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스타일리스트 김현학의 味學 스토리
자라서 행복해요.”저서를 통해 ‘결혼해줘, 밥해줄게’를 외치는 그는 분명 남자다. 국내에서도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희귀한 존재, 남자 푸드 스타일리스트 김현학(30) 씨. 상식을 뒤엎는 도전으로 새로운 미래를 개척했다. 그는 지금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네이버 인기 블로그로 꼽히는 그의 개인 블로그에 가보면 첫 화면을 깨알 같은 글자로 가득 채우고 있는 화려한 이력과 활동 내용, 언론의 인터뷰 스크랩 게시물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렇듯 남부러울 것 없는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그이지만 시작은 힘들고 외로웠다.“철학을 전공하고 평소 관심이 많던 정보기술(IT) 분야의 기업에 취직해 고향인 대전에서 그야말로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갔죠.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적응이 되기는커녕 본래 하고 싶던 꿈이 자꾸 머리를 맴돌더군요. 창작에 대한 강한 욕구였죠. 때마침 케이블 방송사의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선발됐고, 푸드 스타일링을 하며 얻을 수 있는 창작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됐어요. 결국 제 인생을 요리에 올인하기로 하고 무작정 상경했습니다.”안정적인 직장을 포기하고 돌발 행동을 하는 자식을 가만두고 볼 부모는 없다. 그의 부모는 완강하게 그의 선택에 반대했다. 냉정해진 가족과 값싼 바나나로 하루하루를 견디며 버텨야 하는 고시원 생활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시련과 고비가 됐다. 오직 열정만으로 버텨 온 시간이었다. 하지만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지는 법. 이후 그는 푸드스타일링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농림부가 주최한 ‘국제 향토 식문화대전’에서 동상을 수상하면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올 초엔 ‘결혼해줘, 밥해줄게’라는 감각적인 요리책도 발간했다. 그의 활동은 본격적으로 탄력이 붙었다.“처음엔 ‘남자가 설거지나 한다’고 걱정하시던 고향 부모님이 이젠 아들이 책도 내고 언론에도 소개되고 하니까 마음을 놓으세요. 전폭적인 지지도 보내주시고요. 예전엔 남자여서 걸림돌이 됐다면 이제는 남자니까 좋은 점이 더 많아요. 푸드 스타일링이 필요한 대부분의 일들이 밤샘 작업을 하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유리하다는 점에서 여성보다 선호되는 편이죠.”그가 수많은 푸드 스타일리스트 가운데에서도 유독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것은 단지 ‘성(性)’적인 면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그는 아카데믹하게 요리를 공부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틀에 갇혀 있지 않아 요리가 독창적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발상이 새롭다는 것. 이런 그가 당당하게 내놓는 대표 메뉴는 바로 ‘연두부 미역 초무침’이다. 천연 조미료만을 사용해 서양 애피타이저식으로 쌓아서 완성한다.“요즘 푸드 스타일리스트가 소위 뜨는 직업으로 꼽히고 있죠? 많은 사람들이 이 직업의 화려함만을 보고 뛰어들곤 해요. 하지만 그건 정말 위험합니다. 겉이 화려할수록 힘든 게 바로 직업의 세계란 것, 전 뼈저리게 느끼고 있어요. 푸드 스타일링을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꽃시장에 가서 소품을 구하고 하루 종일 콘셉트에 맞는 재료를 찾느라 시장을 이 잡듯이 뒤져야 할 때도 있어요. 그리고 감각이 있는 사람도 너무 감각만 믿어선 안 됩니다. 사회 전반적인 트렌드를 모두 조화해 요리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죠.”그는 어느새 인터뷰를 한 달에 다섯 개나 할 정도로 유명 인사가 됐고 여러 곳에서 강의도 하고 있다. 스타일링 작업을 위해 해외 출장을 연이어 다녀오고 스케줄이 넘쳐 포기해야 하는 것도 많아졌다. 습관처럼 몸에 밴 도전과 많지 않은 나이에 이룬 성공. 이를 악물고 지금까지 달려왔지만 그는 아직 젊고, 꿈은 끝나지 않았다. 두 번째 책을 준비 중이고, 내년부터는 대학원에 다니며 학업을 병행하고 마흔에 교수가 돼 우리나라 식문화를 세계적으로 알리고 싶다는 야무진 계획도 가지고 있다. 요리할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그는 오늘도 이력에 한 줄을 추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