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의 결혼, 그리고 부자 DNA

자들이 배우자를 만나는 방법에는 4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 첫째는 가난한 남자와 가난한 여자가 만나 고생 끝에 자수성가하는 경우이고, 둘째는 결혼에 의해 가난한 여자가 부자 남자를 만나 졸지에 부자가 되는 신데렐라형이고, 셋째는 가난한 남자가 부자 여자를 만나 부자가 되는 온달형, 넷째는 남자 여자가 모두 부자인 부잣집끼리의 결혼이 있다. 부자에 관한 이야기를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기술한 것을 ‘부자학’이라고 한다면, 통계적 방법을 이용해 과학적으로 접근한 책으로 토머스 스탠리가 쓴 ‘백만장자 마인드(The Millionaire Mind)’가 있다. 이 책에서는 ‘배우자 선택’을 백만장자가 되는 중요한 요인으로 들고 있다.진실성이 가장 먼저다스탠리는 이 책에서 결혼 생활을 오래한 부자들에게 배우자 선택의 요인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진실성(중요도 98%)·책임감(95%)·사랑스러움(95%)·능력(95%)·배려(94%)의 순이라고 밝혔다. 여기에는 의외로 ‘재산이 많은 사람’은 비교적 중요성이 낮게 나타났고, 남녀간에 차이가 있어서 남자(9%)보다 여자(23%)가 재산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한 연구에서도 결혼 생활을 오래 지속하지 못하는 사람들(독신주의자나 이혼자)은 재산을 얼마 모으지 못한다는 결과가 나왔으니 ‘결혼 생활의 지속’은 부자가 되기 위한 조건 중의 하나인 것을 알 수 있다.장래 부자가 될 사람은 다른 사람의 호주머니를 기웃거리지 않는다. 그들은 진실하면서 책임감이 있고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한다. 미래의 잠재적 부자들은 자기에게 맞는 인생의 반려자를 선택하는 독특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4월 포브스가 발표한 억만장자 946명 중에서 자수성가형 부자는 60%라고 한다. 그리고 대다수의 부자들은(80% 이상) 배우자의 재산이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고 대답했다.부자와 결혼하여 부자되기우리나라에서 부자학을 먼저 쓴 한동철 교수의 책에서도 현실적으로 부자가 되는 여섯 가지 방법 중 결혼(1%)을 다섯 번째 방법으로 들고 있다.옛날부터 부부는 서로 다른 두 가문에서 남녀가 만나 한 가정을 이루고, 부부가 되는 순간 재산이 공유되기 때문에 부자 배우자를 만나고 싶어 하는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었다. 우리나라의 가족 관계의 거리를 나타내는 촌수에서 부부를 무촌(無寸)이라 하는 것은 참으로 의미가 깊다. 부부는 결혼과 동시에 일심동체로서 벌어진 간격이 없을 만큼 무한히 가까운 사이가 되지만 의가 틀어져 돌아서면(이혼을 하면) 아무런 관계가 없는 냉정한 남이 된다는 의미가 동시에 포함돼 있다. 부자와 결혼해 부자가 되는 방법은 앞의 통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여자들이 더 선호한다. 신데렐라는 뛰어난 미모로 왕자의 눈에 들어 왕자와 결혼해 부자가 된다. 최근 중국 선전(深)에는 여성들에게 ‘부자들과 결혼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는 엉뚱한 회사가 등장했다고 한다.그러나 스탠리의 연구에 따르면 신데렐라와 결혼하고 오래도록 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모’만 보아서는 안 된다. ‘진실성·능력·배려’가 없는 결혼으로는 부를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 흔히 영화배우나 탤런트와 결혼한 부자가 오래 가지 못해 파경에 이르는 경우는 서로가 진실성에 바탕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명한 부자는 신데렐라의 미모 뒤에 숨어 있는 진실하고 사랑스러우면서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발견하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이때는 해피 엔딩이 되는 경우가 많다.아메리카의 비극이에 비해 가난한 남자가 부자 여자를 만나 졸지에 부자가 되는 방법은 훨씬 극적이지만 대체로 불행하게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런 방법은 드라마의 대상이 되고, 비극의 소재가 된다.