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가치주 10선
치주 전성시대다. 1990년대 후반 저 PER(주가수익비율)주 혁명에 이어 2000년엔 정보기술(IT)주 바람이 불었고 지금 그 기세를 가치주가 넘겨 받고 있다. 가치주 투자가 과열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코스피지수가 사상 처음 1600선을 뚫는 대세 상승기에 접어들면서‘가치 있는’가치주가 줄었다는 역설적 지적도 나온다. 가치주는 통상 내재 가치보다 주가가 저평가돼 거래되고 있는 주식을 일컫기 때문에 주가가 오를수록 가치주를 보기 힘들어진다는 것이다.하지만 이 같은 지적에 가치 투자의 대가들은 아직도 투자할 가치주가 많다며 고개를 젓는다. 한국의 간판 가치 투자자로 통하는 박정구 가치투자자문 사장은“상장사 가운데 600개는 주가순자산배율(PBR)이 1배 미만이고 이 가운데 절반인 300개 기업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은 금리 수준인 5%를 넘는다”고 강조했다. 기업의 PBR가 1배 미만이면 시가총액이 자산 가치보다 낮다는 의미다. 그는 이런 저평가된 기업의 상당수는 장부가 기준으로 PBR를 계산했기 때문에 시가 기준으로 환산할 경우 기업 가치가 훨씬 더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박 사장과 함께 국내 가치 투자의 대가로 불리는 이채원 한국밸류자산운용 전무도 투자할만한 가치주가 적지 않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이 전무는 “지수가 사상 최고 수준이라도 연 20∼30%의 성과를 낼만한 우량주는 언제든지 반드시 나오게 마련”이라며 “지수를 보지 말고 저평가된 가치주가 보이면 과감히 사서 묻어 두라”고 권유했다.가치주가 뜨는 이유는 뭘까. 우선 펀드 대중화 3년을 맞이하면서 가치주가 클 수 있는 토양인 장기 투자 문화가 조성됐기 때문이다. 펀드 돌풍의 주역인 적립식 펀드의 지난 3월 말 잔액은 30조4140억 원. 계좌 수는 828만6000개에 이른다. 국내 전체 가구 수(1598만 가구)의 절반이 넘는 숫자다. 두 집 가운데 한 집 이상은 적립식 펀드 계좌를 갖고 있는 셈이다. 덕분에 과실을 따는 데 오랜 세월이 요구되는 가치 투자도 대중화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과거 가치 투자는 소수 전문가들의 전유물이었다.또 주가지수 1600선 돌파 이후 급상승보다는 꾸준히 오르는 완만한 상승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대박을 좇는 단타보다 가치 투자가 더 위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가치주 투자가 늘면서 가치가 주가로 발현되는 시기도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문제는 ‘가치주=대박주’라는 일각의 잘못된 인식 때문에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 가치주가 급등하며 가치주 버블론까지 제기되기도 한다. 보통 전통적으로 PER가 10배 미만, PBR는 1배 미만이 돼야 가치주로 쳐준다. 그러나 PER가 20배인 종목도 기업들의 이익 증가 속도가 주가 상승세를 앞지르면 가치주로 볼 수 있다. 그만큼 종목 선택이 중요하다.한경 MONEY는 국내 12개 주요 증권사가 추천한 가치주를 취합해 최고의 가치주 10선을 정했다. 여기엔 삼성 대우 현대 대신 우리 한국 미래 대투 동양 굿모닝신한 신영 한화증권이 참여했다. 특히 오랜 기간 보유하면서도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회사를 기준으로 했다.전 세계 가치 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벅셔해셔웨이가 투자한 포스코는 가장 많은 증권사로부터 러브콜을 받은 가치주다. 5개 증권사가 포스코를 가치주로 꼽았다. 버핏은 “포스코가 훌륭한 재무 구조를 갖고 있고 저평가된 점을 보고서에서 발견한 뒤 포스코의 누구도 만나지 않고 주식을 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판단은 아주 옳았으며 포스코는 효율적인 사업 구조 및 뛰어난 지배 구조를 갖추고 있다”고 덧붙였다. 