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위기 4~5년 간다…내수 키워라”

전문가 좌담-신흥국 위기의 파장과 한국의 대응

1월 중순 아르헨티나와 터키를 시작으로 촉발된 신흥국 금융위기가 세계 경제를 불안으로 몰아가고 있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는 중국의 경기 둔화, 아르헨티나 위기와 함께 신흥국 금융 불안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경제 전문가 3인의 좌담을 통해 신흥국 경제위기의 원인과 이후 전개 방향을 가늠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사회 본격적인 토론에 앞서 테이퍼링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오정근 위원(이하 오 위원) 테이퍼링은 기존에 많이 풀던 돈의 양을 줄이는 것을 뜻합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는 이미 월 850억 달러를 풀던 것을 월 100억 달러 수준으로 줄였어요. 이런 기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겁니다.


사회 테이퍼링의 시기를 두고 논란이 있습니다. 시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정유신 사장(이하 정 사장) 타이밍은 대체로 적절했다고 봅니다. 지난해부터 양적완화 축소에 대한 시그널을 지속적으로 보냈고, 실제 돈이 풀린 후 주가도 올랐습니다. 거기에 따라 돈을 줄이는 건 맞죠. 앞으로도 상황을 봐가면서 줄이겠다는 거니까, 적절한 대응이었습니다. 한편에서는 미국 제조업에 대한 우려를 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미국은 셰일가스 등 기본 경제구조가 바뀌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미국 기업들도 미국으로 유턴하고 있고요. 이런 점을 고려하면 신흥국 위기가 미국에까지 영향을 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 위원 정 사장님 말씀처럼 Fed는 지난해부터 선제적 지침을 통해 실업률 7%가 되면 테이퍼링을 시작한다고 얘기했어요. 실제 지난해 12월 미국의 실업률은 6.7%를 기록했고, 올 1월 다시 6.6%로 떨어졌습니다. 주가도 1만6000포인트를 넘어서면서 일부에서는 버블에 대한 논란까지 있습니다. 중앙은행이 주택저당채권을 꾸준히 매입한 덕에 주택 가격도 어느 정도 수준까지 왔고요. 헌데 최근 경제지표를 보면 걱정이 됩니다. 제조업지수가 하락하고 월 20만 명씩 증가하던 취업률이 7만~8만 명 수준으로 떨어졌거든요. 대공황 때를 보면 경기가 회복되다가 1933년 다시 나빠졌거든요.

정철중 팀장(이하 정 팀장) 미국 입장에서는 버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테이퍼링이 필요했습니다.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미국 특유의 유연성을 보였습니다. 눈여겨볼 점은 시장이 테이퍼링을 준비할 몇 개월의 기간을 줬다는 점입니다.


사회 테이퍼링은 출구전략의 시작인데요, 앞으로 출구전략은 어떤 식으로 진행될까요.

정 사장 재닛 옐런 Fed 의장이 유연성을 가지면서 지금의 방향을 고수하겠다고 했거든요. Fed가 새로운 임원을 구성하고 전체 의견을 조율하다 보면 3월 정도 첫 회의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고용률, 실업률, 인플레이션 등에 대한 컨센서스를 만들면 그에 따라 명확한 로드맵을 세울 수 있을 겁니다.

오 위원 주식시장이나 부동산 시장에 돈이 돌기 시작했기 때문에 큰 틀은 바뀌지 않을 겁니다. 벤 버냉키 전 Fed 의장이 테이퍼링에 대한 준비 기간을 반 년 준 것처럼, 금리를 올리더라도 1년 가까이 준비 기간을 주겠죠. 변수는 실물경제입니다. 올해 실물경제가 어떤 모습을 보일지, 그게 관건입니다.


사회 기존에 풀린 돈의 환수 여부도 관건입니다. 테이퍼링이 출구전략의 전부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아니거든요. 테이퍼링을 통해 증시 버블이 환수되지 않으면 기존에 풀린 돈을 환수하게 되니까요.

