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함 화장품의 선장 김영선 CEO
지함 화장품 김영선 사장(38)의 명함엔 두 가지 직함이 나란히 적혀 있다. 대표이사와 약사. 지금은 잘나가는 화장품 회사의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김 사장은 한때 약사를 꿈꾸는 약학도였다. 그녀는 화장품과 의약품의 중간 개념인 ‘코스메슈티컬’ 분야에서 톱 경영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지함 화장품을 통해 국내에 코스메슈티컬이라는 분야를 처음 소개한 데다 창업 6년 만에 회사를 100억 원 대 규모로 키웠기 때문이다.김 사장이 지금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에는 ‘상식의 틀을 깨는 도전과 굽히지 않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약대를 나와서 편안하게 약사를 하면 여자로선 최고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죠. 하지만 사회생활을 좀 해보고 싶어 뛰어든 영업일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처음엔 삼성신약 개발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어요. 학술 세미나에 나가거나 제품 홍보 등 ‘얌전한’ 일을 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실제로 맡은 일은 발품을 팔며 병원을 상대로 약을 파는 일이었어요. 힘들었기 때문에 중도에 포기하고 약국에 약사로 취직했죠. 하지만 좁은 약국에서 매일을 견뎌야 하는 게 영업보다 더 힘들더군요. 그래서 다시 한국존슨앤존슨의 마케팅부서에 취직했죠.”제약회사 근무 이력과 약사로서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15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하게 된 외국 회사의 마케팅 부서 일은 남달랐다. 여태껏 ‘영업일은 고되고 힘든 것’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외국 회사에서의 영업은 가장 대접받는 일이었던 것. 영업은 ‘메이크 머니(Make money)’ 즉, 돈을 벌기 위한 마케팅의 중심이 놓여 있었다. 영업에 대한 인식이 바뀌자 행동부터 달라졌다.“외국 회사에서 영업을 하려면 ‘스페셜 리스트’가 되어야 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병원과 약국에 화장품을 파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때부터 ‘스킨케어’에 대한 전문가가 되려고 노력했죠. 의사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3일 밤낮을 공부에만 투자한 적도 있었어요. 이런 방식으로 1년간 300개의 개인병원과 종합병원을 모두 섭렵한 그녀는 두 번째 방문을 시작했다. 두 번째부터는 안면을 익힌 상태였기 때문에 영업이 보다 활기를 띠었다. 영업 일선에서 잇따라 전공을 세우고 있을 때 마침 그녀에게 또 한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2000년 의약분업이 실시되면서 피부과 의원들은 화장품 등 자체 개발한 제품을 판매할 수 없게 되면서 김 사장 같은 마케팅 전문가들에 대한 수요가 커진 것. 실제로 미국이나 유럽에선 전문의가 만든 화장품인 ‘코스메슈티컬’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이때 이지함피부과에서 제안이 들어왔다. “시장 변화를 감지하고 회사를 그만두려고 하던 참에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이지함 피부과의 이유득 지혜구 함익병 3명의 원장이 이지함 화장품 회사를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 해 와 그 자리에서 수락했습니다. 블루오션을 찾았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어요. 당시엔 국내서도 고기능성 화장품들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때였으니 분명히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녀의 ‘막무가내 도전정신’은 이지함 화장품 설립에 일등공신으로 작용했다. 명색이 화장품 회사였지만 처음엔 병원 한 귀퉁이 작은방에서 노트북 하나와 직원 2명으로 시작했다. 그러던 중 그해 7월 ㈜이지함의 법인 설립을 마무리한 뒤 곧바로 제품 생산에 나섰다. 첫 제품은 미백크림.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시작한 사업은 기존 인프라가 있었기 때문인지 순항을 거듭했어요. 제품 생산은 한국콜마에 맡기고 본사는 개발과 디자인, 판매만 담당했는데 초기에 ‘빅히트’를 쳤지요. 1년 판매 목표치를 3개월 만에 몽땅 팔았죠. 그야말로 ‘대박’이었습니다. 2탄은 여드름 환자들은 지성피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유분이 많은 기존의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면 부작용이 난다는 사람이 많았어요. 여기에 착안해 모공을 막지 않고 유분을 줄여 흡수가 빠른 제품을 개발했죠. 이 제품은 스테디셀러가 되고 있습니다. 현재 중장년층 여성을 위한 주름 재생 제품을 개발 중이며 8월중 출시를 앞두고 있습니다.”순풍에 돛단 듯 빠른 성장세를 거듭한 이지함 화장품은 2000년 9억 원, 2003년 35억 원, 2004년 4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올해 매출 목표는 100억 원이며 1~2년 내에 증시에 상장할 목표를 세웠다. 국내 최초로 화장품과 의약품의 중간 개념인 ‘코스메슈티컬’의 국내 시장을 개척한 김 사장은 보다 나은 품질을 위해 ‘이지함 피부과학 연구소’를 설립하고 연매출의 6% 이상을 연구개발비로 집중 투자하고 있다. 이를 위해 대구한의대 화장품 약리학과와의 산학협동을 체결했다. 지난해 12월에는 녹차 폴리페놀 추출 기술 및 무방부제 기술 등 7개의 특허출원 기술을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신기술벤처기업으로 선정됐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4월 21일 ‘과학의 날’을 맞아 ‘과학기술유공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