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ARCHITECTURE] 온기를 품은 ‘틀’과 ‘선’, 주거 그 이상의 스토리
입력 2014-07-02 13:18:12
수정 2014-07-02 13:18:12
서승모 소장의 취향을 담은 집
온기와 취향, 그리고 결. 서승모 소장의 건축을 설명하기 위한 키워드가 있다면 바로 그 세 단어다. 단어 하나하나가 품고 있는 따뜻함과 은은함은 건축물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서 소장이 지향하는 ‘평범한 집’은 그렇게 집 이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건축주를 고르는 건축가라고?’ 서승모 소장에 대한 호기심의 일정 부분은 어느 한 매체에 실린 서 소장에 대한 글이었다. 건축주와 취향이 맞지 않으면 돌려보낸다는 내용이었는데, 그 ‘취향’에 대해 궁금증이 일었다. 얼마나 까다로운 취향이기에 건축주를 고른다는 걸까. 결과부터 말하자면, 그건 맞는 말이기도 했고 틀린 말이기도 했다.
“생각보다 취향이 없는 사람이 많아요. 취향이 없는 건 그럴 수 있는데 뭘 할지조차 모른다면 같이 일하기 힘들지 않겠어요. 집을 짓기는 해야겠는데 건축가는 필요할 것 같고, 그저 이미지만 보고 선택해서 온 경우에는 이야기 자체가 안 되는 거예요. 설득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집을 지을 수가 없는 거죠.”
그러니까 이건 취향에 대한 일방적인 ‘고집’이 아니라 서로 ‘공감’이 가능한지에 대한 얘기였던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 소장은 취향이 분명한 편이긴 하다. 다만 그 폭이 좁지 않아 그 안에서 다양한 이야기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어떤 면에선 서 소장이 대표로 있는 ‘사무소 효자동’이 위치한 서울 종로구 청운동의 동네 분위기가 그의 스타일과 닮아 있는 듯했다. 딱 떠올리면 하나의 이미지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 걷다 보면 이렇기도 하고 저렇기도 하며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다양한 즐거움과 이야기가 있다고나 할까.
“제가 좋아하는 건 크게 말하자면 따뜻하면서도 미니멀한 공간이에요. 미니멀은 찬 속성인데 그 안에 여러 질감들이 채워지면서 온기가 담기고 빛이 채워지는 느낌을 좋아하죠. 빛을 들일 때도 한 공간 안에 창을 두세 개 넣어서 각각 창을 통해 들어온 빛들이 살랑거리는 게 좋아요. 공간감도 기본적으로 타이트하지 않고 마치 파자마처럼 헐렁한 걸 좋아하고요.”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경원대 건축학과와 도쿄예술대학 대학원에서 건축학 석사 과정을 마친 서 소장은 2004년 귀국, 독립적으로 건축 활동과 대학 강의를 병행하다 2010년 사무소 효자동을 오픈했다. 사무소를 내고 본격적으로 활동한 지는 이제 4년 남짓이지만, 국내에 들어와 10년간의 포트폴리오는 그야말로 다양하다. 주거 공간과 상업 공간, 그리고 사원에서 인테리어, 리노베이션에 이르기까지 폭 넓게 활동하며 시쳇말로 ‘잘 팔리는’ 건축가가 된 그는 그 이유에 대해 ‘보수적인 경향’을 들었다.
“저희 사무소 디자인 스타일이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편이에요. 특히 집에 대해서는 더 그래요. 무서워서라도 실험적인 디자인을 많이 하지 않죠. 건축 비즈니스는 완벽하게 신뢰 기반이에요. 건축에 대한 좋고 나쁨의 평가는 비평이 아니라 건축주들의 만족도입니다. 솔직히 매체 인터뷰만 보고 의뢰하러 오는 분은 거의 없어요. 대부분 살아 보고 만족한 건축주들이 지인들에게 소개해서 확장되는 거죠. 더구나 건축은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잖아요. 누군가는 작품으로 대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만드는 주거 공간을 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평범한 집이되 도시 미관을 해치지 않으면서 정리가 필요한 부분을 잘 풀어내는 게 우리의 과제죠.”
그러나 서 소장의 집들은 결코 평범하지만은 않다. 튀지 않고 묻힌 듯하면서도 디테일을 살려 ‘에지’가 있는 건축, 그게 바로 서 소장이 켜켜이 쌓아 온 그만의 ‘결’이다.
어긋난 선과 열린 시선, 대전 주택
소아과 의사가 건축주인 대전 주택에도 서 소장의 ‘결’은 그대로 드러난다. 지난해 완공, 입주한 이 주택은 건축주와의 인연부터가 아주 특별했다. 현재 서 소장이 살고 있는 서촌 한옥이 바로 건축주가 어린 시절 살았던 집이었던 것. 게다가 건축주의 부인이 일본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다는 것까지 서 소장과는 공통점이 많았다. 그렇게 남다른 ‘관계’로 시작한 작업의 과정은 디테일한 소통의 과정을 거쳤고, 결과물은 완성도 면에서나 건축주의 만족도 면에서 탁월했다. 집을 짓기 전 건축주 부부의 요구 사항은 두 가지였다. 일본의 생활 잡화 브랜드인 ‘무인양품(Muji)’ 같은 집을 원한다는 하나의 큰 이미지와 함께 수납 효율을 높여 달라는 것. 집의 기능적인 면을 최대한 살리는 것을 비롯해 나머지는 모두 건축가의 몫이었다. 서 소장은 건축주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집에 대한 그림을 하나둘 완성해 나갔다. 일단 외형적으로는 도시 미관상 솔리드해 보이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 집 전체 외벽의 재료와 마당을 살짝 가린 벽의 재료를 분리했다. 마당이 가려졌기 때문에 밖에서 보면 2층만 노출돼 있는데 그나마 1층에 비해 60cm가량 안으로 들어가 있고 ‘기역(ㄱ)’자로 배치해 과도하게 커 보이는 느낌이 전혀 없다.
