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 리모델링도 유행을 탄다. 특히 실내를 고치는 리모델링은 사회 분위기 및 수요자 욕구에 따라 변화의 흐름이 주기적으로 일어난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분위기가 다르듯 개인 취향에 따라 리모델링 스타일이 결정되지만 감각 있는 집주인들은 유행에 맞춰 자신만의 색깔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또 디자이너들은 시대를 한발 앞서가며 리모델링 스타일을 창조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주도해 온 스타일은 몇 가지로 구분된다.영국 빅토리아풍의 실내장식 기법을 재현한 클래식 스타일, 특별한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보다는 비례와 조형성을 강조하고 곡선보다 직선의 정리된 듯한 무늬를 앞세우는 모던 스타일, 집안의 전체적인 색조를 파스텔 톤으로 꾸며 화사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로맨틱 스타일, 여백의 미학을 넘어 절제되고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주는 젠(禪) 스타일, 미국 애플사의 누드 컴퓨터가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이후 실내장식에 감성적인 측면을 강조한 누드 스타일, 고가구나 오래된 소품을 활용해 분위기를 연출하는 앤티크(Antique) 스타일. 이런 분위기의 리모델링 스타일은 유행 따라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하지만 리모델링 스타일에도 귀착점이 있다. 바로 자연을 닮으려는 ‘자연주의’ 스타일이다. 상업주의가 발달하고 도시화가 급속해질수록 자연주의 스타일이 각광받고 있는데 국내에도 자연주의 스타일이 수요자들의 관심권으로 접어들어가고 있다. 한때 유행했던 내추럴 스타일이 자연의 일부를 실내로 끌어들인 수준이었다면 자연주의 스타일은 자연과의 동화(同化)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구별된다.자연주의로 집을 고치는 리모델링 컨셉트는 ‘집의 기능=편안한 휴식’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눈(視) 코(嗅) 귀(聽) 혀(味) 피부(觸) 등 이른바 오감이 자극받지 않아야 집안에서 편안한 휴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자연 원리대로 집을 고치고 꾸민다는 게 자연주의 리모델링의 핵심이다. 오감이 자극받으면 감각기관은 두뇌에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 편안함에서 멀어지기 때문이다. 자연주의 기본개념을 이해하면 집 형태나 구조에 구애받지 않고 효과적으로 리모델링할 수 있다.아파트라면 바닥을 민속 한지로 바꿔주면 장마철에도 눅눅해지지 않고 습한 날씨에도 끈적거림을 피할 수 있다. 특히 집안에 나이 많은 분이나 아픈 사람에게는 습기가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습기에 강한 민속 한지로 교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민속 한지를 까는 작업은 쉽지 않기 때문에 전문 업체에 맡겨야 제 기능을 할 수 있다.원목이나 온돌마루도 습기에 강한 소재로 꼽힌다. 시멘트를 많이 사용하는 아파트에는 시멘트에서 장기간 나오는 유해 성분을 중화하기 위해 벽지를 떼어 내고 천연 페인트로 칠하는 것도 자연주의 리모델링의 한 방법이다. 발코니나 실내 여유 공간에 작더라도 미니 정원을 조성하면 자연을 감상하는 시각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자연주의에 적합한 색상은 무채색 베이지 미색 등이다. 이런 색상으로 집안을 통일해 놓으면 가구나 소품의 색상을 크게 고려하지 않아도 서로 잘 어울린다.전원주택을 자연주의 원칙에 맞춰 리모델링할 때도 편안한 기능에 신경 써야 한다. 예컨대 바닥 난방을 하는 집이라면 벽난로를 설치할 필요가 없다. 다만 장식 벽난로를 설치하면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효과는 있다. 아파트처럼 작은 방이 많은 전원주택이라면 벽을 터서 공간을 넓히는 것이 자연스럽다. 대신 화장실 딸린 손님방을 잘 꾸며 놓으면 친구나 친지를 초대하기에 좋다. 한옥을 전원주택으로 활용하려면 방 하나를 통째로 욕실과 화장실로 고치고 마당에도 화장실을 두면 아이들이 밖에서 뛰놀다 사용하기에 편리하다.소품 처리에서도 자연주의 스타일을 적용할 수 있다. 닥나무라는 자연물에서 한지가 생산되듯이 마에서 뽑은 직물인 마직을 벽지로 활용하는 게 자연주의 소품 처리의 한 방법이다.또 천에다 자연스러운 문양을 프린트한 천 벽지를 포인트 벽지로 처리할 수 있다. 천 벽지를 쓰면 벽에다 별다른 장식을 하지 않아도 그림 몇 점을 거는 것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천 벽지는 유럽 자연주의 디자이너들이 최근 들어 즐겨 사용하는 소품으로 꼽힌다. 대나무도 자연주의 스타일의 집안 꾸미기에 등장한 주요 소재다. 대나무를 엮어서 블라인드나 액자로 활용하는 게 대표적이다. 대나무는 차분한 이미지 때문에 집안에 설치하면 편안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자연주의 스타일의 리모델링에서 부각되고 있는 조명 방식은 형광등보다 백열등이다. 형광등은 형광 물질로 빛을 내기 때문에 자연광의 느낌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백열등은 형광등보다는 따뜻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편안함을 추구하는 자연주의 리모델링에서 선호되는 조명 방식이다.백열등도 한지로 씌워주면 훨씬 자연스런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다만 백열등은 형광등에 비해 전기료가 많이 나오고 약간 어두운 편이어서 침실 등 조명 사용량이 적은 곳에 설치하는 게 바람직하다.리모델링을 뜻하는 영어 표현은 여러 가지다. 