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MESSAGE] 추적자 vs 도망자 패턴 끊으려면

심리적으로 다른 종족, 남녀 간 대화의 근본적 차이

“이야기 좀 하자”고 하면 회피하고 침묵시위를 하는 남편 때문에 화병에 걸려 진료실을 찾는 아내들이 적지 않다. 그런가 하면 반대로 한번 시작하면 들들 볶고 과거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는 아내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다며 찾아오는 남편들도 있다.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으려면 침묵이 최선이라고 남편들은 주장하는데, 이런 남녀의 소통 갈등, 무엇이 원인일까.



남자와 여자는 무엇보다도 대화의 동기가 다르다. 보통 남자들은 대화에 명확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목적 지향적 소통을 하는 것이다. 대화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따라서 효율성이 중요하다. 논리적이고 함축적일수록 좋은 대화라고 생각한다. 반면 여성들은 감성 지향적 소통을 한다. 여성에게 대화는 상대방과의 친밀감을 상승시키는 수단이고 기회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 사이 필요한 대화의 양이 현저히 차이 난다. 여성에게 대화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탐구하고 조직화하는 시간이고 하나의 스토리를 만드는 과정이다. 그리고 자신의 감성과 생각으로 이루어진 스토리를 상대방에게 충분히 전달하는 과정이다. 대화 안에 정보가 얼마나 정확한가는 그다음 문제다. 대화를 통해 내 마음을 상대방이 알아줄 때까지 대화가 이어져야 한다. 이에 비해 남성은 대화에 있어 효율성을 추구하기에 스토리 중 꼭 필요한 부분만 추리고 추려서 이야기한다. 그래서 남성들은 여성들의 대화가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다. 왜 아내는 요점부터 이야기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이야기하는지 말이다. 그래서 참지 못하고 대화에 끼어들어 “요점부터 말해” 하기도 하고 자기가 원하는 대답을 들으면 대화를 중단하고 나가 버리기도 한다.


목적도, 대화의 양도
현저히 다른 남녀의 소통법
남성은 상대방과 대화를 시작할 때 뇌가 매우 논리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상대방이 나에게 대화를 시작한 이유는 나에게 조언을 얻고자 함이라 추정하기 때문이다. 모든 대화를 분석해 무언가 내가 해 주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셈이다. 이에 비해 여성은 대화 자체가 대화의 목적이다. 내 이야기를 충분히 하고 또 상대방이 그것을 잘 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논리적이고 정교한 해결책 없이 “다 잘 될 꺼야”란 막연한 말로 대화가 끝나도 충분히 감성이 공유됐다면 대화에 만족해한다.

그리고 여성들은 속상한 일이 있을 때 그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표현함으로써 부정적인 감정을 날려 버리고 평온을 찾는 전략을 쓴다. 분노나 억울함 같은 부정적 감정을 상대방이 공유하고 인정해 줄 때 마음에 안식이 찾아온다. 이에 비해 남성은 적극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조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불을 끄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소방관 캐릭터다. 아내가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면 견디지 못하고 부정적인 감정 표현을 즉각적으로 없애기 위해 해결책을 빠르게 찾으려 한다. 그러다 보니 뇌가 이성적이며 분석적인 상태가 되고 아내의 감성적인 대화를 문자 그대로 인식하기 쉬워진다. “여보, 나 어디로 훌쩍 떠나고 싶어”라는 아내의 말에 “정말, 많이 힘들구나!”가 아니라 “어디까지, 며칠이나 다녀오면 되겠는데?”란 반응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성과 달리 남성들은 속상한 일이 있을 때 어디 동굴에 숨어 버리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힘든 마음을 나누고 싶어 하는 여성의 마음과는 거꾸로 가는 반응인 셈이다. 세상과 뇌를 단절시켜 쉬고자 함이다. 왜냐하면 남성은 끝없이 분석하고 해결 방법을 찾아내려고 하기에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면 뇌가 지쳐 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아내는 속상할 때 수다 모드로 전환,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이해 받아야 하는데 남자는 속상할 때 침묵 모드로 들어가 버리니 갈등이 생길 수밖에.

이렇게 다르기 때문에 남편과 아내가 서로 소통하다 보면 답답함을 느끼기 쉽고, 왜 나를 이해하지 못 하느냐고 섭섭해하다가 대화 자체가 줄어드는 결과가 일어난다. 그리고 ‘우리는 잘못 만났어’라는 데까지 생각이 이르게 되고 결국 사랑마저 식어버릴 수 있다. 종종 남자 중에도 여성형 소통 능력을 갖고 태어난 이도 있고 반대로 여성 중에도 남성형 소통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 남녀 소통법의 차이로 인한 부부 대화의 갈등은 매우 일반적인 현상이다. 배우자를 잘못 만났기 때문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다른 종족을 만났기 때문에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여자, 다른 남자로 바꾸어도 성별 차이에 따른 소통의 갈등은 여전히 발생할 수 있다.


아내의 수다와 남편의 침묵이 빚는 갈등, 그 중재 비법
아내와 대화하다 보면 자꾸 싸우게 되는 남편들에게 ‘아내 말 이어서 받아주기’를 권한다. 적극적인 호응을 보이는 소통법이다. “여보, 나 오늘 내 친구 미자 때문에 너무 짜증 났어요”라는 말에 “왜 무슨 일이었는데”라며 분석부터 하지 말고 “헐~, 오늘 미자 때문에 짜증났었구나!”라며 말을 이어 다시 반복해 주는 것이다. 단순하지만 매우 효과가 좋다.

그리고 아내가 수다 모드로 들어가면 침묵 모드로 들어가는 남편과의 소통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먼저 문제의 본질을 파악해야 하는데 사람이 아닌 관계의 패턴에 집중해야 한다. ‘너의 행동이 우리 관계의 문제야’, ‘네가 바뀌면 우리 관계의 모든 것이 개선될 수 있어’ 같은 생각과 대화는 상황을 악화시킨다. 심리적 특성상 아내가 추적할수록 남편은 더 도망칠 수밖에 없고 더 도망치는 남편을 잡기 위해 아내는 더 추적할 수밖에 없다.

‘추적자 대 도망자’ 패턴을 초기에 끊는 것이 중요하다. 안전한 단어(safe word) 전략이란 것이 있다. 부부가 대화를 나누다 추적자 대 도망자 패턴이 나오려고 하면 먼저 인식한 배우자가 미리 정해 놓은 안전한 단어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안전한 단어는 감정이 섞이지 않은 중립적 단어다. ‘라면’도 될 수 있고 ‘제주도’도 될 수 있다. 안전한 단어를 상대방이 이야기하면 대화를 중지하기로 서로 미리 약속해 놓는 것이다. 그리고 좀 떨어져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정리한 후 다시 만나 인내를 가지고 차분하게 자신이 느꼈던 감정과 이슈들을 서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참, 남녀가 다르고 오해가 있었구나’라고 느낄 수 있다. 대화 중 속 터지게 언제 그런 것까지 따지느냐 반문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인내가 상대방에 대한 사랑 아닐까 싶다. 더구나 효과까지 좋으니 해 볼 만하지 않은가.


글·사진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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