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한국서 큰 일 벌여도 놀라지들 마시라”

기자는 작년에 이어 올해로 두 번째 벅셔해서웨이 주주총회에 참석했다. 해외 투자 확대, 달러 약세, 미국 경제에 대한 낙관론, 신중한 투자 자세 등 워런 버핏이 내건 화두는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어찌된 게 지루하지 않았다.오히려 주총 당일 6시간 동안 이어지는 질의응답과 다음 날 2시간 30분에 걸친 기자회견에서 버핏과 찰리 멍거 부회장이 쏟아내는 혜안과 기지에 쑥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결론은 같지만 거론하는 예와 논리 전개는 분명 달랐다. 자신의 투자 방향을 확인하기 위해 그만큼 노력했다는 증거처럼 보였다. 그래서 20년 연속 주총에 참석한다는 주주들도 있나보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공식 기자회견은 5월 6일 오마하 메리어트호텔에서 한국경제신문 월스트리트저널 블룸버그통신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평생 친구이자 동료인 찰리 멍거 부회장도 동석했다. 전체적인 흐름을 위해 기자회견 내용에다 기자가 개별적으로 만나 질문했던 내용과 주주총회에서 나왔던 질문의 내용도 일부 추가해 일문일답으로 정리한다.더 할 나위 없이 좋은 기업이라 포스코를 샀다“6년 전 씨티그룹으로부터 한국 기업의 분석 보고서를 받았습니다. 기업당 한 장짜리인 보고서를 보고 ‘세상에 이런 기업도 있구나’라고 무릎을 쳤습니다. 그런데 상당수 기업이 벅셔해서웨이가 투자하기엔 규모가 작았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20개 종목을 샀고, 규모가 큰 포스코는 회사 차원에서 매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기업을 잘 몰랐던 상태라 주저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몇 개가 문제가 되더라도 대부분이 좋으면 전체 투자 실적은 결코 나빠질 수가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한국을 아주 좋아하고 잘 아는 찰리(부회장)가 한국 주식을 사라고 권한 것도 한 요인이었습니다.”“포스코 경영진은커녕 관계자도 만나지 않았고, 자문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담당 애널리스트의 의견도 구하지 않았고요. 기업 보고서를 보고 스스로 결정했습니다.”“당시 주가수익률이 아마 3~4배에 불과했을 겁니다. 엄청나게 저평가된 주식이었죠. 시장점유율도 탄탄했고 생산성 등 성과도 뛰어났습니다. 비즈니스 구조도 뛰어나고 민영화하면서 지배 구조도 선진화됐습니다. 그만한 주식이 없었습니다.” (버핏은 지난 3월 포스코에 편지를 보내 현 경영진을 신뢰하며 포스코 주식을 장기 보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업종을 보고 포스코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기업을 보고 선택한 겁니다. 기업이 좋아서 샀습니다.”(벅셔해서웨이는 작년 말 현재 포스코 주식 348만6006주를 갖고 있으며 5억8600만 달러의 평가익을 내고 있다.)우리는 한국을 사랑한다“한국은 세계에서 아주 모범적인 국가 아닙니까. 당연히 좋게 보고 있지요. 최근 주가가 많이 올랐다고 하지만 여전히 저평가된 기업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회사 차원에서 투자하려면 일정한 규모가 돼야 합니다. 시가총액 기준으로 1억 달러는 넘어야 하죠. 그런 만큼 한국을 비롯한 이머징 마켓 투자는 대상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1개 정도 기업을 더 사기 위해 검토하고 있습니다.”“그렇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찰리(멍거 부회장)도 거래를 많이 했습니다. 아주 성과도 좋았습니다. 더욱이 주식을 살 당시 환율이 달러당 1100원대에서 지금은 900원대로 하락해 환 차익도 상당히 얻었습니다.”“그건 말할 수 없습니다. 회사와 저의 원칙에 위배됩니다.”“미국에서 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한국에 투자했고 성공했습니다. 가치 투자가 아니라면 무(無)가치 투자를 해야 합니까. 환경이 약간 다르더라도 가치 투자 외에 다른 대안은 없습니다.”“한국과 미국의 관계는 전통적인 우방 관계입니다. FTA를 계기로 이런 우방 관계는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투자와 FTA는 별개인 것 같습니다. 포스코나 삼성 등 개별 기업에 대한 투자 결정에는 FTA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란 얘기죠. 우리는 개별 기업의 현재 및 미래 가치를 보고 투자 결정을 내리기 때문입니다.”“한국은 전쟁의 참화를 딛고 일어선 국가입니다. 그 저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을 사랑합니다.”멍거 부회장의 한국 예찬(멍거 부회장은 한국통이다. 어렸을 적 LA 한인타운 근처에서 살아 자연스럽게 한국인과 한국 기업, 한국 문화를 접했다. 그러다 보니 근면한 한국인과 독특한 한국 기업 문화를 높이 평가하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 이야기만 나오면 버핏은 “찰리?”하고 마이크를 넘기곤 한다. 멍거 부회장은 기자회견 때 한참 한국 예찬을 늘어놓더니 개인적으로 만나선 한국 기업에 대해 서슴없이 대답해 기자들을 놀라게 했다. 다음은 멍거 부회장과의 일문일답.)“아주 좋아합니다. 독특한 기업 문화가 오늘날의 한국을 만든 동력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벅셔해서웨이가 한국에서 일을 벌여도 놀라지 마십시오. 한국인들은 그들이 이룬 성과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도 됩니다.”“신세계입니다. 지금 유통 업체인 코스트코 이사이기 때문에 세계 유통 업체에 관심이 많은데요, 그래서 유통 업체의 움직임을 잘 압니다. 신세계는 뛰어난 시장 지배력과 훌륭한 경영 전략을 갖추고 있는 데다 점포의 위치도 좋아 아주 전망이 밝습니다. 