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술품 구매는 역사에 대한 투자

마 전 미술 사학자와 컬렉터, 그리고 경매 회사 대표와 화랑 주인들이 함께한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얘기 끝에 화제는 ‘요즘 미술품 시장이 어떤 경향을 보이고 있나’로 자연스럽게 흘렀다. 동석한 원로 컬렉터는 지난 20여 년간 고미술품과 현대미술품을 두루 수집해 왔다. 그의 안목은 미술 시장에서 정평이 나 있다. 그가 참석한 사람들에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같은 크기에다 비슷한 가격 조건을 갖춘 그림들이 시장에 나왔다 칩시다. 이를테면 단원 김홍도와 겸재 정선, 그리고 박수근의 작품이 매물로 나왔다면 여러분은 어느 것을 고르겠습니까.” 그는 좌중의 의견을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단언했다. “저라면 당연히 단원이나 겸재를 선택하겠습니다.”그는 경험과 신용과 경륜을 함께 지닌 컬렉터다. 소장품 또한 시기별 대표작을 갖추고 있으며 남들이 간과하는 미술품의 미래 자산 가치를 기막히게 분석해내는 능력이 있다. 그가 박수근이 아니라 단원 김홍도과 겸재 정선을 선택할 때는 갈고닦은 안목에 근거했을 터였다.그는 평소에도 자신의 경험담을 자주 털어놓는다. 1965년 박수근이 작고하고 나서 얼마 뒤 첫 회고전이 열릴 때였다. 당시 박수근은 호당 가격이 5000원 정도였다. 대개 4~5호 크기가 많았다. 몇 해 전 경매에서 7억 원에 낙찰된 ‘나무와 사람들’은 그 시기만 해도 3만~4만 원이면 살 수 있었다. 이 작품과 같은 크기인 겸재의 작품은 100만 원에 팔렸다. 박수근에 비해 겸재는 20~30배나 비쌌던 셈이다. 현재의 오름세로 치면 박수근은 겸재를 앞지른다. 경매시장에서 연일 상한가를 치는 종목이 박수근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최근의 흐름만 놓고 보면 미술 시장은 겸재보다 박수근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컬렉터의 선호가 그쪽으로 몰린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선호와 경향은 유동적이다. 중요한 것은 미술사적 평가다. 겸재와 박수근의 미술사적 상대 평가는 섣불리 말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진경산수의 대가 겸재와 풍속화의 대가 단원이 차지한 미술사적 위상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시장에서 가장 엄혹한 판관은 시간이다. 변덕스러운 선호와 경향의 유동성을 견뎌내고 시간의 흐름 속에 살아남은 것이 ‘전통’이 된다. 겸재와 단원은 강고한 전통성 위에 꽃핀 천재들이다. 게다가 누구나 아는 투자의 기본은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우량 품목 찾기에 있다. 겸재의 예에서 보듯 고미술품은 확실히 저평가된 측면이 있다. 섭치(변변하지 않고 너절한 것)나 다를 바 없는 고미술품도 있지만 눈 밝은 컬렉터의 선택을 기다리는 알천(가장 값나가는 물건)과 같은 고미술품이 더 많다. 물론 많다 하더라도 현대 미술품처럼 수량이 넘치는 것은 아니다. 한정된 숫자에다 가격의 저평가라는 조건은 오히려 컬렉터가 반겨야 할 사항이다. 낮은 가격의 우량 품목을 찾아내는 노력은 주식시장에서 말하는 ‘상투 잡기의 어리석음’을 피하는 결과가 된다. 미술품 경매에서도 마찬가지다. 겸재의 작품 ‘불정대도(佛頂臺圖)’는 1988년 화랑 전시회에서 1000만 원에 거래됐다. 이 작품이 2005년 K옥션에서 2억5000만 원에 낙찰됐다. 같은 날 3억5000만 원에 팔린 단원의 ‘비학도(飛鶴圖)’ 역시 완만하나 분명하고 흔들림 없는 고미술품의 상승세를 웅변한다.그림만 그런 것은 아니다. 옛 사람의 붓글씨도 눈 돌릴 가치가 충분하다. 일본의 경우 선인들의 유묵이나 간찰(편지)이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로 진입하면서 그전 가격에 비해 10배로 뛰었다. 이는 다른 품목에 비해 놀랄만한 상승세다.