오 위원 물가상승률 2.5%, 실업률 6.5%가 되면 금리를 인상하겠다고 했습니다. 아마 내년쯤이면 그런 환경이 조성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재 미국의 금리는 0.25%인데요, 과거 평균 금리가 3.25% 수준입니다. 정상적일 때 미국의 본원통화가 약 9000억 달러인데, 올 2월은 3조8000억 달러였어요. 2조9000억 달러가 더 풀린 거죠. 하이퍼인프레이션를 야기할 수도 있는 수준이죠. 따라서 나중에는 그 돈을 환수해야 합니다. 경제위기 때는 돈을 풀어도 M1, M2가 크게 안 늘지만 경기회복기엔 개인들이 돈을 쓰고, 은행들도 초과 준비금을 보유하지 않기 때문에 그대로 두면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됩니다. 그런 사태에 대비해 2015년은 금리 인상, 2016년 초가 되면 풀린 돈을 환수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국뿐 아니라 일본과 유로존도 비슷한 방향으로 갈 겁니다. 이 때문에 지금의 상황이 4~5년은 갈 겁니다. 그때까지 한국이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면 우리도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습니다.


상반기 이후가 위기의 정점

한상춘 위원(이하 한 위원) 미국에서는 ‘에클스의 실패’에 대한 우려도 있습니다. 테이퍼링으로 인해 미국이 다시 위기에 빠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오 위원 미국의 대공황이나 2001년 일본이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제로(0)금리로 갔다가 성급하게 금리를 올리면서 20년 불황이 온 것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중앙은행이 금리 0.1%, 0.2% 올리는 게 그만큼 중요합니다. 버냉키나 옐런 의장에게 신뢰가 가는 면이 그런 점입니다.

정 사장 테이퍼링과 같은 소극적 출구전략 뒤에는 돈을 환수하는 적극적 출구전략이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금리 인상도 한 부분이고요. 테이퍼링의 진행 상황을 보면 그 이후 로드맵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신뢰가 갑니다.


사회 지금까지 미국의 테이퍼링에 대한 의견을 나눴습니다. 지금부터는 신흥국 금융 불안에 대한 의견을 주셨으면 합니다.

정 사장 경제에 큰 변화가 오면 주변에 충격이 있기 마련입니다. 특히 외생 쇼크에 취약한 국가들은 그 충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외채, 외환보유고 등 여러 가지가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그 타깃이 아시아 국가들이었다면 지금은 아르헨티나, 터키,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충격을 받는 상황입니다. 터키 같은 곳은 금리를 올리고 있는데, 반기가 지나면 실물경제에 가시적인 현상이 나타날 겁니다. 그때가 본격적인 위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정 팀장 테이퍼링에 대한 1차 방어선을 잘 친 곳이 인도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 국가들입니다. 남미는 축소지향적 경제로 전환할 수 있느냐가 관건인데, 이 부분이 워낙 취약해서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합니다.

오 위원 그동안 통화가치와 주가가 너무 고평가됐기 때문에 일정 부분 하락하는 건 맞지만,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문제가 될 겁니다. 외국인투자자들은 투자수익률을 볼 때 환차손을 가장 크게 여깁니다. 주식에서 10% 수익을 거두더라도 환율손이 15%면 5% 손실을 보는 겁니다. 그래서 글로벌 투자은행(IB)이나 헤지펀드들은 어느 나라 통화가 약세가 될까 항상 눈여겨봅니다. 그 기준이 경상수지입니다. 경상수지가 적자면 돈을 빼기 시작합니다. 남아공, 아르헨티나 같은 나라가 그런 곳이죠.

정 사장 과거 경험을 보면 큰 틀이 바뀔 때는 환율의 역할이 커집니다. 반드시 희생양이 생기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희생양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번에도 그런 요소들이 작용할 거라고 봅니다. 치킨게임에서 살아남는 게 중요한 거죠.


사회 테이퍼링에 따른 1차 효과는 어느 정도 예상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2차 충격은 어떻게 받아야 할까요.

정 팀장 기본적으로 금리 인상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금리 인상은 영향력이 파괴적입니다. 금융권에서는 6개월이라고 생각하지만, 빠르면 1년 길게 2년까지 그 영향이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 위원 2차 충격으로 신흥국들의 실물경제가 어려우면 미국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2008년 이전까지 미국은 금융, 오락 등 서비스 사업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상당 부분 제조업 중심으로 돌아섰습니다. 그 영향으로 중국 등 신흥국들과 교역이 활발합니다. 따라서 신흥국 경제가 어려우면 미국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미국도 그걸 감안해서 대처할 겁니다.



