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보기만 해도 소리가 들려요”

조중제 이태리악기사 대표의 바이올린 컬렉션 15년

초동 예술의 전당 앞 어느 빌딩 안.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깨우는 듯한 바이올린 선율이 매장 안에 울려 퍼진다. 사람의 마음을 묘하게 잡아끄는 소리. 생음악이라 더하다. 25억 원을 호가하는 전설적인 명기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자아내는 소리이기에 감동은 증폭된다.“이건 아무 곳에서나 들을 수 없는 소리죠. ‘스트라디바리우스’는 현재의 표준형 바이올린을 창시한 이탈리아 바이올린 제작자인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가 만들어낸 명품 중의 명품입니다. 생애 600여 개의 바이올린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현재 전 세계적으로 3600여 개가 등록됐을 정도로 ‘진품 같은 모조품’이 판치는 것도 이 악기가 그만큼 명기이기 때문이죠.”이태리악기사 조중제 대표의 자랑이다. 조 대표는 앤티크 바이올린 컬렉터로 유럽에서 먼저 이름이 알려졌다. 그가 보유한 바이올린 리스트를 보고 있으면 입이 떡 벌어지지 않을 수 없다. 그저 클래식이 좋아 15년 전부터 수집하게 된 바이올린은 이제 그의 업이 됐다. 400여 개의 올드 바이올린을 소장하고 있으며 숍 운영은 만 5년째에 접어든다. 스트라디바리우스 외에 과르네리우스(15억 원) 과다니니(8억~10억 원) 몬타냐나(6억 원) 고프릴러(5억 원) 안토니오 로카(3억5000만 원) 세라핀(4억 원) 등 세계의 명기들을 그의 숍에서 만날 수 있다.“어려서부터 음악이 좋아 그길로 나가고 싶었지만 엄한 부모님의 반대로 무역을 전공했죠. 무역회사인 대림산업에 근무하면서 외국에 가게 될 기회가 많았고 특히 예전엔 관광은 엄두도 내지 못했던 동구권에 비즈니스 차 자주 방문했어요. 예술이 발달한 동구권의 매력에 빠져들어 클래식 카페를 차렸죠.”조 대표의 두 딸은 아버지가 못다 이룬 꿈을 대신해 첫째는 바이올린을, 둘째는 미술을 전공했다. 두 딸의 학업을 위해 가족 모두가 오스트리아 빈으로 거처를 옮겼고, 그때부터 조 대표의 올드 바이올린 사랑이 시작됐다. 가족 전체가 음악의 본고장인 빈의 매력에 푹 빠져 함께 공부하고 연습했다. 그러길 10여 년.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직접 구한 바이올린들이 지금은 모두 친자식처럼 소중하다.“모든 바이올린을 어디서 어떻게 구입했는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해요. 좋은 악기를 보면 잠이 오지 않았고, 시간이 아까워 밤 기차를 타고 악기를 찾아다닌 적도 많아요. 그렇게 가서 악기를 구하면 너무 감격스러워 눈물을 흘린 적도 있고요. 언젠가는 악기를 잘 모르는 사람이 진귀한 걸 가지고 있기에 아주 싼 값에 살 수 있었는데, 그때의 흥분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네요.”유럽엔 악기 컬렉터들이 많기 때문에 대부분 개인별로 거래한다. 사적인 거래이므로 국제 거래 가격 책자의 가격을 기준으로 삼는다. 물론 경매 제도가 잘 마련돼 있지만, 좋은 물건은 이미 개인 간 거래가 끝나 경매까지 올라오지 않을 뿐더러 일단 경매에 들어가면 물건 값이 비싸진다. 따라서 악기 딜러들은 거미줄처럼 얽혀 항상 서로 연락을 하며 관계를 유지한다. 개인 간 거래이기 때문에 신용이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조 대표는 유럽의 딜러들 사이에서도 ‘제이제이 조(JJ. Jo)’로 불리며 높은 평판을 받고 있다.“악기를 살 때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소리입니다. 올드 바이올린은 소리가 나는 골동품이기 때문이죠. 제작된 지 100년 이상 되고 연주 가능한 것만이 앤티크 바이올린으로 분류됩니다. 둘째는 겉모양이 멀쩡한지, 상태가 건강한지입니다. 악기 수집을 오래 하다 보면 모양만 보고도 어떤 소리가 날지 짐작할 수 있죠. 셋째는 감정서입니다. 유명한 감정사가 감정한 것일수록 악기의 가치가 높아집니다. 참고로 감정으로 유명한 나라는 영국이고 크리스티나 소더비 등의 경매사의 감정을 받은 상품도 믿을만하죠.”조 대표의 가족은 한 해의 반은 서울에서, 반은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집에서 지낸다. 좋은 악기가 풍부한 유럽과 원활하게 소통하며 사업을 꾸려나갈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다. 덕분에 이제는 집안의 가장인 조 대표뿐만 아니라 부인 신옥자 씨와 첫째 딸 조지욱 씨도 앤티크 바이올린의 마니아가 됐다.“올드 악기는 그 작품성과 희소성으로 매년 가격이 오르고 있기 때문에 악기를 구입해 연주자에게 대여해 주면 문화적으로 좋은 일을 하고 경제적인 이득도 볼 수 있죠. 이제 앞으론 국내 경매에서도 악기가 등장할 것이고, 개인적으로도 땅이나 집에 투자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일이라고 봅니다.” 누구랄 것도 없이 가족이 한목소리로 강조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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