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예술품 클래식 카의 질주

▲ 자동차가 출현하자 귀족들은 마차를 버리고 차를 타기 시작한다. 이 시대는 아르누보가 싹트는 벨 에포크로서 자연주의가 자동차 디자인에도 영향을 끼쳤다. 귀부인들은 백마라도 타듯 자동차를 탈 때마다 들뜬 모습이다.기계 산업의 꽃으로 불리는 자동차 산업은 한 세기 동안 아름다운 모험과 도전으로 특별한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들을 배출했다. 조각처럼 부품 하나하나에 혼을 불어넣고 아름다운 자동차 빚어내기에 열정을 가졌던 인물들이 있었으며 스피드만을 위해 몸 바친 속도의 화신들의 기록 돌파 이야기도 전설로 남아 있다. 그 승리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기는 어렵지만 메르세데스벤츠, 부가티, 페라리, 롤스로이스, 마세라티, 탈보, 캐딜락, 포르쉐, 오스틴 마틴, 히스파노-수이자, BMW, MG, 오스틴 힐리, 알파 로메오, 마이바흐, 치시탈리아, 오스카, 시트로엥, 포드, 란치아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엠블럼이 머리를 스친다.메르세데스벤츠(Mercedes-Benz Patent Motor Car)가 1886년 7월 3일 만하임에서 첫 공개 주행 시험을 할 당시 자동차를 처음 본 사람들은 놀라 달아나거나 경찰에 신고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그때로부터 한 세기가 지나면서 인류 역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큰 변화를 이끌어 온 문화 코드로서 자본과 테크놀로지, 그리고 문화와 예술의 중심에 자동차라 불리는 조형물이 우뚝 솟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도 자동차는 기계일 뿐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200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피터슨 오토모티브 박물관 주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자동차 전시회’에는 카 마니아들로부터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차’로 평가받고 있는 부가티 르와이얄 타입41이 출품됐다. 1926년 처음 세상에 선보인 르와이얄은 프랑스인 에토레 부가티가 가장 호화로운 자동차 예술품을 만든다는 목표 아래 제조한 차로 당시 스페인 국왕, 루마니아 국왕, 벨기에 국왕 등 왕족에게만 팔렸다. 르와이얄은 차폭이 보통 차의 길이에 해당하는 4.3m에 달하는 대형차로 12리터대의 배기량 엔진을 얹어 당시로서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빠른 시속 276km의 속도를 냈다. 현재 프랑스의 뮐루즈 박물관, 미국의 포드박물관 등에서 국보급 보물로 이 차를 소장하고 있다.1987년 11월 부가티 르와이얄(이는 현존하는 6대 중 하나다)은 경매에서 500만 파운드에 낙찰돼 이전까지의 세계 기록을 깼다. 그 역사적인 순간을 지켜본 사람들은 ‘경매가 아주 속도감 있게 진행됐고 드디어 낙찰을 알리는 망치소리가 울리자 박수소리가 런던 앨버트 홀(Albert Hall)을 가득 채웠다’라고 회상한다.유럽에 부가티가 있다면 미국에는 듀센버그가 있다. 아직도 미국인들은 듀센버그라는 자동차의 이름을 듣거나 지금까지 남아 있는 실물을 보면 왕년의 할리우드 톱스타들을 연상한다. 듀센버그는 단 650대만 만들어졌지만 미국 자동차 역사에 금자탑을 세운 것으로 평가된다. 그래서인지 미국에서는 듀센버그가 클래식 카 경매에서 나타났다 하면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할 정도로 열광한다. 할리우드의 전성기였던 1930년대에는 톱스타가 갖추어야 할 두 가지 필수조건 중 하나가 오스카상, 다른 하나는 듀센버그를 소유하는 것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유명한 클라크 게이블은 이 차를 4대나 소유하면서 부와 명성을 과시했으며 그레타 가르보, 게리 쿠퍼, 메이 웨스트, 타이론 파워 등도 듀센버그를 타고 다녔다.1985년 미국 네바다주 레노시에 있는 세계 최대의 하라 자동차박물관에서 열렸던 클래식 카 경매에서는 1936년형 듀센버그를 도미노 피자회사 사장이며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구단주였던 톰 모나헌이 100만 달러에 구입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지금 듀센버그의 가격은 감히 추정조차 어려울 정도다.훌륭하고 오래된 차들의 가격 상승은 멈출 길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자동차는 이제 대가의 미술 작품들과 희귀한 중세의 양피지 책 등과 함께 앤티크 시장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실제로 부가티 르와이얄은 500만 파운드에 팔리면서 당시까지 고액 예술품 경매 거래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10위 권 안에 들었었다. 르와이얄은 여태껏 거래된 어떠한 가구나 주얼리보다 가치 있는 앤티크 물(物)이 된 것이다.1 프랑스의 아름다운 차 ‘들라주(Delage D8)’. 루이 들라주(Louis Delage)에 의해 제작된 컨버더블로서 1931년도에 출시된 이후, 고급 자동차 마니아들을 매료시킨 클래식 리스트 상위에 마크된 바 있다. 계기판 하나하나가 모두 예술품을 연상시키는 이 자동차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작고 아담한 차에서 크고 럭셔리한 차로 이미지를 탈바꿈하며 더욱 명성을 쌓았다.2 듀센버그 J는 명차로서 미국의 자존심이다. 도면과 부품의 번호가 모두 J로 시작돼 모델명 J가 되었다. 1929년 뉴욕 모터쇼에 처음으로 데뷔했으며 265마력을 자랑했다. 당시 차들에 비해 100마력이나 출력이 높아 모든 광고마다 265마력이라는 문안이 빠지지 않았다.3 이탈리아의 기술과 미국의 디자인이 결합된 이소타 프라스키니 티호 8AS 로드스터. 배우 루돌프 바렌티노가 소유했던 명차로도 유명하다. 당시 무솔리니와 교황들이 애용했던 차이기도 하다.4 BMW 328 로드스터(Roadster)는 보디, 헤드라이트, 펜더가 에어로 스페이스 감각으로 일체를 이루면서 곧 나타난 재규어XK 시리즈를 비롯한 수많은 스포츠카의 전범이 됐다. 요즘에는 거의 모든 차에 적용되는 유압식 브레이크를 최초로 채택했다. 엔진은 1971cc 직렬 6기통으로 80마력의 힘을 내 최고 시속이 150km에 이른다. 1940년 당시 가장 가혹한 1000마일 도로 경주인 이탈리아 밀레 밀리아(Mille Miglia) 경주에서 우승을 차지해 최고의 내구력과 스피드를 입증했다. 462대만 생산됐으며 전쟁 중 대부분 소실되고 현재는 150여 대의 소장품만이 남아 있다. 그 가치가 날로 치솟고 있음은 당연하다.1928년 파리 모터쇼에 처음 선보인 부치알리(Bucciali).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차를 만들고 싶었던 프랑스의 안토니오와 폴 부치알리 형제가 만들었다. 당시 마치 오페라를 감상하는 것과 같다는 찬사를 얻었을 만큼 예술적인 가치를 인정받았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동생 폴이 근무했던 비행중대의 상징인 황새 문양을 마스코트로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김재규헤리티지 소사이어티 대표. 앤티크 문화예술 아카데미 대표. 앤티크 문화예술기행, 유럽도자기 저자.영국 엡버시 스쿨, 옥스퍼드 튜토리얼 서비스 칼리지 오브 런던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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