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경 에이포 커뮤니케이션 대표의 인생이모작
이포 커뮤니케이션의 김우경 대표(46)는 ‘준비 안 된’ 창업자였다. MBC를 거쳐 SBS 보도국 카메라 기자로 일하던 김 대표는 1998년 늦가을 뜻하지 않은 일을 맞는다. 카메라 부서 분사로 11월말 자의반 타의반으로 회사를 떠나게 된 것. 그는 함께 퇴직한 동료 4명과 함께 서울 중구의 스카라 극장 뒤의 허름한 사무실을 빌렸다.“1년간은 퇴직금으로 버티면서 지낼 작정이었어요. 10년여 직장 생활하면서 바쁘게만 살아왔죠. 남의 얘기를 듣고 필름에 담는 일만 해 왔지, 정작 나 자신을 돌아볼 겨를은 없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누구인가, 무얼 가졌고, 무엇이 부족한가’ 등을 곰곰 생각했지요. 1종 운전면허를 활용해서 택시 운전사를 할 계획도 세웠죠.”그 1년 계획은 한 달 만에 어긋나 버렸다. 방송 카메라 기자 시절, 인연을 맺은 미국 CNBC 서울 특파원이 퇴사 소식을 듣고 일거리를 맡겨 왔기 때문. ‘방송국 출신의 감각 있는 카메라맨’인 데다 ‘영어를 할 줄 아는’ 김 대표는 외국 방송사로선 탐나는 일꾼이었다.“그런 수요가 있는 것도 몰랐던 저에게 CNBC가 사업 아이템을 알려준 셈이죠. 그때 촬영 편집을 맡았는데 CNBC 본사에서 한국지사의 보도 화면의 질이 높아졌다고 평가했습니다. ‘바로 이거로구나.’ 하는 생각에 창업을 결심했죠.”‘에이포 창업의 일등공신’인 CNBC의 서울 특파원은 해외에 에이포를 알릴 수 있는 길도 열어줬다. 김 대표는 함께 회사를 나온 후배 박정준 기획실장(40) 등 총 4명과 함께 회사를 차렸다. 퇴직금에서 5000만 원씩 총 2억 원을 출자했다. 프로덕션을 차리는 데는 촬영과 편집장비 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2억 원도 빠듯했다.“창업 후 1년간은 집에 돈을 한 푼도 가져갈 수 없다는 가정 아래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각오는 했지만 회사를 만들고 몇 달간 일거리 없이 지내는 일은 큰 고통이었다. 사업의 길은 역시 험난했다.“회사를 차리고 얼마 후 평창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기록 영상물 제작 입찰 공고가 났습니다. 응찰가를 얼마로 적을까 고민하다가 4명 모두가 자신이 생각하는 견적을 내 보기로 했죠. 비슷한 출신과 경력의 동업자 4명인 데도 최저 1800만 원에서 최고 7000만 원까지 무려 300%의 편차가 나더군요. 사실 잘 만들자면 억대 이상의 예산도 모자랄지 모릅니다. 따라서 영상물 제작에서 ‘가격 결정’은 용역자가 하는 게 아닙니다. 클라이언트의 사정에서 합리적인 예산 규모가 얼마인지를 알아내는 것이 핵심이죠. 우린 그 점에서 완전한 아마추어였던 겁니다.”하지만 김 대표는 응찰가로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실적이 없는 까닭에 응찰 자격 자체가 미달이란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업무의 프로페셔널도 사업에는 아마추어라는 현실을 깨달으며 반년을 지내고 나서야 회사 명의의 첫 세금 계산서를 끊었다. 김 대표는 얼마나 감격스러웠던지 금액(135만 원)과 고객사(고어텍스 코리아)명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그 후 시장 감각을 터득해 가면서 한국 화이자의 비아그라 마케팅 캠페인 등 규모 있는 프로젝트를 하나 둘 수주하면서 드디어 집에 ‘월급’을 가져갈 수 있게 됐다. 창업한 지 1년 남짓 되던 1999년 말 김 대표는 한국전력으로부터 1억 원에 가까운 대형 프로젝트를 따냈다.“당시 밀레니엄 버그 대책으로 공기업마다 나름의 사전 점검 프로그램에 부심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전력은 원자력 발전소 5곳을 연결해 정상 작동을 시연하는 5원 생방송 프로젝트를 추진했습니다. 난이도가 높은 작업이라 현직 공중파 방송 카메라맨 정도를 빼면 해낼 수 있는 전문 인력이 없었죠. 입찰공고가 났지만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유찰됐는데 우리 회사로 연락이 왔습니다.”당시 동원된 카메라만도 30대에 달했다. 워낙 치밀한 리허설로 시간 투입과 장비 대여료가 많이 들어 사업적으로는 이득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 경험이 좋은 포트폴리오가 됐고, 그 이후 웬만한 규모의 영상물 제작 용역 입찰에는 다 참여할 수 있는 실적을 갖추게 됐다.하지만 에이포는 지금도 입찰에 거의 참여하지 않는다. 대개가 외부 프리랜서를 싼 값에 동원해 비용을 최소화해야 밑지지 않는 용역들이기 때문이다.“새로운 것을 배워서 실력을 키우거나 차별화된 전문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프로젝트를 수주의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인건비를 쥐어짜는 식의 용역 프로젝트는 최대한 피하자는 게 기본 방침입니다.”그런 점에서 해외 프로젝트는 ‘블루오션’이다. 