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SION PLAN] ‘이카루스의 전설’에서 배우는 퇴직연금 운용

이카루스의 전설. 감옥에서 탈출하기 위해 너무 높이 날아오르다 날개를 잃고 바다에 빠져죽었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카루스는 왜 이런 비극의 주인공이 됐을까. 그 교훈을 지금의 퇴직연금 시장에 적용해볼 수 있다.



이카루스의 아버지 다이달로스는 무엇이든 손만 대면 황금으로 바꿔버리는 미다스 왕처럼 무엇이든지 만들어낼 수 있는 발명가였다. 인간의 몸에 황소의 머리와 꼬리를 지닌 반인반우(半人半牛) 미노타우로스를 가둬두기 위한 미로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미노타우로스는 미노스 왕의 속임수에 분노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왕비 파시파에가 소와 관계를 맺도록 함으로써 태어난 괴물이다. 미노타우로스가 자라면서 사람들을 집어삼키는 등 난폭한 행위를 일삼자 미노스 왕은 이 끔찍한 괴물을 가두기로 결심하고, 다이달로스에게 그 임무를 맡겼다. 거대한 미로 궁정 라비린토스를 만든 뒤 다이달로스는 미노스의 뜻을 거역한 죄로 아들 이카루스와 함께 자신이 만든 미로 궁전에 갇히고 만다. 육로로는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다이달로스는 하늘로 날아오르는 방법을 생각해낸다. 날아오르기 전 다이달로스는 이카루스에게 태양에 너무 가까이 가지 말라고 당부한다. 태양열에 밀랍이 녹으면 몸에서 날개가 떨어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늘을 나는 마법에 도취된 이카루스는 아버지의 당부는 까마득히 잊은 채 태양 가까이 날아오른다. 그 결과는 우리가 아는 바와 같다.

날아오르기 전에 다이달로스가 아들에게 너무 높게는 물론 너무 낮게도 날지 말라고 경고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너무 낮게 날다 보면 수분에 날개가 젖어 물에 빠져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그동안 이 경고를 애써 외면해왔을까? 낮게 날면 ‘안전하다’는 착각에 빠져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데 요즘 다이달로스의 두 번째 경고를 애써 외면하는 현장이 있다. 퇴직연금 시장이 바로 그곳이다.


‘기여금+운용수익=퇴직급여’
확정급여형에서 ‘안전’ 개념 다시 생각해야
퇴직연금은 적립금 운용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지느냐에 따라 확정급여형(DB형)과 확정기여형(DC형)으로 나뉜다. 당연히 운용 성과는 책임을 지는 주체가 가져간다. 기업이 책임을 지면 확정급여형, 가입 근로자가 책임을 지면 확정기여형이라 한다. 확정급여형과 확정기여형의 적립금 운용 행태를 보면 다이달로스의 첫 번째 충고는 충실히 따르면서 두 번째 충고는 애써 외면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2013년 12월 말 현재 확정급여형 적립금의 98%는 원리금보장형 상품으로 운용되고 있다. 원금과 이자가 보장되니 아주 안전한 방법이라 하겠다. 하지만 각도를 달리하면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왜 그런지 나름 자산 배분에 충실한 국민연금의 수익률과 정기예금 금리를 비교하면서 살펴보자.

<그림 1>에서 보면 국민연금은 2004~2012년 9개년 동안 두 차례 정기예금 금리보다 낮은 수익률을 기록했고,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진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 기간 동안 연평균 수익률 6.2%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동안 정기예금의 연평균 금리는 4.3%였다. 적립금을 정기예금으로만 운용했을 경우 얻을 수 있는 연평균 수익률이 4.3%라는 뜻이다. 연평균 수익률로 1.9%포인트나 차이가 난다.

그동안 퇴직연금에서 제공하는 원리금보장형 상품의 금리가 정기예금보다 높았다는 점을 감안해도 원리금보장형으로만 운용할 경우 국민연금처럼 운용했을 경우에 비해 연평균 수익률이 1%포인트 이상 뒤처진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결코 작은 차이가 아니다. 특히 퇴직연금처럼 장기간 운용해야 하는 자산의 경우 그 차이는 매우 클 수 있다.

가령, <그림 2>처럼 2004년 초 자산을 100으로 하고, 그 자산을 9년 동안 국민연금의 운용수익률과 정기예금의 금리와 똑같은 결과를 내는 방식으로 굴렸을 때 어떤 차이가 있는지 보자. 9년 뒤인 2012년 말에 국민연금처럼 운용했을 경우에 자산은 172를 기록하지만, 정기예금으로만 운용했을 경우에는 146에 머무르고 만다.

국민연금 방식으로 운용했을 때의 자산이 정기예금으로만 운용했을 경우보다 18%나 더 많음을 알 수 있다. 복리를 감안하면 운용 기간이 길어질수록 이 차이는 더욱 커지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원리금보장형 일변도의 운용 방식이 확정급여형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다는 점이다. 확정급여형에서 퇴직급여의 재원은 기여금과 운용수익으로 구성된다. 공식으로 표현하면 ‘기여금+운용수익=퇴직급여 재원’이 된다. 운용수익이 부족하면 기업이 납부해야 하는 기여금 부담이 커지는 것이다. 퇴직연금 선진국에서 확정급여형의 운영 목적을 ‘합리적인 리스크하에서 기업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것’에 두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만약 운용수익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기여금을 늘리지 않으면 퇴직급여 재원 부족이라는 사태가 생기게 된다.

이는 확정급여형에서 ‘안전’이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끔 한다. 확정급여형에서 안전은 적립금의 원금과 이자를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 기여금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퇴직급여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운용 방식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 방식은 너무 높게도, 너무 낮게도 날아서는 안 된다는 다이달로스의 충고 속에 답이 있다. 현대 재무이론에서 보면 자산 배분이 그 답이라 하겠다.

확정기여형은 어떨까. 확정기여형은 원리금보장형 상품의 비중이 78%이므로 확정급여형보다는 수익 추구 경향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규제의 장벽이 가로놓여 있다. 위험자산 편입 한도를 적립금의 40%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젊었을 때는 위험자산 편입 한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는 투자의 기본 원리를 적용할 수가 없다. 고령화 대응으로 선진국에서 각광받고 있는 라이프사이클 펀드와 같은 상품을 노후 준비의 보루라는 퇴직연금에서 활용할 수 없는 것이다. 그 규제를 풀자는 제안에 대해 정책당국에서는 40% 한도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난색을 표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평균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확정급여형이나 확정기여형 모두 너무 높게 날다 추락사한 이카루스의 전설만을 걱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는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때다. 확정급여형은 근로자의 퇴직급여를 안정적으로 지급할 수 없을 정도로 재정 건전성이 악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정기여형의 경우 목표로 한 노후 자금을 달성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따져볼 때다.


손성동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연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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