이런 구조 때문에 연 면적 약 198m² 정도의 집은 규모에 비해 동선이 커졌고 그 덕분에 집이 더 넓고 크게 느껴지는 효과까지 가져왔다. 또 하나, 공간을 분절하되 시선은 열리도록 설계한 것도 이 집이 갖는 장점 중 하나.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동안에도 창을 통해 계속 외부와 시선이 연결되고 주차장, 거실, 그리고 마당으로 이어지는 창문을 연결해 주차장에서도 마당이 보이도록 했다. 이처럼 서 소장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인 ‘동선’과 ‘안에서 밖을 보는 시선’은 2층 공간 구성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2층은 참 재밌는 게 많아요. 결과적으로 제가 이 주택을 지으면서 가장 힘을 준 공간이기도 하고요. 계단 동선에도 신경을 많이 썼지만, 특히 포인트를 준 건 테라스 난간을 안으로 집어넣어 난간 안쪽과 바깥쪽 바닥의 연속성을 가져간 거죠. 그러면서 시선은 놀이터 너머 소나무 숲까지 가 닿으니 마치 우리 집 마당 안에 있는 소나무 같은 거예요. 공간을 규정하는 건 바닥과 천장인데 저는 개인적으로 그 두 개가 어긋나는 걸 좋아해요.”
이 주택에서 시도된 실험이 있다면 밖에서 안을 보는 시선까지도 고려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주로 거주자 입장에서 안에서 밖을 보는 시선에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외부 시선에 대한 부분까지도 염두에 두고 작업한 것. 2층의 독특한 배치로 육중한 느낌을 덜어내고 내부와 테라스를 연결하는 커다란 창이 보이지 않게 한 것도, 1층과 마당을 가리는 벽을 둔 것도 그 결과였다.
강력한 재료의 대비와 외부 조건의 활용, 체부동 한옥
새로운 주거 형식의 제안인 ‘틀’과 지극히 감각적인 부분인 ‘선’, 이 두 가지의 조합에서 또 하나의 환상적인 결과물은 대전 주택에 이어 서울 종로구 체부동 한옥으로 연결된다. 지난해 리노베이션 의뢰를 받은 체부동 한옥은 거의 신축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도 그럴 것이 형태만 살려 두고 내부는 모두 부쉈다가 다시 지었는데 기둥과 주춧돌만 살렸을 정도다. 다만 창의 높이를 살짝 수정한 것 외에는 골목 쪽 외관의 벽돌 마감재 등에 손을 대지 않았는데, 이는 그 골목이 갖고 있는 본연의 느낌을 해치고 싶지 않다는 판단에서였다.
체부동 한옥의 건축주는 특이하게도 젊은 미국인 부부였다. 은행원인 남편과 아트 딜러인 부인은 한옥의 느낌을 좋아한다는 것 외에 전반적인 건축 과정을 건축가에게 일임했다. 그렇게 단층, 면적 72.7m²라는 아주 작은 공간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됐다.
“집이 워낙 작다는 게 리스크였어요. 실제로 시공을 하고 났을 때 좋을지 나쁠지에 대해 판단하는 게 어려웠죠. 가령 복도의 폭을 80cm로 했는데 결과 예측이 엄청 힘들었어요. 결과적으론 전체 밸런스가 좋아 다행이었죠.”
서 소장은 체부동 한옥에서도 긴 동선을 택했다. 현관으로 들어오면 복도를 따라 마당을 돌아 거실과 부엌이 만나는 구조를 택한 것. 방과 복도 사이에는 미닫이문을 설치해 프라이빗한 공간감을 살리면서도 문 사이로 살짝 마당이 들여다보이도록 했다. 이 주택에서 ‘신의 한 수’는 바로 이 ‘복도’에 있었다.
“사실 뒷집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 시야를 가리기 위한 게 복도를 만든 주된 목적이었는데, 복도를 지나가는 느낌이 꽤 괜찮아요. 방에서 문을 열고 보면 복도에서 마당, 그 너머까지 시선이 이어지죠. 특히 중정(中庭)과 복도로 이어지는 ‘미음(ㅁ)’자 선 위로 다른 집 지붕이 겹쳐 보이고 그 위로 하늘이 보이면서 아주 멋진 광경을 만들어 내요. 설계와 시공 과정에서 그걸 만들어 내기 위해 무척 애를 썼죠. 이번 주택은 외부의 조건들을 잘 이용하기 시작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과감한 실험이 있다면 강력한 구조의 대비였다. 원래 있던 나무 기둥 중 다 썩은 기둥을 철골로 대체하면서 묘한 혼성적인 느낌을 만들어 낸 것.
“재료를 대비했지만 공간은 아주 따뜻해요. 돌을 재료로 한 중정도 톤이 차갑지 않아요. 주춧돌을 그대로 살려 두면서 그 안에 담긴 옛날이야기도 온기를 더하고 있죠.”
요즘 서 소장은 부암동 주택과 연희동 주택, 남해의 펜션, 일본인 건축주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 등 주거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건축들을 한창 작업하고 있다. 각각 목적도 대지 환경도 규모도 다르지만, 이 모든 작업들이 서 소장의 ‘결’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가는 과정임에 틀림없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 | 사진 이승재(인물) 기자·진효숙(건축 사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