벅셔해서웨이 관계자도 “지난 3월 초 포스코 지분 4%를 보유한 사실이 공개된 이후 포스코에 현재의 비즈니스 성과가 아주 뛰어난 것에 만족하며 현 경영진을 신뢰하고 지분을 장기 보유할 계획이라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대우증권은 포스코가 지속적으로 안정된 수익을 내면서 주가 재평가가 이미 시작됐다며 이런 상황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삼성증권은 인수·합병(M&A) 이슈가 부각되면서 저평가된 철강주로서의 매력이 부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신세계도 버핏의 후광을 얻고 있는 가치주다. 버핏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한 찰리 멍거 벅셔해셔웨이 부회장은 최근 자사 주총에서 “가장 좋아하는 한국 기업은 어디냐”는 질문에 ‘신세계’라고 대답했다. 그는 “현재 미국 유통 업체인 코스트코의 이사로 있기 때문에 세계 유통 업체에 관심이 많다”며 “신세계는 뛰어난 시장 지배력과 훌륭한 경영 전략을 갖추고 있는 데다 점포의 위치도 좋아 아주 전망이 밝다”고 평가했다. 그는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차원”이라며 “버핏과 논의한 것도 아니며 신세계 주식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고 설명했다. 한화증권도 신세계 경영진에 대한 높은 신뢰를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한투자증권은 신세계가 이익의 안정성 및 성장성을 갖췄을 뿐 아니라 상장을 앞둔 삼성생명 지분 가치도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KT는 4개 증권사의 러브콜을 받은 가치주다. 삼성증권은 KT가 자사주 매입 및 안정적인 배당 정책 등 지속적인 주주 환원 정책이 예상된다며 낮은 수준의 밸류에이션으로 주가의 하방경직성이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특히 통신과 방송의 융합 현상이 새로운 성장 기회를 가져다 줄 것으로 예상했다. 이 대목에서 새로운 기술의 등장과 이에 따른 시장의 변화가 기업 가치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동양종합금융증권은 특히 신규 서비스에 대한 비용 우려에도 불구하고 자산 가치에 비해 주가가 저평가돼 있다고 진단했다. 현금 비율과 배당 성향 모두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KT&G를 가치주로 추천하는 증권사도 적지 않았다. 지속적인 자사주 매입과 배당에 대한 신뢰감 덕분이다. 대우증권은 “KT&G가 연간 6.5% 수준으로 주주 이익을 환원할 예정”이라며 “해외 담배 업체와 비교할 때 주가가 낮은 편이며 이 격차는 점차 좁혀질 것”으로 기대했다. 국산 담배의 고급화로 인한 평균 단가 상승으로 국내 매출이 지속적으로 늘고 부동산 개발로 인해 2분기부터 본격적으로 분양 수입이 증가하는 것도 긍정적인 요인이다.삼성증권은 KT&G가 안정적인 사업구조 덕에 예측 가능성이 높은 현금흐름을 창출한다는 평가를 내렸다. 시장 지배력이 있고 진입 장벽이 두텁고 구조적이고 지속적으로 안정적인 이익을 내는 것도 KT&G가 가치주로 주목 받는 이유다.NHN을 가치주로 추천한 증권사들은 검색 시장에서의 독주 현상과 시장 지배력의 강화에 높은 점수를 줬다. 한화증권은 NHN을 온라인 광고 시장 성장의 최대 수혜주로 꼽았다. 강한 시장 지배력을 바탕으로 실적이 고공 행진을 하고 있다. NHN은 1분기에 ‘어닝 서프라이즈’수준의 실적을 달성했다. 1분기 매출 1996억 원, 영업이익 856억 원, 순이익 624억 원을 기록해 작년 같은 기간 대비 매출은 63.9%,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83.8%, 77.6% 증가했다. 분기 기준으로는 사상 최대 실적이다.