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속의 ‘판타스틱 카’ 줄줄이 탄생
년대 TV 외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전격 제트작전’에서 양배추 머리를 한 데이비드 핫셀호프도 멋있었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키트(KITT)였다. ‘나이트 산업 2000’의 이니셜을 딴 키트는 인간에 가까운 인공지능과 방탄 차체에다 점프는 예사로 했고 극 후반부에는 로켓추진 시스템을 달아 시속 400km가 넘는 초고속 질주도 했다. 주인공(극중 이름은 마이클 나이트)이 손목시계에 대고 ‘키트 도와줘!’라고 외치면 어김없이 벽을 뚫고 나타나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줬다. 이미 20년 가까이 지난 작품이지만 지난해 영국 MTV의 설문조사에서 키트는 본드카와 배트카를 누르고 ‘극중 최고의 자동차’에 뽑혔다. 요즘의 자동차도 스스로 알아서 움직인다. 물론 사람과 대화하는 수준은 아니다. 그래도 자동차는 우리가 상상하기 힘들 만큼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엔진의 연료분사와 점화 시기를 전자제어하기 시작한 지는 이미 오래됐고 편안한 운전을 돕는 각종 자동 편의 장비가 속속 개발 중이다. 지금 우리 주변을 달리는 차들 중 상당수는 승객이 조작하지 않아도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머지않은 시기에 우리는 영화 속에서나 상상할 수 있었던 자동 운전 자동차를 타게 될지도 모른다. 요즘 무선 키와 메모리 기능이 달린 파워 시트 정도는 그리 낯선 장비가 아니다. 굳이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가까이만 가면 자동으로 잠금 해제하고 멀어지면 자동으로 잠근다. 키에 본인의 정보를 입력해 두면 시트와 핸들 위치, 사이드 미러 각도를 자동으로 세팅해 주는 시스템도 개발 중이다. 사람이 앉는 운전석은 단순히 좌석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안락하게 자세를 잡아줄 뿐 아니라 코너링 때는 좌우로 움직이지 않도록 운전자를 잘 붙잡아 주어야 한다. 메르세데스 벤츠가 선보이고 있는 멀티 컨투어 시트는 이런 점에서 특별하다. 시트 안쪽에 7개의 공기주머니가 설치돼 있고 여기에 공기를 넣고 빼 자세를 다잡아 준다. 코너링 때 원심력이 강하다고 판단되면 자동으로 코너 바깥쪽에 공기를 넣어 몸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막아준다. 엔진이나 변속기의 전자제어화는 이미 오래 전 상용화됐다. 연료 분사량이나 시기는 물론 밸브가 여닫히는 타이밍까지 조절할 수 있게 된 요즘 엔진 컨트롤 유닛(ECU)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특히 혼다가 80년대 말 선보인 가변식 밸브 타이밍 기구는 휘발유 엔진 성능 개선에 일조했고 요즘은 대부분의 자동차 메이커에서 사용될 만큼 보편화됐다. 덕분에 기존 엔진보다 성능을 높이면서도 연비를 개선했고 자동변속기 역시 더 이상 편안함을 위해 연비나 성능을 희생하지 않아도 될 수준이 됐다. 차의 안정 주행과 달리기 성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각종 주행 안정장치를 탄생시켰다. 코너를 돌 때 너무 빠른 속도를 유지하다 보면 차가 바깥으로 밀려나는 언더스티어 현상을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했을 것이다. 하지만 주행 안정장치 덕분에 위험한 사고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이들 시스템은 운전자가 핸들을 얼마나 돌렸는지 확인한 후 차가 그만큼 제대로 코너를 돌아가고 있는지 확인한다. 만약 바깥으로 밀려나는 언더스티어나 안쪽으로 말리는 오버스티어 현상이 일어난다면 즉시 브레이크를 작동한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않아도 상관없다. 만약 오른쪽 코너를 돌다가 급 코너가 나타났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운전자는 핸들을 더 오른쪽으로 꺾게 된다. 하지만 차가 따라가지 못하고 중앙선 밖으로 밀려난다면 자동으로 오른쪽 앞바퀴 브레이크만을 작동해 속도를 줄이면서 코너를 돌아나간다. ESP로 대표되는 이 같은 주행 안정장치는 벤츠, 아우디를 비롯해 대부분의 고급차에서 사용되고 있다. 한편 혼다가 레전드를 통해 선보인 SH-AWD는 독특한 네바퀴굴림 방식으로 코너를 빠져나간다. 브레이크를 사용하는 ESP와 달리 코너 바깥쪽 바퀴에 엔진의 힘을 많이 전달해 언더스티어를 줄이는 기술이다. 