다국적 기업이 전 세계 지사들의 활동 내용을 영상물로 만드는 글로벌 영상물 제작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본사 제작팀이 직접 출장 와 촬영하자면 비용이 많이 든다. 하지만 에이포에 대행을 맡길 경우 비용이 크게 줄어든다. 반대로 에이포는 국내 프로젝트보다 3배 정도 높은 가격에 수주할 수 있다. 게다가 외국의 앞선 촬영 노하우를 배우는 기회까지 덤으로 얹혀진다. 현재 에이포의 전체 제작건수 중 해외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25~30%에 달한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카메라 전문가’라는 ‘희소한’ 재능 덕분이다. 특히 셸, BP, 엑손모빌 등 4대 석유 메이저의 국내 유조선 건조 관련 현장기록물 촬영은 에이포에서 독점하고 있다. 천문학적 투자비를 들여 석유를 시추하는 석유 메이저들은 모든 과정을 다큐멘터리 필름에 담아 석 달에 한번씩 DVD로 제작한 뒤 전 세계 다양한 투자자들에게 보고한다. 또 이를 기반으로 추가 투자를 끌어내기도 한다. 유조선 건조는 국내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한국에서는 1년 내내 무엇인가를 촬영하고 있는 셈. 지금도 삼성, 현대, 대우 등 조선 3사에서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으며 김 대표는 한 달에 두세 번씩 거제도 출장을 다녀온다.창업 이후 8년간 국내 기업용 영상 제작물 중 웬만한 건 다 해 본 김 대표지만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2002년 수행했던 ‘어메이징 레이스’ 한국편 촬영.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제조기로 불리는 제리 브룩하이머가 총감독하고 미국 CBS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60개 팀이 전 세계를 돌며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 프로그램이 한국에 촬영왔을 때 김 대표가 코디네이터를 맡았다. 36시간 동안의 촬영을 위해 넉 달 간 준비하고 50명의 인원이 한 달 간 호텔에 투숙하면서 70대의 렌터카를 썼을 정도의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김 대표는 이때 할리우드 제작 방식을 경험하고, 엄청난 예산과 인력을 운용하는 노하우, 지식재산권, 출연자들과의 법적 문제, 사고 발생에 대한 대책 등을 배울 기회를 얻었다. 관련 서류만도 A4용지로 라면박스 2개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이었다. 그때 배운 노하우는 지금도 각종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반면교사가 되고 있다. 2001년 12월 부산에서 있었던 월드컵 조 추첨 중남미용 방송 용역도 다국적 기업의 영상을 활용한 첨단 마케팅 기법을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 당시 마스타카드는 조 추첨이 있었던 벡스코(BEXCO) 옆에 가설 스튜디오를 만들어 축구 스타 펠레를 해설자로 내세운 조 추첨 해설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판으로 각각 40분짜리를 만들었는데 어떤 각도에서 찍든지 ‘마스타카드’ 로고가 화면상에 보이도록 짜여져 있습니다. 마스타카드는 이 방송을 위성으로 날려 원하는 방송사는 어디서나 무료로 받아 방영할 수 있도록 했죠.”영상 보도자료(VNR)가 일반화돼 있는 외국의 경우 기업 스폰서로 이런 질 높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제공하면 대부분 방영된다. 이런 프로그램은 기업 입장에서도 직접 광고보다 효과가 높기 때문에 갈수록 비중이 커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영상 중심의 멀티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이런 방식의 영상 뉴스 보도자료가 활성화할 것으로 김 대표는 전망하고 있다. 에이포는 지난 2001년 이후 나이키 등 다국적 기업들과 건당이 아닌 연간 VNR 용역 계약을 맺고 있다.연간 20억 원 매출의 에이포 커뮤니케이션은 최근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시작했다.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한 가수 비의 DVD 영상 화보집 ‘로드포레인(Road for Rain)’의 제작에 투자자의 하나로 참여한 것. 종합 콘텐츠 제작사로 변모하기 위한 첫걸음이다.하지만 김 대표는 에이포를 사업적으로 크게 키우는데 매달릴 생각은 없다. 어디까지나 ‘영상 콘텐츠 전문 업체로서의 발전’이 사업적 이윤보다 우선순위에 있다. ‘준비 안 된’ 창업으로 불모지에서 시작한 에이포가 업계 선두주자로 자리 잡은 이유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