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유통업계의 살아있는 신화 사람 마음읽어 36억달러 ‘떼돈’
입력 2006-10-27 12:47:23
수정 2006-10-27 12:47:23
일본 ‘세븐&아이 홀딩스’ 창업자 이토 마사토시의 성공비결
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손님은 오지 않는 존재이고 거래처는 쉽게 거래에 응해주지 않으며 은행은 돈을 빌려주지 않는 곳이라고요.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시작하는 게 장사라는 것이죠.”일본 ‘세븐&아이 홀딩스’의 창업자인 이토 마사토시(81)는 일본 최대 유통그룹의 주인이 된 비결을 물을 때마다 모친에게서 얻은 교훈을 되풀이해 말하곤 한다. “손님은 오지 않는 존재라고 배웠기 때문에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를 감사하게 여겼으며 오늘은 1000만 명의 손님이 오지만 내일은 한 사람도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토 마사토시는 편의점 세븐일레븐 사업을 하다 1991년 미국에 있는 모회사 사우스랜드를 인수한 사건으로 세계 유통업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하지만 일본 내에선 그 이전부터도 슈퍼마켓 체인이라는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해 성공한 장사꾼으로 통했다. 2006년 포브스 집계 결과 36억 달러의 재산을 가져 일본에선 7위, 전 세계에선 185번째 부자다.이토 마사토시가 장사에 뛰어든 것은 미군의 공습으로 도쿄에 있던 어머니의 작은 양품점이 전소된 1945년이었다.그의 어머니는 평생 장사꾼이었다. 그러나 이토 마사토시가 훗날 자서전 ‘장사의 길’에서 “어머니의 가게 요카도(洋華堂)는 계란을 팔고는 남는 게 없어 계란 판을 고물상에 넘기고 푼돈을 쥐어야 할 만큼 수지가 맞지 않았다.”고 회고했을 정도로 별 이익을 내지 못했다.시대를 잘못 만난 탓도 있었다. 1904년 러일전쟁, 1923년 관동대지진, 1945년 대공습으로 20년에 한 번 꼴로 가게가 잿더미로 변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어머니가 그에게 남긴 최대 교훈은 “손님은 오지 않는 존재다.”라는 것과 “장사에는 신용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었다.어머니는 비록 재운(財運)이 부족했지만 장사에 임하는 태도만큼은 배울 점이 많아서 “무능하고 게을렀던 아버지와 싸운 직후 울다가도 손님이 가게에 들어서면 바로 웃는 낯으로 돌변하는 경이로운 존재.”로 아들의 기억에 남게 된다. 이토 마사토시가 자신에게 장사의 기본기를 가르쳐준 사람으로 어머니와 함께 꼽는 또 다른 한 사람은 형이다.형은 이토 마사토시에게 평생 부채의식을 갖게 한 존재였다.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요코하마전문학교를 나온 그와 달리, 아버지가 다르고 열여섯 살이나 위인 형은 평생을 숙부의 가게에서 견습사원으로 뼈 빠지게 일하다 가업이 본격적으로 흥하기 전에 천식으로 죽고 말았다. 그는 형에 대해 “얼굴을 자전거 바구니에 처박듯이 하고 비틀거리며 페달을 밟던 그때의 지친 모습이 가슴에 남아 지금껏 지워지지 않는다.”고 회고한다.또 이 기억이 ‘인생의 큰 짐’이 됐다고 말한다. 형이란 존재는 그에게 ‘형의 몫까지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고난 앞에서도 좌절이라는 ‘사치’를 부리지 못하게 한 에너지의 근원이기도 했다.이토 마사토시는 과감한 부동산 투자로 자본을 불리거나 은행 대출로 사업을 확장하는 모험가는 결코 아니었다. 그는 많은 ‘전쟁 세대’가 그렇듯 빚지는 것을 싫어하고 현금을 신봉했으며 가업인 유통업에서 외길을 걸었다. 그가 도약할 수 있었던 계기는 미국으로부터 슈퍼마켓 체인 운영 방식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이토 마사토시는 미국 유통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항상 주의 깊게 지켜봤으며, 미국에서 새롭고 경쟁력 있는 유통사업이 생기면 이를 재빨리 모방했다.가업인 식료품점은 그가 1960년대 미국 출장에서 돌아온 후 미국식 슈퍼 체인 ‘이토요카도’로 바뀌었고 1970년대에는 미국에서 라이선스를 얻어 편의점 체인 ‘세븐일레븐’과 레스토랑 체인 ‘데니즈’를 시작했다.그의 단순했던 사업이 오늘날 일본 최대 유통그룹으로 커진 배경에는 슈퍼마켓 체인과 편의점 사업을 일본에서 처음으로 시작했다는 선점 효과도 있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요인은 그가 유통의 성공 비결을 간파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특히 이토요카도 슈퍼체인의 재고 관리 방식은 지금도 유통계에서 교본으로 통하고 있다.