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여인들의 고운 숨결 1만여점 모았어요”

김명희 보나 장신구 박물관장의 장신구 외길사랑

·일 월드컵 때였어요. 남편을 여의고 한동안 실의에 빠져 있는데, 호암아트홀에서 연락이 왔죠. 월드컵을 구경하러 한국에 오는 외국인들을 위해 한국의 전통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고요. 거기에 꼭 전시해야 할 전통 문화재를 제가 가지고 있어서 수소문해 찾아낸 것이라고 하더군요. 이상하게도 갑자기 힘이 났어요. 그때 받은 자극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인사동에 지난해 2월부터 문을 연 ‘보나 장신구 박물관’의 김명희 관장은 그렇게 박물관 개관을 결심했다. 판사의 딸로 태어나 이대 생활미술과를 졸업한 그녀는 결혼 후, 해외 근무가 잦은 남편을 따라 도쿄 LA 뉴욕 등지에서 생활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 곁에서 한국 전통의 가락지나 패물 등을 즐겨봐 온 것을 계기로 외국 생활을 하며 한복에 전통 장신구들을 즐겨 하고 다녔다. 외국인들은 모두들 그녀의 장신구들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찬사를 연발했다고 한다.“타지 생활을 오래해서 그런지 날이 갈수록 우리나라 선조들의 문화가 아름답고 자랑스럽게 느껴졌죠. 시간이 날 때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다니면서 틈틈이 공부했던 것이 지금의 제 안목을 높여준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어느 순간 외국과 한국을 오가며 수집해 온 문화재들이 꽤 된다는 걸 알게 됐죠. 박스 속에 사장돼 있는 것도, 혼자 보는 것도 아까워 여러 사람과 공유하고 우리 문화의 미를 세계에 알리고자 박물관을 열게 됐어요.”김 관장은 개인의 이익보다는 국가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큰 포부를 품고 인사동에 가지고 있던 건물에 박물관을 차렸다. 따라서 보나 장식물 박물관에서는 조상의 숨결이 살아 있는 장신구, 민속품, 공예품들을 두루 만나볼 수 있다. 지난해 2월에 오픈한 이 박물관에서는 그해 5월부터 ‘조선 여인의 장신구전’을, 10월부터 ‘조선 여인의 노리개 전’을 전시했고 올해 들어서는 5월부터 ‘옛 여인의 솜씨’라는 주제로 각종 자수가 놓아진 보자기와 천 종류의 유물들을 전시 중이다. 꼭 6개월씩 다른 주제로 관람객을 맞고 있는 셈. 2008년부터 2009년까지 1년간은 일본 전시도 할 계획이다. 대장금으로 한류가 급부상하면서 일본의 유명 전시 에이전시에서 러브콜을 받았다.전통 장신구 1만여 점을 소장하고 있는 김 관장의 가장 큰 자랑은 조선 시대의 노리개. “여인들이 옷에 차고 다녔던 장신구는 한국이 가장 화려하며 세계적이다”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한국 전통의 노리개에는 우리 고유의 형태, 색채, 선이 그 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 밖에도 박물관에 전시된 노리개, 주머니, 가락지, 머리를 치장하는 뒤꽂이, 비녀, 댕기 등 여인들이 몸을 단장하고 옷의 맵시를 한층 더 아름답게 꾸미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 장신구들은 한국의 전통을 보여줌과 동시에 현대적인 미도 한껏 발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실제 이 박물관은 국내에서보다는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해외 언론이 아름다운 한국의 유산을 다루면서 집중적으로 보도했기 때문이다.김 관장이 또 하나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온 가족이 각고의 노력과 비용을 투자해 만든 ‘도록’이다. 그녀는 이 도록으로 지난 3월 한국 박물관협회가 수여하는 ‘전시도록발간부문’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이렇듯 여러모로 인정을 받고 있지만 김 관장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오직 김 관장의 열정 하나만으로 일궈낸 보나 장식 박물관은 사립박물관이기 때문에 가져야 하는 장단점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사립 박물관은 특정한 테마를 전문 전시하기 때문에 깊이가 있고, 컬렉터가 수십 년간 쌓아 온 역사와 노하우를 엿볼 수 있으며, 교과서적인 정보보다 깊은 스토리와 메시지를 직접 눈으로 보면서 깨달을 수 있다는 등의 장점이 있다. 컬렉터의 입장에서는 유물과 함께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장이기도 하다. 반면, 사립박물관의 대부분이 수집가의 정열과 명분을 바탕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관람객을 늘리는 것이 우선 해결해야 할 시급한 일이다. 티켓 한 장에 수십만 원 하는 뮤지컬은 전회 매진되지만 관람료가 3000원이나 5000원 하는 사립박물관에는 “왜 박물관이 돈을 받느냐”며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흔히들 ‘문화’라고 부르는 것들은 ‘컬처’와 ‘엔터테인먼트’로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엔터테인먼트는 잘 되는 반면 컬처의 영역은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박물관도 대중에게 재미를 줄 수 있을까가 김 관장에게도 영원한 고민일 터다. 옛 여인들의 존재감을 일깨워 주고 전통의 미를 감상할 수 있는 보나 장신구 박물관이 해외에서의 관심에 그치지 않고 국민의 지지 속에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글 김지연·사진 이승재 기자 jykim@money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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