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에서도 그 기미가 엿보인다. 추사 김정희나 우암 송시열의 간찰은 예전에 비해 3~4배 올랐고 이 상승세에 힘입어 컬렉터들은 조선 문인 명사들의 유묵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판이다.도자기 시장 역시 눈여겨봐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백자가 아닌 청자다. 백자는 고미술 시장이나 경매를 통해 그 가치에 상응하는 적절한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청자는 좀 다르다. 10여 년 전보다 값이 오히려 싸졌다. 따지고 보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경제난에 시달리는 북한의 영향이 컸다. 북한은 개성 인근에서 청자를 대대적으로 발굴해 중국 시장에 내다 팔았다. 그중 많은 양이 한국의 미술 시장으로 흘러들었다. 결과적으로 청자의 유통 물량이 넘치게 됐다.하지만 북한의 청자 발굴은 한계에 다다랐다는 소식이다. 더 이상 물량이 유입될 가능성이 없어진 것이다. 어쩌면 청자를 수집할 절호의 기회는 지금이 아닌가 싶다. 사마천의 ‘사기’ 중 ‘화식열전(貨殖列傳)’편에 나오는 말이 있다. ‘남이 팔 때 나는 사들이고(人棄我取) 남이 사들일 때 나는 판다(人取我棄).’ 미술품 투자에도 적용될 만한 경구다.적은 자본으로 감상과 투자 양면을 충족시키는 품목은 공예를 비롯한 민예품이라고 할 수 있다. 목기나 철물, 그리고 석물 등이 그것이다. 최근 웰빙 바람이 불면서 자연 소재의 미술품이 덩달아 주목 받고 있다. 우리 민예품은 선조들의 웰빙의 때가 그대로 묻은 일상 기물이다. 투박하면서 정겹고 꾸미지 않아 솔직한 민예품은 앞서 산 조상들의 욕심 없는 속내를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인위적 가공을 따라가지 않으려는 민예품은 일상에서 소비된 ‘무위의 예술’을 보여준다. 당연히 가격도 명품 미술에 비해 싸다. 그러나 소장품으로서의 만족도는 결코 싸지 않다.일본 민예관의 창설자인 미술사가 야나기 무네요시의 일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주로 조선의 보잘것없는 민예품을 사들였다. 일본의 유명 컬렉터들은 야나기를 비웃었다. 그들은 자신의 소장품인 중국의 명품 도자기를 자랑하며 쓸데없는 야나기의 민예품을 깔봤다. 그들은 “당신은 돈이 없으니 그런 물건을 사들이지”라며 대놓고 비난했다. 이 말을 들은 야나기는 “당신은 돈이 있으니 이런 물건 못 산다”고 대꾸했다. 부자 소장가들은 미술품의 가치를 보고 산 것이 아니라 미술품의 명망을 따져 구입했다는 것이다. 돈은 있으나 안목이 없다는 것이 야나기의 비판이었다. 민예품은 가난한 애호가들의 축복이다. 오늘날 야나기의 수장품이 얼마나 경이로운 광채를 발휘하고 있는지 아는 이는 안다.민예품에 비해 불교 미술품은 주의가 따른다. 장물일 가능성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물론 전문 지식도 필요하다. 불화나 불상 중에 고려 불화와 18세기 이전 조선 불화, 그리고 삼국시대 불교 관련 금속공예 등은 수요가 늘 있다. 국립 박물관과 불교 전문 미술관 등은 이들 작품을 꾸준히 수집할 수밖에 없다. 희소성은 작품 값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고미술은 현대미술에 비해 더 이상 생산될 길이 없다는 점이 장점이다. 현대미술은 경제 상황에 따라 등락의 폭이 크다. 우리는 이미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시절을 통해 이를 경험한 바 있다. 그러나 그때에도 주요 고미술품 가격은 떨어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안정성은 고미술품의 자랑이다. 세월이 켜켜이 쌓인 고미술품은 흘러온 시간만큼 엄정한 평가가 깃든 예술이다. 고미술품에 대한 투자는 불변의 가치를 사들이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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