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정도전의 성공과 실패에서 배우는 리더십
입력 2014-06-10 17:06:53
수정 2014-06-10 17:06:53
CEO들이 말하는 정도전
요즘, 최고경영자(CEO)들이 모인 자리엔 여지없이 정도전이 등장한다. 시대도 다른 데다 정치적인 인물이지만 경영자들에겐 그의 행동 하나, 말 한마디가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CEO들은 정도전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정도전은 CEO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CEO 6인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봤다.신현성 티몬 대표
“상향 리더십, ‘Why’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우다”
TV 드라마 ‘정도전’이 불러일으킨 신드롬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정도전이라는 인물의 생애에서 가장 와 닿는 부분은 ‘상향 리더십’에 관한 것이다. 상향 리더십은 정도전을 연구해 온 한 한국학 전문가가 제시한 용어로 윗사람이 잘못하면 아랫사람이라도 지적해 줘야 하는 것을 말한다. 정도전은 이성계가 잘못된 결정을 할 때마다 바로잡아 주는 역할을 했고, 한번 결정된 일은 마치 자신의 뜻인양 잘 받들어 실행했다.
티몬도 창업 초기에는 이러한 역할을 하는 직원들이 많았다. 매주 전직원이 모이는 ‘타운홀 미팅’을 열었고 여기서는 회사가 추진하는 여러 일들에 대한 토론이 오갔다. CEO와 말단 영업사원이 격론을 벌이는 일도 흔했다. 이 중에 괜찮은 아이디어가 나올 때도 있었는데 그럴 경우 그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그것을 실행할 수 있도록 모든 사람이 힘을 실어 줬다. 현재 국내 소셜커머스 산업에서 매출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배송 상품이 이런 과정을 통해 티몬에서 가장 먼저 시작됐다.
하지만 회사가 커지면서 과거의 모습이 줄어든 점은 고민이다. 그래서 요즘은 직원들에게 시간만 나면 ‘왜(Why)’를 제기하자고 강조한다. 높은 사람이 일을 시켜도 주어진 일이 어떤 가치를 더하는지 이해를 못 하면 반대를 해도 좋다는 것이다. ‘Why’를 제기하는 직원이 많을수록 티몬이 고객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서비스를 제공할 여지도 커질 것이다. 조선왕조 500년의 기틀을 닦은 정도전은 4년밖에 안 된 티몬에 더욱 절실히 필요한 존재다.
강신섭 법무법인 세종 대표 변호사
“이상주의자의 한계에서 배우는 정의와 힘의 관계”
정도전은 난세의 정치 전략가였다. 이미 기울어져 가는 고려로서는 도탄에 빠져 있는 민생을 구할 수 없고, 욱일승천해 가는 명나라의 위협에도 대처할 수 없다고 보았다. 정도전은 자신이 설계하고자 하는 정치 이념과 제도에 관한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고, 이성계라는 군부의 실력자를 만나 자신의 경세에 관한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다. ‘이념과 지략’을 가진 정도전과 ‘군부의 힘’을 가진 이성계가 만나 새 세상을 연 것이다. 정도전은 그의 이념과 지략이 정의에 부합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정도전은 새로운 실력자로 떠오르는 이방원의 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 했고, 그와의 갈등으로 결국 자신의 이상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 채 세상을 등져야 했다. 세상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한 정도전의 한계를 보여 주는 대목이고, 많은 이상주의자들이 가지는 공통된 한계이기도 하다. 정의는 힘을 가져야 하고, 힘은 정의로워야 한다. 이상주의자인 정도전은 정의라는 명분을 가졌지만, 이를 실현하는 힘을 가지는 데는 실패한 것이다.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개혁에의 의지, 금용 산업에도 필요하다”
정도전은 대단한 혁명가다. 정도전의 일생을 보면 그의 시대를 앞서는 철학과 그것을 꼭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돋보인다. 또한 동시에 개혁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 준다. 이익집단의 이익에 얽힌 파벌 싸움, 기득권 세력의 저항 등을 극복하는 것이 개혁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것 같다. 똑같은 숙제가 이 시대에도 요구된다.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하고 통일을 이루어야 할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대한민국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해야 될 시점에 와 있다. 금융 개혁, 규제 철폐, 기업들의 경영 마인드에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적당히 변해서는 실패를 거듭할 가능성이 크다.
가장 관심 있는 분야인 금융에도 정도전의 개혁적인 철학을 적용하면 어떨까.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금융시장의 개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고려를 폐하고 조선을 세운 개혁 정신으로 금융 개혁을 해야 한다. 한국을 아시아의 금융 허브를 만들어야 한다. 규제를 적당히 고치는 정도로는 금융 산업을 발전시킬 수 없다. 매년 조금씩 바꾸는 방법보다는 앞으로 20년 정도는 손볼 필요가 없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획기적이지 않으면 신뢰가 쌓이지 않는다. 금융 산업은 몇 가지 꼭 지켜야 할 것만 남겨 놓고 규제 자체를 없애는 것도 방법이다.
정도전은 이성계를 통한 무력으로 개혁을 이루고자 했지만 지금은 당연히 무력으론 안 된다. 냉철한 판단과 기득권 세력과의 설득이 필요하다. 꾸준한 개혁 없이는 선진국 길목에서 좌절할지 모른다. 정도전이 꿈꾸었던 세상이 지금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획기적인 변화를 위해 지도자의 철학, 개혁에 대한 의지가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정미정 이든네이처 대표
“백성이 첫째인 위민사상, 기업도 고객이 우선”
조선 건국 이전까지 정도전은 중앙 정치에서 물러나 있었다. 권력의 변방에서 그는 매우 현실적인 고민을 하며 보냈다. 오랫동안 이상적 나라를 꿈꾸면서 조선의 밑그림을 그려 왔고, 그 창업 준비가 없었다면 이성계와의 만남도 조선도 없었을 것이다. 유교의 완전한 도덕적 이념을 실제로 구현하고 싶었던 그의 꿈은 이성계를 만나면서 조선 개국으로 현실이 된다. 혁명가 이성계에게 정도전은 벤처 국가의 창업 동업자이자 능력 있는 CEO였지 않았나 싶다. 마치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처럼.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 국가를 다스리는 사람은 반드시 민생을 보호하는 일을 가장 시급한 직무로 생각해야 한다.”