향후 5년 경상수지 눈여겨봐야

사회 한국은 1990년대 중반 역플라자합의로 야기된 엔화 약세로 외환위기까지 겪었습니다. 지금 상황을 보면 그때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 위원 상당 부분 유사합니다. 차이라면 당시는 경상수지가 적자였다면 지금은 흑자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경상수지가 내년, 내후년에 적자로 돌아설지도 모르거든요. 그래서 옛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정 사장 한국은 외환보유고가 탄탄하지만 부담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중국을 포함한 신흥국 수출이 전체의 70%가 넘는다는 점입니다. 내수에서 그만큼 취약하다는 겁니다. 또 하나는 산업구조의 취약성입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수혜를 누린 건 전차군단이라는 전자와 자동차밖에 없거든요.


사회 그런 면에서 한국은 신흥국 금융 불안에서 정말 안전한 곳인지 우려가 됩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펀더멘털 얘기를 하는데, 외환위기 때도 펀더멘털은 괜찮다고 했거든요.

오 위원 일단 정책당국의 인식이 안일하다고 봅니다. 단기적인 경상수지 흑자만 보고 안전하다고 하는데, 지금의 흑자는 수출보다 수입을 안 해서 흑자 폭이 큰 거거든요. 경상수지 흑자 폭이 줄어들기라도 하면 외국인들이 한국도 금리를 올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수 있고, 그러면 자금 이탈을 막기 어렵습니다.

정 팀장 저는 지금과 같은 환경이라면 5년까지는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은 낮다고 봅니다. 물론 한국 경제를 긍정적으로만 보는 건 아닙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축소지향적 국면을 피하려면 내수에 힘을 더 실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좋은 기업을 만들지 않으면 선진국이 되는 건 그만큼 요원해집니다.

정 사장 현 정부가 지금도 노력하고 있지만 수출 다변화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 주요 수출국 중에서 디폴트 얘기가 틀림없이 나올 테니까요. 중국은 지난해 주가가 빠졌을 때 돈을 풀면서 주가가 바로 회복됐습니다. 올해도 그럴 거라는 장담은 할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중국은 삼중전회(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 이후 성장이 별로 안 좋았거든요. 또 하나 내수를 어떻게 살릴 것인지에 대한 대책도 나와야 합니다. 그러자면 부동산 가격이 오르기는 어렵지만 거래라도 활성화돼서 돈이 좀 돌아야 합니다.


사회 한국 내 위안화 허브 구축에 대해서는 어떤 의견이신지요.

오 위원 필요하다고 봅니다. 수출업자 입장에서는 환차익이 나니까 위안화를 가져오고 싶지만 한국에서 쓸 데가 없어요. 한국 금융시장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고요.

정 사장 그런 시장을 빨리 만들어야 합니다. 일본이나 영국은 위안화 허브 구축이 왕성하고 거기서 얻는 이익이 큽니다. 위안화 강세는 어쩌면 자연적인 수순인지도 모릅니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하면서 금융 이야기가 빠져서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감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전향적으로 나가야 해요. 달러에 편중된 외환보유고 문제도 다변할 수 있는 데 장점이 많습니다.

정 팀장 위안화는 투자 대상으로도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위안화 예금만 해도 굉장히 호황을 누리고 있거든요. 위안화 허브 구축에 대해서는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정 사장 마지막으로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현재 한국 자본시장은 수익모델이 깨져서 상당히 고생하고 있습니다. 국내 자금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중국 자본이 한국에 들어와서 증권사에 출자도 하고, 투자도 해야 합니다. 한·중 교차 상장도 하고, 비교우위에 있는 상품도 서로 팔 수 있어야죠. 위안화 허브 구축은 한국 자본시장의 발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회 한상춘 한국경제신문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 좌담자 오정근 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정유신 한국벤처투자 사장·정철중 우정사업본부 예금자금팀장 | 정리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 | 사진 김기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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