미국의 대표적 자연주의 작가인 시어도어 드라이저의 소설 ‘아메리카의 비극(An American Tragedy)’은 스티븐스 감독이 ‘젊은이의 양지’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해 더 잘 알려진 이야기로, 가난한 남자가 부자 여자를 만나 결혼해 부자의 영역에 들어가고 싶어 하다가 좌절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소설에서 가난한 클라이드는 성공의 꿈을 안고 도회로 나가 호텔 보이가 된다. 그러던 중 부유한 큰 아버지를 만나 뉴욕에 있는 공장의 일자리를 얻는다. 여기서 여공 로버타와 만나 사랑하게 됐는데, 그때 부호의 딸 손드라와도 알게 되고 야망을 가진 클라이드는 그녀와 더욱 가까워진다. 가난한 연인 로버타가 임신한 사실을 알자 클라이드는 그녀를 처치하려고 산중의 호수로 꾀어낸다. 살의는 있었으나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 우연히 보트가 뒤집혀 로버타는 익사한다. 그는 곧 체포돼 재판 끝에 전기의자에서 죽는다.결혼을 앞둔 젊은이들은 부자인 배우자를 일부러 배제할 필요는 없겠지만, 진실한 사랑이 바탕이 되지 않고 오로지 상대의 ‘재산’만 노린 결혼은 원만한 가정을 유지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부를 모을 수도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부자들 간의 전략적 결혼예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치와 부의 결탁, 소위 정경유착은 흔히 있어 왔다. 앨빈 토플러는 ‘권력 이동(Power Shift)’에서 힘의 중심은 크게 ‘물리력·정치력·자본력·지식력’으로 움직여가고 있다고 본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이 힘의 중심에 가까워지기를 바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연대를 모색한다.여러 가지의 결합 방법 중에서 가장 강력한 연대 방법은 혈맹으로 한 가족이 되는 것이므로 결혼에 의한 가문 간의 결합은 기득권자들이 특권을 누리기 위한 전형적인 방법이다. 고려를 세운 왕건은 수많은 지방 호족들의 딸들과 결혼함으로써 스스로는 정치적 안정과 함께 왕조의 기초를 다졌고, 지방 호족들은 기존의 지위를 보장받게 돼 서로 ‘윈윈’했던 것이다. ‘왕대밭에 왕대 난다’는 속담은 이러한 사실을 정당화하려는 의도를 말해준다. 부자들은 가문 간의 결혼을 통해 그들만의 노하우를 공유하고 혼맥을 구축,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외부 경쟁에 대항해 일종의 독과점 체제를 형성함으로써 합법적인 불공정 거래 체제를 형성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략적 결혼은 때로는 가문 간 갈등의 심화로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이러한 결혼은 부자들 부모 간에 이해관계가 맞아 “우리 사돈하세”해서 되는 경우도 있고, 중매하는 매파가 양쪽 가문을 오가며 곡예를 하듯이 엮어내는 경우도 있고, 자연스럽게 당사자끼리 연애해서 결혼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공통적인 것은 이들의 머릿속에는 ‘부자 성골·진골’ 의식이 있다는 것이다. 신건용 기자가 쓴 ‘30대 재벌 100대 부호들 혼맥 지도’를 보면 우리나라의 재벌들이 서로가 사돈의 사돈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바로 부자들의 골품 의식 때문이라 할 수 있다.부자의 DNA는 따로 있는가?부자는 부자만이 가지는 독특한 DNA가 따로 있는가. 부자와 부자가 결혼으로 결합하면 그 자식은 부자 DNA를 가지는가. 이러한 물음은 매우 흥미로운 과제다. 그러나 성급하게 결론부터 말한다면 부자 DNA는 따로 없다.부자들의 특성이 무엇일까를 연구한 여러 책에서 근면·성실·절약·도전·창의성 등등의 요인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러한 요인들은 부자들의 성공 조건 중 일부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요인을 갖췄다고 다 부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부가 이루어지는 것은 개인적으로 가진 이러한 특성과 그때의 상황과 사회적 조건이 적절히 결합돼 이루어진 복합적 결과다. 그리고 개인이 가진 이러한 특성들은 유전에 의한 것보다 학습에 의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DNA라 할 수 없다. 부자는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 구축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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