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조각품에 투자해도 될까요

국의 미술 교육자 하버트 리드는 ‘조각은 입체를 만드는 예술’이라고 말했다. 이는 전통적인 조각의 개념과 함께 오늘날의 확장된 개념까지를 포괄하는 폭넓은 정의다. 다시 말해, 조각은 2차원의 평면에서 전개되는 회화와 달리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는 3차원의 조형예술이다. 그래서 ‘조각’이라는 말은 ‘소조(塑造)’와 ‘조각(彫刻)’의 합성어인 ‘조소(彫塑)’라고 하는 것이 더 맞다. 돌이나 나무처럼 견고한 재료를 밖에서부터 깎아 가면서 만드는 것이 조각(彫刻)이고, 흙처럼 가소성이 있는 재료를 안에서부터 밖으로 붙여나가며 만드는 것이 소조(塑造)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이런 구분조차 무의미해 보인다. 현재 활동하는 많은 작가들은 인조석, 시멘트, 플라스틱, 유리 등과 같은 과학 기술에 의해 개발된 신소재들까지 재료의 범위를 확대하고 있고, 또 그런 신소재 물질에 빠르고 능동적으로 적응하며 독특한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이는 근 몇 년 사이 입체 작업을 하는 작가들의 특징이다.한국 미술 시장은 2005년을 기점으로 급성장 ‘징후’를 보였다. 2005년 11월 K옥션이 첫 경매를 시작했고, 경매장(서울옥션, K옥션 결과에 한함)에서 1억 원 이상에 낙찰된 작품 수가 2005년 총 25점이던 것이 올 들어서는 상반기에만 91점이다. 또한 알음알음 해외 경매에 출품되던 국내 작가의 작품들이 2005년부터 그 수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 그 시작점은 2005년 5월 29일 크리스티 홍콩의 ‘20세기 중국·아시아 현대미술(20th Century Chinese Art & Asian Contemporary Art)’ 경매라 할 수 있다. 물론 이전에도 한국 작가의 작품이 경매에 출품되곤 했다. 하지만 ‘본격적’이라는 수식어를 쓸 수 있는 타이밍은 2005년 5월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부터였다. 이를 기점으로 한국 작가의 작품이 비싼 값에 낙찰되며 해외 유수 컬렉터들을 만났고 이슈가 됐다. 그래서 2005년 5월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부터 2006년 뉴욕의 소더비와 크리스티 아시아 현대 미술품 경매, 2006년 크리스티 홍콩 경매, 2007년 5월 크리스티 홍콩 경매까지 3년간의 해외 경매에 출품된 작가들을 살펴봤다. 특히, 입체 작품 작가들을 중심으로 살펴보니 눈에 띄는 몇몇 특징이 있었다.작가군이 젊다는 것, 전통적 소재인 나무나 돌 등이 아닌 신소재를 기반으로 하는 작품이 많다는 것, 회화작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수가 적다는 것 등이었다. 사실 큰 그림으로 보면 회화와 조각이라는 장르의 구분이 모호해지며 작가 자신이 표현 방식을 확장하는 개념으로 ‘입체’를 선택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즉, 이전 세대의 조각 개념과는 뭔가 조금 다른 양상이었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활동하던 이전 세대 조각은 어떤 특징이었으며 또 국내의 조각 작품 가격은 어떠했을까. 우선 이전의 흐름을 간단히 살펴보자.사실, 폭넓게 조각 인구가 태동한 기점은 1949년 ‘국전’에 조각부가 신설되면서부터다. 이때부터 현대조각이라 말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기 시작했고 이어 1950년대로 넘어가며 기념 조각을 중심으로 그 명맥을 유지했다. 그러다 1960년대에는 자발적 필요성에 의해 개성을 보여주는 조각가들이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했고 1970년대부터야말로 시각적인 형태와 구조의 탐구를 지향하는 미니멀리즘 조각이 등장했다. 회화에 비해 조각은 그 특징과 개성이 나타난 시기가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렇게 1980년대가 되고 이때부터는 더욱 그 내용과 형식이 풍부해지고 다원화된다. 하지만 당시 조각의 재료는 자연에서 얻은 돌, 나무, 철 등이 대부분이다. 즉 신소재가 작가들에게 선택된 것은 그리 오래전의 일이 아니다.그렇다면 지금까지 국내 조각가들의 작품 가격은 어떨까. 사실 미술 시장에서 한때 호황을 누린 바 있는 서양화나 한국화에 비해 조각은 작품 가격에 대한 자료가 턱없이 부족하다. 이는 지금까지 국내 미술 시장에서의 작품 가격 정보는 회화 위주로 취급돼 왔다는 이야기와 상통한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꾸준히 인기가 높은 이전 세대 조각가들이 있다. 전뢰진 김종영 윤영자 권진규 최종태 구본주 문신 엄태정 박석원 등이다. 특히 이 중 조각가 권진규의 작품 ‘곡예’는 2006년 2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2억2000만 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외 앞서 언급한 다른 조각가들의 경우 경매에서의 낙찰가는 상대적으로 낮다. 이는 전(前) 세대 조각가들에 대한 미술사적 평가가 아직까지도 제대로 행해지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작가에 대한 미술사가와 평론가들의 담론과 비평, 또 이를 널리 대중에게 알리려는 노력. 이 모든 것들이 투명해져야만 미술 시장이 견고히 커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제작된 내실 있고 개성 강한 동시대의 젊은 작가들의 ‘조각’ 작품은 더욱 고무적이라고 느껴진다. 이는 분명 이전 세대들과 연결될 수 있는 튼튼한 바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였던 이형구가 했던 인터뷰는 ‘조각’에 대한 진지하고 희망적인 시사점을 던진다. “조각이란 결국 공간의 예술이다. 알베르코 자코메티의 인체 조각과 자료들을 보면서 깊이 공감했는데, 뼈처럼 앙상한 그의 조각이 갖는 공간적인 힘을 느끼고 내 작업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2006 아트스펙트럼전-리움)그러면 최근 해외 경매에서 입체 작품으로 높은 낙찰가를 기록한 작가들에는 누가 있을까. 최근 3년간의 결과를 살펴보면 이용덕 박성태 노상균 최우람 함진 박선기 지용호 권기수 등의 작가들이 눈에 띈다. 그들의 작품은 대개 추정가의 3~4배가 넘는 가격에 낙찰됐고 꾸준히 국내외 전시도 이어졌다. 또한 해외의 유수 컬렉터들은 물론 미술관 등에서 큰 관심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이 작품들은 대개 재료가 다양하고 복잡하며 ‘장인정신’이 느껴질 만큼 노동집약적 완성도가 엄청나다. 또한 작가들은 동시대인의 삶의 애환도 놓치지 않고 있으며 그 안에 자신의 개성을 진지하게 담는다. 즉, 재료의 새로움을 바탕으로 철학적 사색이 눈에 띄는 작품들이 많다.끝으로 조각 작품 시장의 전망은 어떨까. 이에 대해 몇 년 전 한국을 방문했던 소더비 스페셜리스트 존 탠콕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까지 조각은 전 세계적으로 다른 일반 회화 작품과 비교해 가격도 낮았고 사람들의 관심도 적었다. 그런데 10년 전부터 서서히 조각품 시장이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최상급 그림을 구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 학자와 비평가들이 조각품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 등이 그 이유다. 물론 지난 10년 동안 모든 조각 작품에 가격 상승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각 수집이 현재 미술 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분야 중 하나라는 점은 분명히 알 수 있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