리뉴얼(Renewal), 리노베이션(Renovation), 리폼(Reform), 리허빌리테이션(Rehabilitation) 등이 우선 떠오른다. 단어마다 미묘한 차이가 느껴지지만 공통점도 하나 있다. ‘다시’라는 의미의 접두어(re)가 같다는 점이다. 다시 하면서 개악을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훨씬 강한 게 인지상정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리모델링을 통해 개선했다가는 나중에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리모델링 단계마다 챙겨야 할 일들이 있다.집을 새로 지을 때처럼 리모델링할 때도 밑그림이 필요하다. 밑그림은 설계로 표현된다. 설계는 리모델링 회사가 맡아서 할 일이지만 좋은 설계가 나오려면 집주인과 디자이너의 호흡이 맞아야 한다. 호흡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 먼저 집주인이 속속들이 집안 사정을 설명해야 한다. 가족 구성원의 출가, 귀가 시간에서부터 방을 어떻게 활용하고 싶은 지까지 가급적 집안 사정을 많이 얘기할수록 좋은 설계가 나올 확률이 높아진다. 약국이나 병원에서 아픈 증상을 많이 털어놓을수록 진단하기가 좋은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집주인의 설명이 끝나면 디자이너는 이런저런 식으로 바꿔보자고 제안할 것이다. 이때부터 양측의 적극적인 토론이 필요하다. 한 쪽의 의견으로만 쏠리면 리모델링 이후 만족도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양측의 조율 과정에서 의견 일치 정도가 높을수록 리모델링 효과는 배가된다.디자이너의 전문성도 필수적이지만 집주인도 지켜야 할 매너가 있다. 디자이너에게 누구네 집처럼, 또는 모델하우스처럼 고쳐달라고 주문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 그런 부탁이라면 굳이 디자이너를 찾을 이유도 없고 디자이너의 전문성이 뿌리내리기에도 요원하다. 일방적인 주문으로 이뤄지는 리모델링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말 그대로 모델하우스는 하나의 모델일 뿐이다. 모델에 잘 어울리는 옷이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바늘허리에 실을 묶어 쓸 수 없듯이 아무리 급하더라도 리모델링 업체에 공사를 맡길 때는 시간 여유를 넉넉히 줘야 한다. 적어도 공사에 들어가기까지 한 달 정도 여유를 줘야 한다. 일반적으로 공사를 준비하는데 여유가 많을수록 결과는 좋게 나오게 마련이다.예정 공사비가 높게 책정되는 것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저렴하다고 생각되는 공사비가 나온다면 짚고 넘어가야 한다. 낮은 공사비가 나오면 당장이야 좋겠지만 가격이 싼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질이 떨어지는 자재를 쓸 수도 있고 마무리가 깔끔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의심해봐야 한다.공사 중에는 현장을 방문해 설계대로 시공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게 좋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미리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본인이나 업체를 위해 바람직하다. 공사 후에 재시공을 요구하면 시간이나 비용 면에서 서로 부담이 된다.이사를 하지 않고 살면서 리모델링할 때는 가구 등 당장 쓰지 않는 짐을 포장 이사에 맡기는 것도 한 방법이다. 집이 비어 있으면 깔끔하게 공사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포장 이사에 맡기다 보면 쓸모없는 짐을 버리게 돼 리모델링 공사 후 더 산뜻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공사 후에는 어떤 자재가 어느 정도 사용됐는지 내역서를 받아두는 게 좋다. 나중에 다시 고칠 일이 생기면 같은 자재를 구하는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애프터서비스를 받을 때도 자료가 있으면 편리하다.자연주의 스타일로 집을 고칠 때 어울리는 색상을 찾으려면 유럽의 색상 표준으로 자리 잡은 내추럴 컬러 시스템(NCS:Natural Color System)을 참고할 만하다. NCS는 스웨덴의 연구팀들이 개발한 색상 체계로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미국의 미술 교육가인 먼셀(Munsell)이 분류한 색채 표시 방법과 구별된다.우선 NCS는 말 그대로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색채의 분류다. 때문에 자연에서 얻을 수 없는 색채라는 보라색은 NSC의 기본 색상에서 제외된다. NSC는 환경 오염을 유발하는 색깔을 만들어 내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화학적인 조합으로 생성되는 색상은 색채 분류에서 제외한다는 의미다. 또 NCS를 건축물에 적용할 때는 주변 자연환경과 조화를 우선시하고 있다. 예컨대 북위 72도에 위치한 노르웨이의 탄광 회사 기숙사에 어울리는 외장 색상을 선택할 때는 겨울철의 눈과 여름철의 시커먼 흙, 백야현상 등을 감안해 색채를 적용하기도 했다.NCS의 또 다른 특징은 심리적으로 안정된 색채의 분류다. NCS 개발에는 색채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심리학자 물리학자 건축가들이 참여했다. 개발 과정에서 심리학자들의 역할은 색채와 인간 심리의 상관관계를 분석, 불안정한 느낌을 주는 색상을 배제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NCS는 전반적으로 따뜻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평가다. 국내에서는 이화여대 색채디자인연구소가 NCS 적용방법을 적극 전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