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N`S CONTENTS] 함께 할 때 허락되는 그 자리,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입력 2014-07-02 13:10:27
수정 2014-07-02 13:10:27
남자들을 열광케 하는 그들만의 콘텐츠_두 번째
사회에서 성공한 남자, 그 성공을 기반으로 풍요롭고 안정된 가정을 유지하고 있는 아버지가 있다. 이론적으로는 아주 이상적인 모습의 그이지만 과연 가족들도 완벽한 가장이요 아버지로 생각하고 있을까. 아버지라는 자리에 대해 한번쯤 자문해 봤을 당신을 위한 콘텐츠가 여기 있다.필자의 책상머리에는 올해 이루고픈 일곱 가지 바람이 붙어 있다. 그다지 거창할 건 없지만 위시 리스트와 버킷리스트를 ‘짬뽕’한 나만의 목표(?)쯤 된다. 나름의 우선순위도 정해 놓았다. 틈틈이 들여다보며 이루어지길 소망하고 또 노력한다. 그런데 그 일곱 가지 ‘어젠다’가 송두리째 바뀌고 말았다. 바로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접하고부터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아버지란 무엇인가’에 관해 물음을 던지는 이야기다. 스토리는 심플하다. 일류기업의 중역으로 매일 야근에 시달려도 아이의 피아노 레슨만큼은 꼭 챙기는 주인공 료타는 직장과 가정에서 모두 성공을 거둔 ‘슈퍼맨’ 아빠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드는데 어이없게도 병원 측 실수로 아이가 바뀌었다는 것. 6년 동안 지극 정성으로 키워 온 아들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의 자식이란 소리에 그는 몹시도 혼란스럽다. 료타의 친자를 키우던 유다이 역시 자신의 핏줄이 료타의 아들로 자라고 있음을 알고는 두 사람은 결국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피붙이를 서로 돌려주기로 합의한다. 그리고는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남을 갖는 것으로 기른 자식과는 이별을, 잃어버렸던 혈육과는 적응을 위한 준비에 돌입하는데…. 여기서부터 관객은 두 가정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보며 이 영화의 진가가 발휘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부자 아빠의 착각, 그리고 가난한 아빠의 충고
성공가도를 달리며 물질적 풍요를 이룬 료타는 아이의 인생 플랜마저 완벽히 세워 놓은 이 시대의 모범 가장이다. 반면 시골에서 작은 전파상을 운영하는 유다이는 돈벌이엔 별 관심이 없는 속칭 ‘루저’에 가깝다. 따라서 성공한 아빠 료타는 잃어버린 친자식뿐만 아니라 기르던 아들마저 자신의 품에 안으려 한다. 두 마리 토끼를 잡고픈 욕심이 또다시 발동한 것이다. 이미 사회생활과 가정생활 모두에서 성공을 맛보았고 그 노하우를 체득한 데다 경제적으로도 유다이에 비해 우월한 위치에 있으므로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철저히 어긋나고 만다. 6개월에 걸쳐 적응 기간을 거쳤어도 친자식은 물에 뜬 기름처럼 안착하지 못하고, 그동안 애지중지 키워 온 아이마저 유다이의 낡고 비좁은 집을 그리워한다. 물질적 풍요와 이성적인 인내심 모두를 지녔음에도 동심을 파고들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료타의 희망이 한낱 어리석은 욕심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필자가 가지고 있던 ‘성공한 아버지의 상(像)’도 철저히 깨어지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책상머리에 적어 놓았다던 일곱 가지 목표는 다름 아닌 료타가 걸어 온 길이었다. 뛰어난 능력으로 인정을 받고, 그 대가로 얻은 풍요를 기반으로 가족 부양에도 부족함이 없는 안정된 삶. 이는 필자뿐만이 아니라 자식을 둔 아버지라면 누구나 바라는 희망사항일 테다. 그런데 신앙에 가까운 그 믿음이 번듯한 남편은 만들어 줄 수 있을지언정 아버지는 완성시키지 못 한다니 충격이 적지 않았다.
그렇다면 떨어져 살았던 피붙이마저 단숨에 끌어안을 수 있었던 유다이는 과연 어떤 아빠란 말인가? 그의 생활신조는 딱 하나,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안정적인 울타리가 아니라 함께 보내는 시간이란다. 그리고는 사회에 꼭 필요한 일꾼으로 후회 없이 살았다는 료타의 말에 “아버지라는 일 역시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충고를 건넨다. 그저 유전자를 나누어 준 것으로 아빠가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제야 료타도, 그리고 필자도 아버지라는 것은 ‘내가 만드는 자리’이기에 앞서 ‘가족이 내주는 자리’임을 깨달았다.
부양의 의무만을 생각하며 쉼 없이 달려온 아버지는 그동안 대한민국 가장의 상징적인 모습처럼 여겨졌다. 지금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렇게 희생하고 노력한 대가가 무엇인가? 료타처럼 아이와 공유한 추억이라고는 그저 몇 장의 사진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하루 세 끼 꼬박 집에서 챙겨 먹는다는 이른바 ‘삼식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필자는 그 말이 너무나도 싫다. 가족을 위해 헌신한 대가가 그 따위 빈정거림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에 목에 핏대를 세우며 세태를 비난했다. 그러나 료타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한 아버지라는 ‘명예’ 대신 삼식이라는 ‘멍에’만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중년의 남자라면, 이 작품은 최신 블록버스터보다 먼저 챙겨 봐야 하는 콘텐츠임을 잊지 마시라. 지금처럼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이분법적 사고로는 결코 진정한 아빠의 미소를 지어 보일 수 없다는 게 이 영화를 만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메시지다.
김상명 시나리오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