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의 왕이로소이다
1975년 어느 날, 멕시코 여배우 마리아 펠릭스가 까르띠에 매장을 방문했다. 매장 직원들은 기겁했다. 그녀가 톱스타여서가 아니라, 그녀의 손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조그만 새끼 악어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 악어와 똑같은 모양의 목걸이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까르띠에는 몇 달 뒤 주문받은 작품을 세상에 내놨다. 실제 악어를 모델로 스케치해 조각하고 보석을 세팅했다. 악어가 성장하기 전에 작품을 완성해야 했으므로 신속한 작업이 필요했으며, 고도의 보석 세공 노하우가 요구됐다. 이때 제작된 악어 주얼리는 30여년만인 지난 10월, ‘라 도냐 드 까르띠에 시계’로 아름답게 부활했다.까르띠에 브랜드는 1847년 아돌프 피카드의 수습생이었던 루이 프랑수아 까르띠에가 파리의 몽토르고이가 31번지에 있던 보석 작업장의 책임을 맡으면서 탄생했다. 까르띠에는 나폴레옹 3세의 사촌인 마틸드 공주의 후원으로 눈부시게 번창했고, 1859년엔 당시 파리 상류층의 심장부였던 이탈리아 대로 9번지로 아틀리에를 옮겼다. 그로부터 까르띠에와 왕족, 그리고 상류사회와의 기나긴 러브 스토리가 시작된다.까르띠에는 ‘왕의 보석상’, ‘보석상의 왕’이란 찬사를 받으며 영국 에드워드 7세의 대관식에 사용된 왕관을 비롯해 스페인 포르투갈 러시아 시암(현 태국) 그리스 세르비아 벨기에 루마니아 이집트 알바니아 왕실과 오를레앙 일가, 모나코 왕가 등을 위해 기념비적인 주얼리를 제작했다. 루이 프랑수아 까르띠에는 가업을 잇기 위해 아들인 알프레드에게 기술을 가르쳤고, 1874년 알프레드가 회사 경영을 물려받았다. 알프레드는 다시 그의 세 아들 루이, 자크, 피에르를 사업에 참여시켜 국제적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다. 맏아들 루이가 파리의 사업을 이어받았고, 1902년 자크와 피에르가 런던과 뉴욕에 각각 지사를 세웠다. 뉴욕 지사가 들어선 5번가의 모튼 플랜트 빌딩은 훗날 까르띠에 인터내셔널사의 본부가 된다.루이, 자크, 피에르 세 형제는 자신들의 살롱에서 고객을 맞는데 안주하지 않고 세계를 두루 돌아다녔다. 특히 런던에 기반을 둔 자크는 매우 진취적이어서 최고급 진주를 찾기 위해 페르시아 지역을 뒤지고 다니는가 하면, 인도의 왕후를 설득해 인도 왕가의 화려한 보석들을 플래티넘을 이용한 까르띠에 디자인으로 재창조하기도 했다. 지금은 보석과 시계에 두루 사용되고 있는 플래티넘이 당시엔 매우 혁신적인 소재였는데, 까르띠에의 실험 정신이 독특한 플래티넘 세공법을 만들어 낸 것이다.이들 삼형제 곁에는 샤를 자코, 모리스 쿠에, 에드몽 예거 등 당대 최고의 보석 공예가가 있었다. 이들과 함께 까르띠에는 불멸의 작품들을 끊임없이 선보였다. 초창기 까르띠에가 탄생시킨 가장 아름다운 주얼리는 ‘트리니티’와 ‘팬더’다. 트리니티는 화이트 골드, 옐로 골드, 핑크 골드로 이루어진 3개의 링이 결합된 작품으로 1924년 장 콕토로부터 “지금까지 누구도 본 적이 없는 반지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받아 루이 카르티에가 직접 디자인한 것이다. 트리니티의 화이트 골드는 우정, 옐로 골드는 충성, 핑크 골드는 사랑을 상징한다.표범 형상의 ‘팬더(프랑스어로 표범이란 뜻)’는 까르띠에의 또 다른 상징이다. 루이 까르띠에가 아프리카를 방문했을 때 먹이를 찾아 초원을 헤매는 표범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했다. 이후 까르띠에의 하이 주얼리를 디자인했던 잔 투생이 팬더를 모티브로 한 디자인을 다양하게 발전시켜 나갔다.까르띠에 시계도 역사가 깊다. 그 중에도 산토스 손목시계의 성공은 ‘까르띠에 시계’를 명품 반열에 올려놓는데 크게 공헌했다. 최초의 산토스 시계는 1904년 루이의 친구인 브라질 출신의 비행사 알베르토 산토스를 위해 제작됐다. 산토스가 비행 중에도 쉽게 시간을 확인할 수 있도록 손목시계를 만들어 준 것. 1907년에는 에드몽 예거와 공동으로 특허를 받은 시계 버클과 1919년 제1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새로운 군용 차량에서 이름을 딴 탱크 디자인이 탄생했다. 탱크는 그 이름처럼 견고함을 느낄 수 있으며 사각의 문자판이 특징이다.이처럼 파리의 한 보석 작업장에서 출발한 까르띠에는 150여 년의 역사를 통해 실험적 디자인으로 시대를 선도해 왔다. 그리고 바로 그 같은 실험정신이 현재 전 세계에 180개 부티크, 1만2000여 개 숍을 가진 세계적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