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도 유행처럼 돌고 돈다

제가 망할 무렵의 정황을 보면 삼국 가운데 가장 부유하고 풍족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추정할 여러 가지 근거가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일화는 아무래도 거북 사건이다. 어느 날 궁중 땅 밑에서 나온 거북 등에‘백제는 둥근 달과 같고 신라는 초승달과 같다.’는 문구가 씌어 있었다니 그 상징성만큼이나 국력, 경제력에서 차이가 났던 듯하다.의자의 아버지인 무왕 부여장은 재위 42년 동안에 백제 국력을 크게 키운다. 걸핏하면 신라의 공격을 받아 땅과 백성을 빼앗기고 심지어 접경 전투에서 임금(성왕)마저 전사한 백제가 불과 삼사십년 만에 상황을 역전시켰으니 가히 기적이라 할만하다. 그러나 망조 또한 잠깐 사이에 찾아든다.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백제는 망하기 1, 2년 전부터 희한한 일들이 속출한다.‘왕은 궁인과 더불어 음황(淫荒), 탐락하고 음주를 그치지 않았다. 좌평 성충이 극간하자 왕이 노하여 옥에 가둬버렸다. 이런 연유로 더 이상 간하는 사람이 없어졌다. 서자 41명을 모두 좌평으로 삼고 식읍을 주었다. 큰 한재가 들어 국토가 적지(赤地)가 되었다. 많은 여우들이 궁중으로 몰려왔는데 흰여우 한 마리가 상좌평 책상에 올라가 앉았다. 개처럼 생긴 사슴이 사비하 언덕에서 궁성을 향해 짖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왕도의 많은 개들이 길에 모여 혹은 짖고 혹은 울다가 갑자기 흩어졌다. 한 귀신이 궁중에 들어와서 백제는 망한다, 백제는 망한다 하고는 곧 땅 속에 들어갔다.’ 그래서 귀신이 들어간 땅 밑을 파 보자 앞서 말한 거북이 나왔다는 것이다.사실(事實)보다는 비유와 은유를 즐겨 쓰는 역사 기록을 감안하더라도 괴변의 정도가 만만찮다. 한마디로 비상식적인 일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는 뜻이고, 그 기저엔 세상사 전체를 괴변으로 인식하는 민심의 동요가 있었다. 민심은 지배층의 생각과 태도가 상식을 벗어날 경우 급격히 이반한다. 백제의 경우 민심 이반의 발단은 지배층의 타락과 고위공직자 임명의 불합리성이었던 것 같다. 왕이 성충으로 대변되는 백성들의 충간을 듣지 않고 순전히 제멋대로 서자들을 41명이나 좌평(오늘날의 장관)에 임명해 버린 일이 망국으로 향한 시초라고 삼국사기는 말한다.역사도 유행처럼 돌고 돈다. 그래서 역사를 배우고 연구하는 것이다. 의자왕도 처음엔 해동증자라고 불릴 만큼 백성들의 신망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런 사람이 재위 20년 만에 700년 사직을 거덜 내고 치욕스러운 임금으로 역사에 이름을 올린다. 자신의 정치에 반대하는 민심에 대항해 오기 정치를 강행한 대가라고 보는 게 일반적인 정설이다.우리가 지금 같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된 건 불과 이삼십년 사이 일이다. 그야말로 사시사철 떡을 쪄먹고 온갖 사치와 향락, 호사를 누릴수 있는 세상이다. 그런데도 행복해 하는 사람은 적고 많은 국민들이 장래를 걱정하고 불안하게 여긴다. 그래서인지 뭔가를 이루려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서 점점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이삼십년 전만 해도 세상엔 의욕과 의지를 가진 이들이 넘쳐 났다. 그 의욕과 의지가 오늘과 같은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 풍토는 그런 의욕과 의지를 키우거나 유지하게 하지 못한다. 과거와 같은 열정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중국으로, 동남아로, 또 어떤 나라들로 떠난다. 이 몹쓸 풍토를 바로잡지 못하면 어떤 장관, 어떤 정권이라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백제 망국의 기록은 바로 이 점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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