정도전이 꿈꾸던 국가 운영 철학이다. 그것이 유교국가 조선왕조가 500년 지속될 수 있었던 지속 경영의 기반이 아닌가 생각한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국민의 삶이다. 국민을 먹여 살리는 일, 즉 지속 가능한 번영이다. 그것이 정치의 목적이며, 국가 경영자가 해야 할 기본이다.
이것은 마찬가지로 기업 경영의 중요한 화두다. 기업도 고객에게 신뢰받지 못하고 이익에만 천착할 때 고객의 마음이 떠나게 되고 지속 가능한 경영에서 멀어지게 된다. 요즘 착한 기업이 뜨는 건 그런 이유다. 제품의 차별화가 어려워진 요즘 소비자들은 좀 더 정직하고 도덕적이며 공동체의 선에 기여하는 기업을 주목하고 있다.
기업도 어려워지면 더욱 초심으로 돌아가야 하고, 기본에 집중해야 한다. 그 기본은 고객이며 소비자이며 국민이다. 번영의 시대를 지나오며 모든 것이 불안해진 시대에 정도전은 기업인인 나에게 “기본으로 돌아가라. 고객으로 돌아가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재석 심플렉스인터넷 대표
“시대의 흐름을 읽는 데 필요한 정도전식 소통 리더십”
천재적 두뇌의 소유자, 개혁가, 이상주의자. 최근 드라마 ‘정도전’이 회자되면서 그에 대한 다각적인 해석이 쏟아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민본애민의 정치가로서 정도전은 백성이 주인인 새 나라를 세우기 위해 다방면으로 소통한 인물이다.
회사를 경영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 온 부분이 바로 소통이다. 회사가 지향하는 바를 공유하고 공동의 목표를 위해 옳은 방향으로 나가기 위해서 소통은 중요하다. 회사를 설립할 당시부터 지금까지를 돌아보면 시대의 화두는 인터넷, e커머스(전자상거래), 글로벌 등 순차적으로 변해 왔다. 인터넷 비즈니스를 시작했던 설립 초기는 전 세계적으로 ‘인터넷’이 화두가 되고 있었기 때문에 회사의 사업 방향과 비전에 대해 누구나 쉽게 공감하고 이해했다. 현재 회사의 주요 사업 분야가 되고 있는 ‘e커머스’라는 시장을 발굴할 때도 적절한 사회적 관심과 시장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소통의 벽이 높진 않았다.
하지만 국내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가지고 해외 시장으로 진출하는 글로벌 비즈니스를 구상하던 2008년 당시에는 소통의 어려움이 많았다. 최근 1~2년 사이 직구(직접 구매) 및 역직구 시장이 보편화되고 있지만 당시에는 ‘온라인 쇼핑’이 국내는 물론 해외의 유통 흐름까지 변화시킬 것이라고 예측하는 이들이 많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회사 구성원들과 시행착오를 겪으며 관련 사업에 대한 비전과 방향을 끊임없이 논의한 덕분에 우리 회사는 ‘전자상거래 수출’이라는 현 업계의 화두를 한 발 앞서 비즈니스 모델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정답을 추구하는 것 같지만 불확실성이 주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성급한 결론을 짓곤 한다. 따라서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있는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면 소통이 된 듯하다가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브라운관을 통해 비춰지는 정도전식 소통의 리더십은 이 시대 ‘소통지수’를 높이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주목받을 만하다.
김민국 VIP투자자문 대표
“유통기한 500년짜리 시스템,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생각하다”
우리 주변에는 부조리한 상황에 분노하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로 행동에 나설 만한 용기를 갖고 있는 사람은 적다. 그 사람이 행동할 만한 용기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막상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대안을 갖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정도전은 고려 말의 부조리한 시대 상황을 바꾸기 위해 직접 행동에 나섰다. 또한 이성계의 조선왕조 창업이 단순한 역성혁명에 그치지 않고, 500년 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정도전이 오랜 기간 준비했던 대안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법치주의에 기반을 두고 왕권과 신권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정치 구조가 정도전식 대안이었던 것이다.
똑똑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CEO가 존재하는 조직은 그 CEO가 재직 중인 기간에는 승승장구하지만, CEO가 물러남과 동시에 몰락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왕조가 단명하고, 욱일승천하던 기업이 2세 경영으로 넘어가면서 급격하게 사세가 위축되는 경우도 지나치게 사람에게 의존적인 시스템 탓이다.
정도전은 강력한 리더의 존재보다는 그 리더를 보좌할 수 있는 효과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고, 정치뿐만 아니라 군사, 외교, 행정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틀을 다졌다. 고려왕조를 창조적으로 파괴하고,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유통기한 500년짜리 시스템을 만든 것은 정도전의 탁월한 업적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우리는 기업의 리더가 본인 임기 중에 달성할 수 있는 단기 성과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지속 가능한 기업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정도전은 바람직한 창조적 파괴가 무엇인지를 본인의 일생을 통해 몸소 보여 준 인물이었다.
정리 박진영·이정흔 기자 bluep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