이 경우에는 속도를 줄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안전하고 빠른 코너링이 가능하다. 아무리 위험한 상황에서라도 침착하고 빠르게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세우면 사고를 미리 예방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운전 상황에서는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갑작스럽게 앞 차가 멈춰 서거나 야생동물이 튀어나올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벤츠 S클래스에 준비된 프리세이프 브레이크는 그릴 안에 설치된 레이더로 앞 차와의 거리를 측정하다가 갑자기 가까워지면 운전자에게 경고를 보내면서 브레이크를 약하게 작동한다. 미리 속도를 줄이는 만큼 사고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혼다와 닛산 등 그 밖의 메이커에서도 비슷한 장치를 개발 중이다. 이 레이더 기술은 크루즈 컨트롤에도 쓰여 단순히 속도 유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앞 차와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속도를 마음대로 조절한다. 직접 기계적으로 연결되지 않더라도 전기적으로 연결해 제어되는 시스템을 보통 바이 와이어(by-wire)라고 부른다. 기계적으로 연결된 경우는 세심한 제어를 운전자가 직접 해야 하지만 바이 와이어 시스템은 상당 부분이 전자제어가 가능하다. 액셀러레이터 페달과 연결돼 엔진 회전수를 결정하는 스로틀 밸브는 이미 바이 와이어가 일반화됐고 브레이크는 벤츠의 전자식 유압 브레이크인 ‘SBC’가 유명하다. 차의 방향을 바꾸는 스티어링 계통은 워낙 안전에 민감한 부분이다 보니 전자화가 뒤처져 있지만 최근 도요타가 새 시스템을 개발 중이라는 소문이다. 예를 들어 한쪽 바퀴만 빙판길에 올려진 상황에서 차를 출발시키면 한쪽으로 돌아버리게 마련. 하지만 앞으로 개발될 장치는 앞바퀴를 차가 스스로 좌우로 꺾으며 드라이버가 원하는 방향으로 차체를 움직인다.이미 상용화된 기술도 있다. BMW의 AFS(Active Front Steering)는 5시리즈와 3시리즈에 달려 있는데 스티어링 기어를 바꾸는 방식이라 완전한 의미의 바이 와이어는 아니다. ASF는 드라이버가 핸들을 똑같은 정도로 꺾어도 차의 속도에 따라 앞바퀴가 돌아가는 양이 달라지게 한다. 즉 낮은 속도에서는 조금만 핸들을 돌려도 차가 급선회하고 고속에서는 많이 돌려도 차는 조금씩만 움직인다.차의 달리기 성능과 승차감을 결정하는 것은 서스펜션의 몫. 전반적인 성능이 높아지면서 속도가 빨라진 만큼 안정된 달리기는 우선 요소가 되고 있다. 그렇다고 경주용 자동차처럼 단단하게 세팅하면 승차감이 나빠져 고객들의 불평불만이 쏟아진다. 하지만 BMW가 5시리즈에 쓰고 있는 다이렉트 드라이브는 독특한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 5시리즈 기본 서스펜션은 상당히 부드럽게 설계돼 있어 고속도로에서 안락한 승차감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 대개 코너링에서 휘청거리는데 이때 유압장치가 달린 스테빌라이저가 작동하면서 차의 기울어짐을 억제한다. 원심력으로 차의 기울어짐이 확인되면 양쪽 뒷 바퀴를 연결하고 있는 스테빌라이저를 반대 방향으로 비틀어 차를 평행으로 유지해 준다. 이들 전자제어 시스템은 에어로 다이내믹 분야에서도 진보를 가져왔다. 아우디 A8의 어댑티브 에어 서스펜션은 고속에서 차체를 낮추어 공기 저항을 줄인다. 한편 포르쉐 복스터와 아우디의 신형 TT는 일정 속도 이상에서 리어윙이 일어 높은 속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리프트 현상(차가 약간 떠올라 불안정해지기 쉽다)을 억제하는 기술을 선보인다. 물론 자동차의 지나친 전자제어화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손과 발끝으로 세심하게 조작하고 자신의 차가 거기에 응답할 때 얻을 수 있는 원초적인 즐거움이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 전자제어 시스템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안락한 운전을 제공한다. 더구나 굳이 수준 높은 운전 기술을 익히지 않고도 차를 빠르게 몰 수 있고 위험한 순간에는 도움의 손길이 되기도 한다. 전자제어 시스템과의 만남을 통해 자동차는 또다시 진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