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국악가족의 삶을 담은 드림하우스

나의 한옥 이야기 3 한옥 게스트하우스 소리울 운영자 김현주 씨


“기름진 성찬이 아니라 소찬이라도 자연에서 온 음식을 먹는 기분이에요. 보리밥에 담백한 나물, 고추장 넣고 손수 짠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린 비빔밥처럼.”

서울 종로구 사간동의 한옥 게스트하우스 소리울을 운영하는 김현주(48) 씨는 한옥을 소박한 비빔밥에 비유했다. 과연 한옥 예찬론자였다. 전남 남원 출신인 그는 시골 한옥에서 유년기를 보내면서 우리 전통 문화의 아름다움에 눈떴다. 젊은 시절부터 계량 한복을 입고 생활했으며 방송작가로 일하는 틈틈이 판소리, 가야금, 민요 등을 배웠다. 대학 교직원인 남편과 함께 아마추어 사물놀이패에서 활동했고, 세 아들에게도 각각 대금, 해금, 피리를 가르쳐 첫째와 둘째를 서울대 국악과에 보냈다. 그런 김 씨에게 한옥살이는 당연한 것이었다. 결혼 후 아파트에 살다가 아이들에게 흙을 밟게 해야겠다는 신념으로 일부러 고양시의 시골 마을로 들어갔다. 그러다 판소리 레슨을 받기 위해 우연히 북촌을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이런 거대한 한옥마을이 서울에 있다는 것을 알고 ‘내가 살 곳은 바로 여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로 집을 정리하고 7년 전인 2007년 북촌에 조그마한 한옥을 얻었다.



“집은 사람을 담는 그릇이라고 하잖아요. 한옥은 한국인의 정서를 잘 담아 주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우리 선조들이 강조한 ‘삶의 최소주의’를 가능하게 해 줘요. 한옥은 공간이 좁아 많은 것을 들여놓을 수 없어요. 그러니 꼭 필요한 것만 두고 살 수 있죠. 여기로 이사 오면서 우리가 너무 많은 걸 껴안고 사는구나를 느꼈어요.”

그러나 아이의 학교 문제로 북촌을 떠나야 했다. 영영 멀어지는 줄 알았던 한옥의 꿈은 3년 전 게스트하우스를 오픈하면서 다시 살아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국악 가족이 살 곳은 한옥밖에 없었다. 그는 40년 정도 된 한옥을 임대했다. 아주 오래된 집은 아니었지만 조금 낡아 보수가 필요했다. 천장을 뜯어보니 눈부시게 아름다운 육송이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그는 “서까래가 살아서 꿈틀거리는 듯했다”고 회상했다.



“심장이 두근거렸어요. 사람도 마흔 살이면 늙는데 한옥은 손때가 묻으면서 더 고풍스럽고 아름다워지잖아요. 이런 게 진정한 한옥의 매력이라고 봐요. 다섯 개 방은 아예 천장을 뜯어내고 서까래를 드러내 집이 위풍당당해 보이도록 했습니다. 방은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하되 주방과 화장실은 외국인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현대식으로 바꾸었지요.”

국악 가족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인 만큼 방 이름도 대금, 거문고, 피리 등으로 붙였다. 그 방에는 해당 악기가 전시돼 있다.





한옥에서 온 가족 국악 공연…민간 문화 외교사절 되고파
지난해부터 소리울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잔치가 열린다. 김 씨는 ‘한옥, 풍류를 다시 쓰다’라는 공연을 기획하고 한옥을 개방해 사람들에게 우리 음식을 만들어 먹이고 국악을 들려주는 행사를 진행한다. 순전히 우리 문화를 널리 알리는 민간 외교사절단의 역할을 하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소리울을 찾는 손님의 80%가 외국인이에요. 그러다 보니 단순히 한옥을 체험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보다 많은 한국 문화를 배우고 돌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우리 가족 모두 국악을 전공했거나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니 그들에게 공연을 보여 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 외에도 한복 체험, 비빔밥 체험 등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는데 손님들이 아주 좋아합니다. 다시 찾는 경우도 많고요.”

김 씨는 한옥 게스트하우스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하며, 외국 손님들과의 소통이 자유로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그냥 남는 방으로 게스트하우스나 해볼까’라는 생각으로 뛰어들었다가 문을 닫는 경우도 많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수익만을 좇기보다는 진심으로 사람을 좋아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낙천적이어야 해요. 사실 이곳을 보수하는 데만 2억 원 정도 들었고 ‘한옥, 풍류를 다시 쓰다’ 공연도 큰 수익을 올리는 사업이 아니라 재정적으로 넉넉지는 않아요. 하지만 우리 문화를 알린다는 사명감이 있기에 10년 뒤를 바라보고 꾸준히 할 겁니다.”

그가 한옥을 이토록 찬양하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아이들이다. 김 씨는 아들 셋을 한옥에서 기르면서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을 많이 얻었다. 비 올 때 처마에서 낙숫물이 떨어지는 풍경이나 마당에 서서 밤하늘의 별과 달을 바라보는 시간들을 선물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아이들이 감성적으로 성숙해졌다고 믿는다. 그러니 이 국악 가족을 키운 건 8할이 한옥이다.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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