 한 줄기 구원이다. 굴뚝에 올라가 달나라를 향해 작은 공을 쏘아 올린다. 그리고 공이 갈 데 없이 떨어진 것처럼, 희망도 김불이씨도 굴뚝에 처박혀 죽게 된다. 입주권을 찾으러 집을 나갔던 영희는 몸에서 피가 뚝뚝 흐르는 아버지 김불이 씨를 보면서 ‘아아아아아아아 하는 울음이 느리게’ 터져 나온다. 영희는 오빠 영수에게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부르는 악당은 죽여 버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말의 여운이 다하기도 전에 “꼭”이라는 말로 소설이 끝난다.
난장이가 죽었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비밀이다. 그가 죽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대로 묻을 수 없기에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비밀이다. 아직은 아버지 김불이 씨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영원히 추락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 누군가 지속적으로 ‘공’을, 그리고 ‘희망’을 쏘아 올릴 것이고 또 누군가는 달나라에 쏘아 올린 공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난장이가 죽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모두 알고 있다. 때로 그 벼랑이, 그 굴뚝이 언제 우리 삶 안으로 불쑥 들어올지 몰라 두렵기도 하다. 이미 난장이가 된 이들을 보아 왔고, 굴뚝으로 올라간 이들을 보아 왔으며, 그렇게 희생된 자들도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영수와 영호, 그리고 영희들이 잘 살고 있는지 그들의 안부를 물어보아야 한다.
박숙자 서강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