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자원 전쟁시대…6대 광물 개발 도전”
정 회장이 신사업으로 자원 개발을 추진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국가 간 경쟁이 정보통신기술 싸움이었다면 앞으로는 자원 확보 싸움이 될 것이고 이 과정에서 자원의 가치가 더욱 커질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정영태유리ES 대표이사 회장조지워싱턴대 경영학과 졸업루슨트테크놀로지스 아시아지역 총괄판매 사장'나폴레옹의 전쟁금언(The Military Maxims of Napoleon)’은 전장에 나서는 장수의 마음가짐에서부터 각종 병법, 병참 관리까지 빠짐없이 기록돼 있는 책이다. 이 때문에 ‘전쟁금언’은 ‘서양의 손자병법’으로 불릴 정도로 군사학에선 고전 중 고전으로 통하고 있다. 그렇다고 ‘전쟁금언’이 군사 관계자들에게만 읽혀지는 책은 아니다. 갈수록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글로벌 기업 환경에서 ‘전쟁금언’에 실린 나폴레옹의 식견은 놀라울 정도로 맞아떨어진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갖춰야 할 모든 것들을 너무도 쉽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정영태 유리ES 회장은 ‘전쟁금언’ 중에서도 ‘불리한 진지 위치(Unfavourable Positions)’라는 구절을 가장 좋아한다. “지휘관은 전투 당일에 이르러서도 자주 자신에게 자문해 봐야 한다. 만일 적군이 당장 정면이나 우측 또는 좌측에 나타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만일 이러한 질문에 답하는 데 어떤 어려움을 느낀다면, 그는 위치 선정을 잘못한 것이며 즉시 이를 수정해야 한다.”언뜻 보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기업을 운영하는 CEO 입장에서 볼 때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야말로 급변하는 기업 환경 속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기 때문이다.정 회장은 벤처라는 말이 요즘처럼 널리 쓰이기 훨씬 전인 1993년 미국 유리시스템스 한국 지사를 설립해 국내 벤처기업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유리시스템스는 정 회장의 매제인 김종훈 박사가 1992년 설립한 정보기술(IT) 벤처 업체다. 김 박사는 1998년 루슨트테크놀로지스에 13억 달러를 받고 회사를 매각했고 현재는 루슨트테크놀로지스 산하 벨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정 회장이 한국에 유리시스템스 지사를 설립할 당시만 해도 벤처기업을 운영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세일즈는 자신 있었지만 제품 기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터라 처음에는 다소 애를 먹었습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하는 데는 자신이 있었기에 IT 전문 세일즈맨으로 명성을 날리게 됐죠.”그는 기업 성공의 비결을 기술력, 마케팅, 시간이라고 말한다. 특히 그는 타이밍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유리시스템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타이밍이 절묘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유리시스템스가 개발한 초고속 ATM(비동기 전동방식) 단말기의 사례가 타이밍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대표적 케이스다. 이 단말기는 애당초 군사용으로 개발된 제품이다. 미 해군의 정찰기가 목표 지점을 촬영하면 단말기가 이를 본부로 실시간 전송해 전폭기들이 목표점을 효과적으로 타격할 수 있도록 하는 용도였다. 그런데 단말기가 개발된 후 마침 보스니아 내전에 미국이 개입하면서 미 공군기 팬텀에 장착되는 기회를 얻었고 여기서 뛰어난 성능을 인정받았다. 이후에는 인터넷의 급속한 확산을 타고 일반 개인용 컴퓨터에도 부착돼 사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정 회장의 취미는 여행이다. 그가 하는 여행은 일반인들이 즐기는 여행과는 조금 성격이 다르다. 일반 사람들에게 여행은 지친 심신을 재충전하는 기회지만 그에겐 도전의 연속이다. 그래서 그는 오지나 극기 여행을 즐긴다. 비행기로 2~3시간 걸릴 곳을 그는 10시간 넘게 차를 타고 가기도 한다. 가족 여행도 예외가 아니다.정 회장은 지난해 말 압연 롤 생산 업체인 SNG21(현 유리ES)을 인수하면서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유리시스템스가 그에게 꿈을 키워준 곳이라면 유리ES는 자신의 꿈을 완성할 곳이다. 정 회장은 적극적인 인수·합병(M&A)과 신사업 추진을 통해 유리ES를 3년 내 매출 1조 원의 에너지·BT(생명공학) 전문 그룹으로 성장시킨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지난 3월 29일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하면서 사명을 바꾸고 자원 개발 등 신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정 회장이 신사업으로 자원 개발을 추진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국가 간 경쟁이 정보통신기술 싸움이었다면 앞으로는 자원 확보 싸움이 될 것이고 이 과정에서 자원의 가치가 더욱 커질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실제로 중국의 폭발적인 수요 증가로 구리 니켈 주식 등 비철금속 가격이 급등세를 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지난 4월 10일 런던금속거래소에서 거래된 구리 가격은 작년 10월 16일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2월 초 저점에 비해서는 무려 48%나 급상승했다. 니켈 알루미늄 아연 납 주석 모두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중국의 소비량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중국 관세 당국에 따르면 지난 3월 구리 수입량이 30만7740톤으로 월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올 1분기 수입량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8%나 늘어났습니다. 중국의 경제가 급격하게 성장할수록 비철금속 가격은 앞으로 더욱 큰 폭으로 뛸 것입니다.”이런 추세를 타고 세계 각국은 저마다 자원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중국 일본 인도 등 아시아 국가들은 첩보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자원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얼마 전 카자흐스탄을 방문했는데 이미 중국 기업들이 사업지 이곳저곳을 선점해 놓은 상태더군요. 캐나다 오일샌드만 해도 일본 중국 기업들이 수년 전부터 현지에 법인을 세워 자원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죠.”정 회장의 이 같은 전략적 판단에 따라 유리ES는 산업자원부가 지정한 6대 광물 개발 사업에 모두 진출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현재 미국 키스톤 인더스트리사와 콜롬비아 석탄 광산 합작 투자에 관한 협상을 진행 중이며 필리핀의 구리 광산 매입도 검토하고 있다. 이 밖에 카자흐스탄의 우라늄 광산과 필리핀의 아연 광산 매입도 타진 중이다. 정 회장은 자원 개발과 함께 나노 산업 진출도 모색하고 있다. 이를 위해 2차전지 핵심부품인 분리기(separator)를 생산하는 업체인 하이텍 인수를 진행 중이다. “전지 개발 사업도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야입니다. 태양광전지 핵심 소재인 솔라 셀의 값은 최근 2~3년 사이 7배나 폭등했습니다. 솔라 셀은 실리콘으로 만드는데 만약 해외 실리콘 광산을 인수한다면 시너지 효과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정 회장은 이 밖에 레저 사업 등에도 진출한다는 방침 아래 최근 일본 최대 골프장 개발 업체인 PGM과 업무 제휴를 맺기도 했다. 그는 이처럼 사업을 확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M&A의 중심 축 역할을 할 유리ES의 경영 상황에 대해서도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유리ES는 제품의 수요처가 한정돼 있어 매출액은 100억 원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익성이 탄탄하기 때문에 신사업을 통해 성장성만 확보된다면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인터뷰를 마치면서 정 회장은 자신의 명함을 보여주었다. 명함에는 ‘yurie’라는 회사명이 새겨진 돌의 이미지가 인쇄돼 있다. “이 돌이 우리 회사의 로고입니다. 돌처럼 탄탄하고 내실 있는 회사를 지향한다는 뜻이 담겨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