愼獨·투명경영 의지 유리문·벽으로 표현
최고경영자(CEO)의 집무실은 그 회사의 또 다른 얼굴이다. 집이 삶을 담는 그릇인 것처럼 CEO의 집무실 인테리어에는 기업 문화나 경영 스타일이 투영된다. 특히 개성이 강하고 경영 철학이 뚜렷한 CEO일수록 집무실 인테리어를 통해 자신의 스타일을 직원들과 고객에게 보여주려는 경향이 있다.신한카드 홍성균(60) 사장의 집무실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그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서울 광교 옛 조흥은행 본점 건물은 오래 전 기억에 있던 석재 외장 느낌의 그 건물이 아니었다. 리노베이션을 통해 현대적 분위기로 탈바꿈한 건물은 41년 전(1966년)에 준공된 건물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홍 사장의 방은 7층에 있었다. 집무실 입구 자투리 공간에 꾸며놓은 작은 실내 정원이 이색적이었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마음을 차분하게 안정시켜 주는 느낌이었다. 아울러 실내 가습 효과도 있을 것으로 생각됐다. 집무실 자체는 여느 금융 CEO들의 방에 비해 훨씬 좁아보였다. 처음에는 20평 규모로 설계됐는데 홍 사장의 지시로 9평으로 줄였다고 한다. 철저하게 실용성을 중시하는 그의 스타일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그는 인사를 마치자 ‘기호론(記號論)’을 화제로 꺼냈다. 사물의 형식 정보와 의미 정보 사이의 간극을 설명하며 안경을 예로 들었다. 누군가가 안경을 쓴다는 사실이 주는 1차적인 정보는 그의 눈이 나쁘다는 것이지만 안경테나 렌즈 컬러를 통해 그 사람의 이미지도 전달된다는 것이다. 지적(知的)이다, 자유분방하다, 개성 있다 등등의 이미지를 그 사람의 안경을 통해 갖게 된다는 설명이다.홍 사장은 ‘기호론’을 단순한 머릿속 지식으로만 담아두고 있지 않은 듯했다. 집무실에도 기호론적 상징이 엿보였다. 그의 경영 철학이 집무실이라는 공간에 표출돼 있었다는 얘기다. 바로 투명성(transparency)과 의사소통(communication)이다.그의 집무실은 3면이 투명 유리로 돼 있다. 이 때문에 밖에서 집무실 내부가 훤히 보인다. 조금 과장하면 유리 상자 같은 느낌이다.그는 “밀폐된 방에서는 몸가짐이 흐트러질 수도 있지만 완전히 공개된 공간에 있으면 스스로 경계하게 된다”고 투명 유리 출입문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런 설명은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삼가고 조심한다는 뜻의 ‘신독(愼獨)’을 연상케 한다. 아울러 금융회사 CEO로서 자신의 방을 찾는 이들에게 ‘우리는 이렇게 투명하게 일한다’고 하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는 의도도 있는 듯하다.집 안 거실의 소품이 집주인의 개성을 말해 주듯이 홍 사장 집무실에도 신한카드의 정신을 상징하는 오브제가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미식축구 선수들의 필수 장비인 마스크다. 미식축구는 다른 어느 종목보다도 팀원들 간의 교감과 희생이 요구되는 스포츠다. 그 매력에 빠진 홍 사장이 신한카드의 조직 문화 설정에 미식축구 마스크를 모티브로 삼은 것이다.집무실의 인테리어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특이한 의자 배치였다. 홍 사장의 책상 앞에는 2개의 의자가 비스듬히 놓여 있고 조금 떨어져 창가에 역시 비스듬한 각도로 3개의 1인용 소파가 배치돼 있었다. 언뜻 봐서는 정돈돼 보이지 않았고 방금 전에 누가 앉았다가 나간 듯한 느낌이었다. 홍 사장은 의도적으로 비스듬하게 의자를 배치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정면으로 마주보고 앉으면 대립의 느낌이 들지만 비스듬히 앉으면 격의 없게 느껴져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다”고 그 의도를 설명했다. 의사소통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배치라는 얘기다.신한카드는 짧은 역사 속에 성장세가 가파른 회사다. 설립 초기 인력은 90여 명이었지만 이제는 3000명을 넘어섰고 2년 뒤에는 7000~8000명에 이를 전망이다. 조직 구성원이 늘어날수록 의사소통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므로 회사 내의 사소한 일상에서까지 커뮤니케이션 활성화를 배려해야 한다는 게 홍 사장의 생각이다.의사소통에 대한 홍 사장의 의지는 집무실에만 그치는 게 아니다. 사장실 바로 위인 8층에는 ‘커뮤니케이션 룸’이란 공간이 마련돼 있다. 일종의 다용도 공간으로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휴식을 취할 수도 있고 외부 방문객을 접견하거나 간단한 프레젠테이션을 할 수도 있도록 꾸며져 있다. 특히 별관의 커뮤니케이션 룸에는 그네도 걸어놨는데 직원들로부터 인기 만점이라고 한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고 했던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열린 생각을 소통해 보자는 취지가 읽혀졌다.홍 사장이 외부 방문객에게 자랑하는 또 하나의 공간은 집무실 맞은편에 있는 임원 회의실이다. 이 방에서는 청계천의 전경이 내려다보인다. 실내에는 청계천의 어제와 오늘을 보여주는 사진 자료와 청계천 벽에 재현된 ‘정조대왕화성능행반차도’의 화첩이 있다. 그는 “반차도는 수행 인물들과 의상, 음식 등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며 “특히 외국인들에게 우리나라가 이처럼 고도의 기록 문화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설명해 주면 모두들 감탄한다”며 뿌듯해했다.기호와 상징을 통한 메시지 전달에 능한 홍 사장. 그는 인터뷰 도중 커뮤니케이션 룸에 비치된 막대 사탕을 하나 집더니 사무실 이곳저곳을 이동하는 중에도 사탕을 빨고 다녔다. 하지만 그런 홍 사장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직원들은 없었다. 그 역시 소통의 상징이고 신한카드 조직 내에선 익숙한 풍경이라는 의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