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천하를 재구성한 능력자를 보는 다른 시선
입력 2014-06-10 17:06:47
수정 2014-06-10 17:06:47
여심(女心)으로 바라본 정도전
정도전이 여심마저 흔들고 있다. 대의를 중시해 개인적인 감정은 늘 뒤로 밀렸던, 남자 중의 남자인 그를 바라보는 여성들의 마음은 어떤 걸까.조선 건국의 기초를 마련한 정도전과 그 주인공 태조 이성계를 보는 여성의 시각은 영화를 볼 때의 태도와 비슷하다. 여성들은 스펙터클한 영화나 멜로 영화 속에 드러나는 남자 주인공의 연기와 매력에 푹 빠져 가슴 떨리는 경험을 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주인공보다 감독을 생각한다. ‘이런 영화를 누가 만들었을까’ 혹은 ‘이런 세상을 마음속에 품었던 감독은 도대체 누구일까’. 그래서 나이가 든 여성일수록 장동건, 정우성을 넘어서서 박찬욱, 봉준호 감독에 열광하게 되는 것이다. 그의 내면에 담긴 또 다른 세상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정도전은 그런 의미에서 조선이라는 작품의 총감독이자 기획자다. 칼을 들지 않아도 장수보다 힘이 느껴지는 건 그의 마음속에 전쟁을 포함한 국가의 모든 흥망성쇠가 다 정리돼 있기 때문이고, 왕관을 쓰지 않아도 군주보다 더 신뢰 가는 이유는 백성의 마음과 사물의 이치를 훤히 꿰뚫기 때문이다.
꿈을 현실로 만들어 가는 킹메이커의 매력
어떤 사회나 민생 파탄을 지켜보는 리더들의 모습은 주로 술자리서 현실을 개탄하거나 아니면 대략 묻어가거나 그것도 아니면 현재의 직위를 버리면서 현실을 잊으려 한다. 혹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은 난(亂)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그 뒷심이 부족해 대부분 성공하지 못한다. 그런데 역사 속 정도전의 역성혁명(易姓革命)과 새 왕조 건국은 그 준비와 성과 면에서 성공적이었고 그런 결과를 만든 정도전의 능력에 대해 감탄하게 된다.
그의 뛰어난 지식과 철학은 유배생활을 통한 현장 경험과 합해져서 최적의 목표를 만들었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이성계를 찾아가는 실천력이 있었기에 그 역성혁명은 성공할 수 있었으리라. 그가 실력이나 내공 면에서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보여 주는 대목이다. 고려 때 공양왕이 정도전을 삼사우사로 임명하며 내린 교지에 보면 다음의 말이 나온다.
“경의 학문은 하늘과 인간의 일에 통하고 식견은 고금을 꿰뚫어 일찍이 과거에 급제한 후 드디어 무사의 지위에 올랐다. (중략) 현릉(공민왕)이 경을 선발해 주상에 두고 조서(詔書)의 작성을 맡기니, 경은 염락(濂洛)의 도를 주창하고 이단의 설을 배척하였다. 또 후학을 훈육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고 인재를 양성하여 사장(詞章·시가와 문장)을 좋아하는 우리나라의 풍습을 완전히 바꾸었다.”
보통 지식이 높은 사람은 현실성과 상관없는 탁상공론에 그치는 고리타분함을 보이고, 반면 행동이 앞서는 사람은 생각과 지식이 부족해 경거망동하는 법이다. 그러나 정도전은 생각과 판단과 행동이 일치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으니 참으로 매력적이다.
여성의 시각에서 보면 기골이 장대하고 싸움을 잘하는 장수이거나 혹은 권력과 돈을 가진 남자일 경우 대단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존재감은 그의 마음속에 하나의 우주가 들어 있다는 것을 느낄 때다. 특히나 정도전이 조선 건국의 토대를 닦는 과정에서 그의 머릿속 설계도에 따라 하나씩 현실에 성과물을 내놓는 믿음직스런 모습에는 감탄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엄청난 내공에도 이성계라는 파워 브랜드를 내세웠고, 조선의 ‘경국대전’의 토대인 ‘조선경국전’을 지어 올렸으며, 수도 이전과 설계의 총책임자로서 업무를 관장했다. 동시에 조선 문물제도의 기틀을 닦았다. 여기에 악기를 만드는 능력과 의학이나 수학 능력까지 겸비한 그의 내공엔 섹시함마저 느껴진다. 특히 그렇게 오래전 이미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주장할 만큼의 식견도 놀랄 만하다. 단지 재주가 많다고 판단되기보다는 사물의 이치에 대한 깨달음이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가장 확실한 것은 정도전은 분명 보통의 단순한 남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개인으로서 가장으로서 욕망을 간과한 아쉬운 남자
그가 고려시절 원나라 사신을 맞이하는 것에 대한 반대로 유배를 발령받고 가는 도중이었다. 염흥방이 배상도를 보내어 “내가 시중(侍中)에게 말씀드려 화가 어느 정도 풀렸으니 가지 말고 잠시 기다리라”는 전갈을 보냈다.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옳은 말을 했음에도 유배를 가게 됐고, 그래서 누군가 나를 도와 준다고 하면 감사하며 그 기회를 기다릴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주장한 것이나 시중이 노한 것은 각자의 견해를 지킨 일로 모두 나라를 위해 그리한 것이오. 지금 왕명이 내린 터에 어찌 공의 말을 듣고 중지하겠소” 하고는 말을 타고 떠나 버렸다.