이마트 사업을 확장해가고 있는 신세계의 정용진 부사장이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1990년대 후반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본의 대형마트인 이토요카도 점포 내부를 걸으면서 재고 관리 등을 철저하게 연구했다.”고 말한 것이 단적인 예다.이토 마사토시가 강조하는 것은 “아무리 좋은 상품이라도 재고가 남을 수밖에 없지만 남은 상품을 전부 팔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업 초기부터 재고를 최소화해야 유통업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믿어 반품을 자제하고 단계적으로 가격을 내려 최소 기간에 물건을 완전히 팔아치우는 데 주력했다.이토 마사토시식(式) 재고 관리에는 단품 관리라는 개념이 들어있다. 단품이란 코카콜라를 예로 들면 ‘코카콜라 라이트 250㎖ 캔’처럼 개별 아이템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토 마사토시는 “사업 초기부터 매일 모자라는 물건을 조사하고 하나가 팔리면 그날 도매상에 전화해 이를 보충하는 단품 관리의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고 말한다. 지금은 유통업계에 널리 알려진 개념이지만 그가 장사를 시작한 1940년대에는 선구적인 조치였다.이토요카도 슈퍼체인은 단품 관리의 원칙을 재고 관리에 적용해 재고를 거의 만들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속옷의 경우 가장 잘 팔리는 중간 사이즈는 놔두고 잘 안 팔리는 빅 사이즈와 스몰 사이즈를 중심으로 물건이 다 팔릴 때까지 가격을 계속 인하하는 것이다.대신 마진에서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이토 마사토시는 연필 한 다스, 즉 12자루를 팔면 2자루에서만 이문을 남기는 원칙을 어머니에게서 배웠으며, 이 원칙을 이토요카도 슈퍼체인에도 그대로 적용했다고 한다.이토요카도가 미국의 사우스랜드를 인수한 후 일본 세븐일레븐과 미국의 세븐일레븐의 비교에 나선 경영학자들과 유통사업자들이 내린 결론도 결국 일본 쪽이 더 경쟁력 있는 유통 구조를 갖췄다는 것이었다. 이토 마사토시가 이토요카도에서 다듬은 재고 관리와 단품 관리의 원칙은 모든 유통사업에 적용되는 성공 비결이었던 셈이다.이토 마사토시가 명예회장으로 물러난 후 그룹의 운영은 전문 경영인 스즈키 도시후미 회장이 맡고 있다. 스즈키 회장은 지난 해 개별 사업체로 있던 이토요카도, 세븐일레븐, 데니즈를 ‘세븐&아이 홀딩스’로 통합했다.작년 말에는 세이부백화점과 소고백화점을 거느린 밀레니엄홀딩스도 인수해 일본에서 가장 큰 유통그룹을 만들었다. 세븐&아이 홀딩스 그룹은 현재 1만5000여 개의 세븐일레븐 편의점, 이토요카도와 요쿠베니마루 등 슈퍼마켓, 세이부 소고 로빈슨 등 백화점 등 총 3만1000개의 매장을 거느리고 있다. 1990년대 말에는 매일 1000만 명의 손님이 드나들었으나 지금은 하루 2600만 명의 손님이 오가고 연간 8조 엔의 매출을 올린다. 이토 마사토시는 부동산 투자의 매력을 믿지 않았지만 그가 은퇴한 지금은 몰&SC개발 등 부동산 개발 회사와 세븐뱅크 등 금융 업체도 그룹 휘하에 두고 있다.이토 마사토시는 장사에서 성공한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인간으로서의 기본을 매일 매일 반복해 왔을 뿐.”이라는 식의 현자(賢子)같은 답안을 내밀었다. “중요한 것은 손님과 거래처를 중시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 것인데 장사의 비결이라기보다는 인간으로서의 도리가 아니겠느냐.”는 것이다.그는 또 “성공의 비결은 사람을 얼마나 좋아하는가에 달렸다.”며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우는 모습, 웃는 모습, 화내는 모습, 기뻐하는 모습 등등 인간의 모든 것을 바라보고 관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반쯤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특히 “나 자신도 무엇이 잘 팔릴지 판단이 잘 서지 않을 때면 거리에 나가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이 무엇에 관심을 보이는지 관찰했다.”고 회고했다.덕분에 일본 세븐일레븐은 식품에만 주력했던 미국의 세븐일레븐과 달리 일본인들의 구미에 맞는 다양한 물건들을 갖추고 일본식 편의점의 원형을 창조했다. 편의점에서 잡지와 CD를 살 수 있고 라면을 끓여먹고 현금입출금기를 사용하는 것은 미국 세븐일레븐에는 없던 개념이다. 삼각 김밥도 일본 세븐일레븐이 개발한 히트 상품이다.이토 마사토시의 성공 비결에 하나를 덧붙이자면 ‘늘 깨어있는 자세’를 들 수 있다. 그는 어머니의 양품점이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되는 것을 목격했으며, 성공한 후에도 “사회 전체가 평화롭게 안정되어 있을 때나 모두가 들떠 있을 때야말로 다음에 닥쳐올 파도를 염려하며 진지하게 생활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