특히 영업이익은 증권사 전문가들의 평균인 794억 원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또 검색 매출이 1084억 원으로 처음 1000억 원을 돌파했다. 1분기 실적만이 아니다. NHN은 장기간에 걸쳐 이익을 지속적으로 많이 내는 가치주로 평가 받고 있다. 회사 측은 올해 매출과 영업이익 목표를 각각 9%, 13% 증가한 8700억 원, 3400억 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NHN은 스톡옵션 물량 부담 해소로 수급 구조도 개선될 전망이다. 또 NHN재팬의 수익성이 1분기에 크게 개선돼 해외 자회사에 대한 기대치도 높아지고 있다.LG화학은 석유화학과 정보 전자 소재 등 필수 소비재 및 중간재와의 관련도가 높아 장기 성장 가능성이 뛰어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반기부터는 대산NCC 부문의 감가상각비가 700억 원 정도 감소해 전년 대비 영업이익이 59.8%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또 LG필립스LCD 및 LG전자의 실적 개선에 따른 정보 전자 소재 부문의 턴어라운드 기대감도 고조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LG화학을 실적이 개선되고 밸류에이션도 싼 종목으로 진단하고 2007년 및 2008년 예상 PER가 10배 미만이라고 소개했다.메가스터디는 온라인 교육의 간판 가치주로 평가 받고 있다. 현대증권은 인터넷과 소비형태 변화 그리고 인구 구조의 변화 등을 최적으로 수익 모델화한 가치주라고 설명했다. 시장 지배력을 기초로 한 실적 호조도 가치주로 평가 받는 이유다. 메가스터디는 시가총액이 1조 원을 넘어설 만큼 주가가 강세로 지속적인 실적 호조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1분기 매출이 365억 원, 영업이익이 97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53.6%, 39.8% 증가했다. 이 회사는 작년 업계 최초로 매출 1000억 원을 돌파했으며 올해는 1500억 원 이상을 기대하고 있다. 기업은행은 대투증권이 은행주 가운데 가장 낮은 PBR주라고 치켜세운, 금융 업종의 대표적 가치주다. 신영증권도 기업은행을 호평했다. 중소기업 부문 전문 인력을 바탕으로 고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데도 2007년 예상 주당순이익(EPS) 기준으로 PER는 6.4배에 그친다는 지적이다.대한항공도 운송 분야에서 대표적인 가치주로 꼽힌다. 한국투자증권은 대한항공의 PBR가 0.8배로 저평가돼 있다고 평가했다. 업황 호조에 따른 실적 개선 모멘텀이 부각되고 있는 점도 긍정적이다. 동양종합금융증권도 유가 안정세와 함께 여객과 항공화물 분야에서 지속적인 수요가 발생하고 있어 주가 재평가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대한항공은 최근 주가가 급등했으나 이익 증가 속도가 빠른 기업으로 평가됐다. 송재학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여행 수요 증가로 앞으로 대한항공 이익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며 “현재 주가 상승 속도가 실적 개선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한국가스공사는 2001년을 바닥으로 매년 꾸준한 오름세를 이어가며 가치주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동양종합금융증권은 가스공사의 도시가스용 및 발전용 액화천연가스(LNG) 사업의 꾸준한 성장을 예상했다. PBR도 0.8배로 자산 가치 대비 저평가 상태라고 진단했다. 대표적 전통 배당주인 가스공사는 최근 자원 가치주로 더욱 주목 받고 있다. 한화증권은 “가스공사의 지속적인 해외 자원 개발이 호조를 보이고 있다”며 우즈베키스탄 수르길 가스전의 상업화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앞으로 주가 상승 여부는 영업부문보다는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의 성과에 달려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