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이민 ‘동남아 드림’시대 열린다

은퇴 후의 삶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고령화 사회와 함께 찾아온 이 문제는 이제 너나없이 모두의 화두가 됐다. 비단 노후 자금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가를 어떻게 보내고 건강관리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 미리 생각해 두어야 할 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요즘은 은퇴 후 아예 한국을 떠나 새로운 땅에서 제2의 삶을 꿈꾸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중에도 동남아 지역은 매달 일정 규모의 연금만 있어도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은퇴 이민의 신천지로 각광받고 있다.요즘 은퇴 이민을 떠나는 사람들은 주로 베이비붐 세대 부모들이다. 6·25전쟁과 경제 발전을 거치는 동안 이들에겐 오로지 가난을 해결해야겠다는 일념 밖에 없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현직을 떠나고 보니 이들은 삶의 여유를 찾는 방법을 몰랐다. 필리핀으로 은퇴를 떠난 이명선(64) 씨는 “자식들 눈치 보며 아등바등 살지 않고 나만의 삶을 즐기기 위해 은퇴 이민을 결정했다”면서 “지금까지 자식들을 위해 살았다면 앞으로는 나만을 위해 살고 싶다”고 말한다. 은퇴 이민은 철저한 저비용 고효율 구조다. 이민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필요한 노후 자금의 50%만 있으면 충분히 동남아 지역으로 은퇴 이민을 떠날 수 있다고 말한다. 일례로 국내에 4억 원짜리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면 집을 전세(평균 70% 가정) 놓고 돈을 은행에 예치(연리 5% 기준)할 경우 매달 120만 원 정도의 이자를 받는다. 여기에 약 30만~50만 원만 추가하면 운전사와 가정부, 집사 등을 두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다. 만약 추가로 돈이 필요하다면 어학 연수생을 대상으로 임대 사업을 할 수도 있다.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는 은퇴 이민자들을 위한 장기체류 비자까지 만들어 외국인들에게 적극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 각국 정부에서 부여한 비자를 발급받으면 주택 구입 등은 물론 자금 송금, 세제 등에서 혜택을 받는다. 비용을 적게 들이면서 사시사철 따뜻한 날씨 속에 한국에선 엄두도 내기 어렵던 골프와 수상 스포츠를 맘대로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은퇴 이민의 가장 큰 매력이다.장년층의 엑소더스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미국 유럽에 비해 국내에는 아직 은퇴 준비에 대한 인식이 상대적으로 낮았으나 최근 은퇴 관련 금융 상품 등이 봇물처럼 쏟아지면서 관심이 점차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모 외국계 은행이 세계 22개 국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복수 응답)한 결과 우리나라 사람들은 은퇴 후의 삶으로 여행(89%), 자원 봉사(74%) 새로운 취미(65%) 등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대답했다.그러나 준비 없이 무턱대고 은퇴 이민에 나섰다간 쓰디쓴 실패만을 맛볼 뿐이다. 반드시 집값, 물가 등 현지 상황을 사전에 확인하고 떠나야 한다. 대상지로는 한국 내 친지들과 비교적 쉽게 왕래할 수 있는 곳이 적합하다. 일본은 단카이 세대의 은퇴로 10년 전부터 은퇴 이민이 각광을 받아왔지만 최근 들어 동남아 은퇴 이민의 피해가 속속 알려지기도 했다. 얼마 전 아사히신문은 동남아로 은퇴 이민을 떠난 일본인들이 현지에서 각종 사기 사건에 휘말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은퇴 이민보다는 중장기 체류(롱 스테이)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언어 문제와 현지 의료시설도 꼼꼼히 살펴봐야 할 대목이다. 코리아타운이 조성돼 있다면 현지 적응이 수월하겠지만 주로 한국인끼리 부동산을 사고팔아 다른 곳보다 집값이 터무니없이 높을 수 있다. 현지 주민들과의 마찰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도 중요하다. 앤드류 은퇴이민연구소 김기범 소장은 “한국 내 검증된 전문 업체의 자문을 받아 이민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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