그의 자존감은 조선을 건국하고 나서도 명나라에 대한 독립적인 자세로 인해 위험인물로 평가될 만큼 꼿꼿한 자세를 유지한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그에 대한 뒷감당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그가 어느 것에도 자신을 굽히지 않음과 동시에 자신을 사물로부터 객관화시킨다는 것이다. 객관화 능력을 갖춘 사람은 상황 판단력이 높아진다.
그러나 만일 현실에서 정도전과 마주한다면 그가 무조건 내 편을 들어주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여전히 쿨하고 시크한 답변을 내놓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감정이 북받친 아내의 말에 역성을 들어주기보다는 차분히 조언을 해 주어서 신뢰감을 주는 한편 서운함도 느껴지지 않았을까.
원래 그릇이 크고 대의를 생각하는 사람은 사사로움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여성의 입장에서는 한 개인이 가진 욕망이나 서운함에 비중을 많이 두는 편이다. 그런 면에서 정도전이 이방원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점은 못내 아쉽다. 아버지 이성계와 정도전의 의도는 부패하고 무능한 고려를 없애고 새 국가를 창설하는 원대하고 이상적인 포부였겠지만, 그 아들인 이방원의 입장에서는 새로 들어선 왕조에서 아버지가 왕이면 당연히 자신이 그다음 자리를 이을 것이란 사욕을 갖기 마련이다. 정도전은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 왕조를 실현하기 위한 세자 책봉에서 이방석을 추대했고, 결국 이것은 이방원과 대립하는 이유가 된다. 생각해 보라. 내 아버지가 새 왕조를 세웠는데 후비의 아들이 세자가 된다면 그것을 인정할 아들이 몇이나 되겠는가. 아니 필자가 이방원의 어머니가 돼 생각해도 이것은 아니다. 이방원은 조선 건국에서 실제로 기여한 공이 컸고, 정비의 자식인 데다 방석보다 서열상 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도전이 ‘왕권과 신권이 조화를 이룬 나라’를 잠시 미루고 이방원의 편을 들어줄 수는 없었을까. 이방원이 꿈꾸는 ‘강력한 왕이 된다는 것’ 그 자체가 사사로운 욕심이지만 현실적이고 이해가 가는 욕망이기 때문이다. 정도전이 사사로움에 충실하지 못한 탓에 아내와 가족들 역시 힘든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으니, 어쩌면 정도전은 이미 그 기질이나 능력에서 평범한 아버지나 남편으로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듯 보인다. 유배생활 중 아내가 보내 온 슬픔과 원망이 뒤섞인 편지에 정도전은 통곡했다지만, 자신의 뜻을 꺾지는 않았다. 요즘 여성의 시각으로 보면 자신의 소신과 대의를 위해 처자식이 굶는 것을 방치하는 남자가 그리 멋져 보이지는 않는다. 존경스럽지만 같이 살 만한 남편은 아니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딸아이 졸업식에 간다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담일자를 연기해 달라 요청했던 부시 미국 전 대통령과 비교하면 두 사람은 너무 극과 극이다.
한 개인의 욕망을 가볍다 여길 일도 아닌 것이 만약 정도전이 이방원과 손을 잡았다면 조선은 더 멋진 국가가 됐을 수도 있다. 정도전의 판단력과 통찰력, 그리고 이방원의 현실적인 정치력이 조합을 이루었다면 더 강력한 조선이 탄생했으리라 하는 기대가 들기 때문이다. 이방원이 주장했던 왕권 강화도 나름 건국 초기에는 의미가 있었을 것이기에 정도전이 한 수만 접고 돌아서 가는 길을 선택했다면 우리는 유능하고 올곧은 천재를 잃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나 어떤 사람의 욕망에는 긍정적 가능성뿐만이 아니라 잠재된 위험성이 존재한다. 조선 건국에서 보여 준 이방원의 현실적 수완과 공격성을 충분히 보고 겪었다면 정도전은 그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했어야 하지 않나 싶다. 여성이라면 “지금은 몸을 사려 이방원의 비위를 맞추고 후일을 도모하자”고 권했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 만약 정도전이 눈앞에 있었다면 “거, 비겁한 소리 그만 하소”라고 따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랴.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고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 현실이니 말이다.
안미헌 한국비즈트레이닝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