월마트도 나가떨어지게 만든 아주 좋은 기업 아닙니까.”“그런 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차원입니다. 버핏과 논의한 것도 아니며 신세계 주식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SK라고요. 그 회사에 대해선 잘 모르는데요.”“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을 가장 존경합니다. 그는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에서 무에서 유를 만든 사람입니다. 특히 조선업에서 일본을 제쳤다는 것은 아주 대단합니다.”“그건 개별 기업의 상황이 다를 것이고, 제가 구체적으로 잘 몰라 뭐라 말할 입장이 아닙니다.”“저력 있는 회사죠. 다만 세계 자동차 시장의 경쟁이 아주 치열한 상태라….”“단지 삼성이 한국을 대표하는 좋은 기업이라는 측면에서 언급했을 겁니다. 주식을 갖고 있는지 여부는 말할 수 없고요.”거대 기업을 인수하고 싶다“그동안 우리는 미국 내 투자를 고수해 왔습니다. 그러나 달러화가 약세를 띠면서 환율 리스크를 커버할 필요성이 커졌습니다. 이를 커버하려면 달러화가 아닌, 다른 통화를 기준으로 한 이익 창출이 필요했죠. 그래서 세계 투자로 무게중심을 옮겼습니다. 올해는 세계 투자를 더욱 확대할 예정입니다. 한국 등 이머징 마켓을 비롯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도 아는 사람을 통해 투자 대상을 소개받고 있습니다. 앞으로 6~8개월 안에 가시적인 성과가 있을 겁니다.”“아니 그런 건 아니고요. 다만 큰, 아주 거대한 기업을 인수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현재 갖고 있는 현금성 자산(3월 말 현재 460억 달러)을 다 투입하고 그것도 모자라면 기존 투자 지분을 매각해서라도 자금을 댈만한 회사 말입니다. 지금 규모를 말하기는 그렇더라도 어쨌든 거대 기업을 인수하고 싶다는 생각은 간절합니다.”(현재 벅셔해서웨이는 너무 많은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가능한 한 이를 사용하라는 무언의 압력을 받고 있다.)“그렇습니다. 미국의 쌍둥이 적자가 지속되는 한 달러화 가치는 하락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위안화를 비롯해 아시아 각국 통화가 달러화에 대해 강세를 보일 것입니다. 특히 위안화는 독보적인 강세를 유지할 것이며, 이에 따라 위안화에 대한 싱가포르 달러가 약세를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통화가치보다는 이익을 훨씬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활용되지 않은 인적 에너지가 엄청난 나라입니다. 과거엔 중국의 시스템이 잠재력을 갉아먹었으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중국에 미국 인구와 같은 2억9000만 명의 똑똑한 사람이 있습니다. 잠재력이 엄청난 나라죠. 다만 사업 환경이나 소비자의 취향이 미국과는 아직 많이 다르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일본에 눈을 너무 늦게 떴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일본 기업 4~5개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다만 공시 요건에 미달해 주식 보유 사실을 공개하지 않고 있을 뿐이죠.”우리는 사관학교가 아니다“한 600여 명이 지원했습니다. 그런데 아주 어려운 작업이에요. 어쨌든 3~4명의 후보를 조만간 추려낼 생각입니다. 이들로 하여금 20억~50억 달러를 운용케 한 뒤 CIO를 선정할 생각입니다.”“그런 건 아닙니다. 학력이나 경력에 제한 없이 지원서를 받았어요. 벅셔해서웨이는 운용 자산이 크고 장기 투자를 원칙으로 하는 만큼 펀드 운용과는 또 다를 겁니다. 몇 가지 기준에 의해서 선발할 생각입니다.”(선발 기준에 대해선 ‘후계자의 자질로 본 버핏의 투자 원칙’에서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그렇다면 오산입니다. 우리는 사관학교가 아닙니다. 배우려면 다른 데를 가야 하지요. 우리는 학생을 뽑는 게 아니라 이미 완성된 사람을 뽑는 겁니다.”(기자에게도 한국에서 3명이 CIO에 지원하겠다며 절차를 문의해 왔었다.)“아닙니다. 본인이 가장 사고(思考)를 명료하게 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일할 수 있습니다.”유동성 급감은 우려하지만 미국 경제는 낙관한다“맞는 지적입니다. 최근 유동성이 급속히 늘면서 자산 가치가 동반 급등하고 있습니다. 거품이 생기고 있다는 얘기죠. 그런데 시장 참가자 모두가 방심하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갑자기 유동성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이런 리스크에도 미리 대비해야 합니다.”“부동산 경기에는 상당 기간 영향을 줄 것으로 봅니다. 실제 벅셔해서웨이 자회사인 건설 관련 회사들도 요즘 힘들어합니다. 그러나 미국 경제에는 큰 타격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등이 적절히 위험을 조절할 것으로 확신합니다.”“미국에서 신용 경색이 전면적으로 일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시장의 변동성과 위험이 커진 만큼 때때로 신용 시장이 과거 1998년 롱텀캐피털 파산 때와 같이 일시적으로 마비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FRB를 비롯한 정부기관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으로 봅니다.”“지구 온난화의 진전으로 허리케인 같은 자연재해가 자주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보험 부문의 이익이 줄어들 것으로 봅니다. 이에 대비해 보험 부문 투자도 적절히 조절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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