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에 투자하면 심리적 이자도 받아요”

이승신 갤러리 소호 대표 인터뷰

카소 샤갈 미로 등 대가의 작품을 감상하며 음미하는 와인은 어떤 맛일까. 외국 영화에서나 접할 것 같은 이런 분위기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사직공원 옆에 있는 갤러리 소호(www.thesoho.co.kr)는 피카소 등 유명 화가의 진본 작품을 감상하며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복합 문화공간이다. 미술과 음식 외에 건축과 시, 음악 등이 어우러져 다섯 가지 즐거움을 한꺼번에 누릴 수 있다.이런 독특한 문화공간을 만들어낸 이승신 갤러리 소호 사장은 강한 열정을 가진 컬렉터다. 이 사장은 이대 영문과를 졸업한 후 워싱턴 조지타운 대학원에서 언어학을, 뉴욕 시러큐스대에서 TV방송학을 전공한 후 워싱턴 WBN-TV에서 방송국장을 지냈다. 그는 미국 주류 사회에서 소수 민족으로 겪는 어려움을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극복하면서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초등학교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무척 좋아했어요. 미대에 진학하기 위해 동양화를 배우기도 했죠. 그런데 결국 미술을 전공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후 미국에 살면서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망이 뒤늦게 생기더군요. 그래서 직접 유화를 그려 거실 벽에 걸어놓고 큰 즐거움을 느꼈어요. 이후 시간이 날 때마다 워싱턴과 뉴욕의 작은 갤러리를 둘러보기 시작했어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유명한 대가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작가들의 혼이 담긴 예술품을 바라보면서 미술품을 갖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솟구쳤죠.” 이후 이 사장은 본격적인 컬렉터의 길을 걷게 됐다.“꼭 갖고 싶은 핸드백이 있으면 몇 달치 월급을 모아서 사는 여성들이 많잖아요. 저도 꼭 사고 싶은 그림이 있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구입하곤 했습니다. 물론 워싱턴 시내 국립 미술관은 물론이고 다른 도시에서 개최되는 특별 전시회, 상설 전시회도 열심히 둘러봤습니다. 인상파 천재 화가 고흐의 사후 100 주년 기념전이나 ‘인상파, 후기 인상파 아넨버그 수집 컬렉션’ 등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천재 화가들의 열정과 숨결, 그들의 고뇌를 마치 현장에서 작가와 함께 호흡하고 느끼는 것 같은 감동을 받았죠.” 이 사장은 피카소와 샤갈의 그림을 중심으로 예술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이 사장은 미국 생활을 접고 방송위원회 국제협력위원으로 일하기 위해 한국에 돌아온 후 우연한 계기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된다. “종로구 필운동에 부모님께서 50년 넘게 사셨던 한옥이 있었는데 갑자기 도로가 생기면서 절반이 잘려나가게 됐습니다. 이 부지를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 끝에 건물을 지어 전세를 주려고 했죠. 그런데 건물을 짓자마자 외환위기가 닥쳐 전세가 나가지 않았어요. 고민 끝에 위층은 외국인을 위한 호텔식 레지던스로, 아래층은 레스토랑과 갤러리를 결합한 복합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기로 했습니다.”이렇게 탄생한 소호는 독특한 분위기로 시선을 모은다. 하나의 건물이지만 계단과 벽을 이용해 다양한 공간으로 나뉜 곳에 피카소와 샤갈, 미로 등 세계적 거장들의 작품이 걸려 있고 고가구들도 전시돼 있다. 이 사장의 문화적 감성은 어머니인 고 손호연 여사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손 여사는 국내보다 일본에서 더 유명한 단카(한 줄로 표현하는 일본의 전통 시) 시인이었다. 손 여사는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의 장학생으로 일본에 건너가 단카 최고 권위자인 나카니시 스스무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이후 손 여사는 필운동 자택에 거주하면서 60년간 단카 2000수 이상을 지었고 일본에서 ‘무궁화’란 이름으로 시집도 출간했다. 특히 1998년에는 일왕이 주최하는 신년어전가회에 초청받기도 했으며 노래비가 세워질 정도로 일본에서는 최고의 단카 시인으로 인정받고 있다.“저도 사실 어머니가 그렇게 일본에서 유명한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제 일이 바쁘기도 했고 어머니도 워낙 겸손하고 조용한 성격이어서 말씀을 하지 않으셨던 거죠. 나중에 일본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현지에서 열광적인 일본인들의 반응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손 여사의 단카 속에는 평화와 사랑을 염원하는 시인의 절실한 감정이 담겨 있다. ‘절실한 소원이 나에겐 하나 있지 / 다툼 없는 나라와 나라가 되라는’이란 단카는 한·일 정상회담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낭독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시인의 유품과 원고, 관련 기사 등도 소호에 함께 전시돼 있다. 이 사장은 또 최근 강남에도 지하 1층 지상 4층의 대형 복합 문화공간을 마련했다. 청담동 소호는 필운동과 마찬가지로 수준 높은 미술과 음식 음악 등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프랑스나 스위스 등 선진국에 가면 경치도 좋고 볼거리도 많지만 진짜 매력은 조그만 마을에도 미술관이 있다는 점입니다. 문화는 정치력과 군사력 모두에 영향을 주는 요소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11위의 경제 대국이지만 경제력에 비해 문화의 힘은 취약합니다. 청담동 소호 3, 4층에 제가 지금까지 모아온 미술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이젤 앞에 있는 여인(피카소), 탬버린을 든 젊은 커플(피카소), 햇살이 비치는 아틀리에(샤갈) 등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제가 그동안 미술품을 수집하면서 키워온 안목을 나눠드리고 싶었습니다.”그는 미술품만큼 좋은 수집 대상은 없다고 강조한다. “미술작품을 접하면 감성이 풍부해지고 내적으로 성숙해질 뿐만 아니라 자신의 브랜드 가치도 높일 수 있습니다. 마음의 기쁨이 커질 뿐만 아니라 돈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큰 이미지 상승효과도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미술품에 투자하면 심리적 이자를 받는다고 말하고 싶어요. 물론 실제 거래가격도 많이 오르고 있어 투자 대상으로도 손색이 없지요. 세계적인 미술품을 많이 접하고 작가의 혼을 느끼며 자신의 삶과 자기의 마음을 작가와 연결해 보면 누구라도 훌륭한 컬렉터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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