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에 담은 풍류와 멋의 미학

선의 사대부들은 계절의 구애 없이 멋으로 쥘부채를 늘 들었다. 여성들은 집안에서 방구 부채라고도 불리는 단선(團扇)을 사용했으며 남성들은 외출 시 접부채 혹은 접선(摺扇)을 들고 다니기 때문에 이를 ‘쥘부채’라고 부른다. 따라서 의관의 마지막으로 부채를 들어야만 비로소 외출할 준비가 완료된 것이다. 쥘부채는 찬바람이나 먼지를 막아주고 거북한 상대라도 부딪치게 될 때 자연스레 안면을 가리는 용도로 쓰였다. 이뿐만 아니라 풍류를 즐기는 선비들이 한 곡 읊조릴 때 부채는 펼쳤다 접었다 하며 장단을 맞추는 악기이기도 했으리라.부채의 용도는 아주 다양했는데 선조 임금 때의 풍류가인 임제는 나어린 기생을 연모하며 다음과 같은 시를 쓴 부채를 선물로 여인을 유혹하고 있다. “한겨울에 부채 선물을 이상히 여기지 마라. 네 아직 어린 나이어서 어떻게 이내 심정을 쉬이 알 수 있을까만은 한밤중 서로의 생각에 불이 붙게 되면 무더운 성하(盛夏)의 염천보다 더 뜨거울 것이다.”이에 기생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한겨울 부채 보낸 뜻을 잠시 생각해 보니, 가슴에 타는 불을 끄라고 보내었나보다. 그러나 눈물로도 못 끄는 불을 부채인들 어이 하리.”연정의 고백과 그 화답이 가히 뜨겁다. 부채의 순수한 우리말은 손으로 부쳐서 바람을 일으킨다는 뜻의 ‘부’자와 가는 대나무 또는 도구라는 뜻으로 ‘채’자가 어우러져 이루어진 말로 ‘손으로 부쳐서 바람을 일으키는 채’라는 뜻이다. 부채를 묘사한 옛 시구절이 절묘하다.紙與竹而相婚生其子曰淸風대나무와 종이가 결혼하여 자식을 낳으니 그것이 바로 맑은 바람이어라부채를 합죽선, 혹은 태극선 등으로 썼는데 이때 쓰는 선(扇)이라는 한자는 가정이나 집을 뜻하는 호(戶)자에 날개를 뜻하는 깃 우(羽)를 넣어 만들어진 한문(漢文)으로서 집안에 있는 날개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실은 종이나 비단이 사용되기 전 시대의 유산으로서 옛날에는 새의 깃털로 부채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일러주는 단서다. 동서를 막론하고 초기에는 깃털을 부채 대신 사용했던 것이다. 깃털 부채는 이미 고대 유물에서도 출토되고 있다. 그러나 깃털 이전에는 넓은 나뭇잎을 사용했을 것이다.부채는 영어로 ‘팬(Fan)’, 불어로는 ‘에벙테(Eventail)’라고 하고, 쥘부채는 ‘홀딩 팬(Holding Fan)’이라고 한다. 부채가 유럽에서 사용된 시기는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문명의 발생지에서는 예외 없이 부채 유물이 나오고 있다. 이집트의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출토된 부채가 아니라 해도 다양한 부채들이 앤티크 마켓에서 거래되고 있으며 파리나 런던을 포함해 여러 곳에 부채 박물관(Fan Museum)이 자리하고 있을 정도로 단일 컬렉션으로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부채 전문 딜러들도 국제적으로 활발하게 거래를 주선하고 전시회와 페어도 자주 열린다. 물론 이 분야는 대부분 여성들의 몫이지만 점차 남성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17세기 말에는 대규모의 중국 부채와 적은 양이긴 하지만 일본 부채도 유럽에 수입된다. 그러나 초기의 이런 부채들은 질적인 차이를 식별하지 못하는 유러피언들을 겨냥한 질 낮은 상품들이었다. 동양인의 기준으로는 품질이 떨어지는 것들이었지만 처음 대하는 유러피언들의 상상력을 사로잡는 데는 큰 문제가 없는 것이었으리라.중국풍을 일컫는 ‘시누아즈리’라는 말이 유행하게 되면서 그들의 생활 문화 깊숙이 중국 문화 상품들은 자리 잡았다. 이 시대에 부채 역시 여인들의 마음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한 힘을 보여줬다. 장식적인 요소가 주얼리와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중국에서 도착한 이른바 당선(唐扇)은 부챗살로 대나무 외에 백단(白檀), 흑단(黑檀), 상아(象牙) 등을 사용하고 금과 은으로 장식했다. 유러피언들은 소박한 것보다 화려한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그들의 취향과도 어울렸다.이렇게 중국의 부채가 인기 품목으로 등장하면서 17세기에 이르면 프랑스의 파리를 중심으로 부채가 만들어지게 된다. 그러나 유럽에서 부채가 전성기를 맞은 것은 바로크가 끝나고 로코코가 풍미하던 시대와 맞아떨어진 18세기부터이며 그때부터 여성의 일상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식품이 됐다. 상아 자개 비단 양가죽 등을 사용한 부채에 여러 가지 풍속도를 그려 넣은 것들이 인기를 끌었다. 로코코 시대의 여성들이 얼굴을 살짝 가리는 교태를 자아내는 데 부채는 한층 유용했으리라.특히 브리제(Brise)라고 하는 새로운 부채 디자인들이 나타나면서 컬렉터들의 인기를 얻었다. 프랑스어로 ‘깨어짐’이라는 뜻의 이 ‘브리제’ 부채는 접부채가 변형된 것이다. 한 장으로 재단된 종이를 주름 잡아, 접히고 펼치는 접이 부채와는 달리 부챗살이 독립적으로 떨어져 실로 묶여 있으며 부채를 활짝 펴면 부챗살들이 서로 부분적으로 겹쳐서 부채 면을 이루도록 돼 있다. 브리제 부채는 접이 부채가 쓰지 못하는 다양한 소재들을 사용해 장식성을 높이는 특징을 보여주기도 했다. 유럽에서도 화가들이 부채 주인의 주문을 받아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이제 단순한 부채가 아니라 예술 작품으로서 거래가 시작된다. 누구의 그림이 담긴 부채를 들었는가는 그녀의 신분과도 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는 18세기 후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회화들에는 예외 없이 부채를 든 여성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김재규헤리티지 소사이어티 대표. 앤티크 문화예술 아카데미 대표. 앤티크 문화예술기행, 유럽도자기 저자. 영국 엡버시 스쿨, 옥스퍼드 튜토리얼 서비스 칼리지 오브 런던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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