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은 트렌드보다 사람 좇는 마라토너

홍성철 베스트홈·서울 에프앤비 대표의 인생 이모작

려한 언변, 뛰어난 순발력, 엔터테이너로서의 기질…. 이런 재주가 있어야 경영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세상엔 도널드 트럼트 같은 사업가도 있고 샘 월튼 같은 기업인도 있다. ‘트럼프 월드’로 유명한 미국의 부동산 개발업자 트럼프는 역발상의 아이디어로, 호사스러운 생활로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뉴스 메이커다. 실제로는 빈털터리라는 호사가들의 뒷말에도 불구하고 그가 대중에게 성공한 사업가이면서 부자로 각인되는데 성공한 것은 사실이다. 트럼프는 그런 점에서 마케팅과 이미지 메이킹의 귀재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좋은 경영자나 건전한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 그를 연구하고 따라가라고 말하기는 힘들다.샘 월튼은 세계 최고의 소매 체인 월마트 왕국을 이뤘지만 살아생전에 ‘뉴스 메이커’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성공 비결은 ‘전략’이라는 말조차 무색할 정도로 단순했다. ‘소비자들에게 언제나 최저 가격으로 공급한다(Everyday Low Price)’. 그의 ‘교과서적인 생활’은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서서히 성장해 가다가 어느 날 월마트의 존재감이 커지고 나서야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홍성철 ㈜베스트홈 및 서울에프앤비 대표(53)는 유행에 뒤졌지만 기초 실력이 튼튼한 오너 비즈니스맨이다. 인터뷰 자리에 앉으면서 홍 대표가 건넨 첫 마디는 “드라마틱한 성공 스토리가 없는데…” 였다. 전략을 물어보면 “좋은 제품, 정성 어린 서비스, 성실한 고객 마인드” 같은 따분한 대답만 나온다. 주어진 상황에서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그의 철저함과 인내는 고전적이지만, 안정된 성공 전략이다. 물론 순발력 있게 트렌드를 타는 게 사업 성공의 대표적 요인이지만 세상에 정답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홍 대표는 자신의 스타일대로 자연스레 오너 경영자로 변신했다. 그는 ‘마라톤’ 스타일의 경영자다. 트렌드를 잘 좇는 경영이 단기 성장에 능한 단거리 달리기에 가깝다면 홍 대표는 막판 스퍼트로 가속도를 낼 수 있도록 기초 체력을 잘 안배하는 마라토너다. 그는 상사맨 출신이다. 1978년 당시 최고 직장이던 현대종합상사에 입사, 기획부를 거쳐 자금부에 배치됐다. 홍 대표는 내심 해외 세일즈 업무를 해보고 싶었다. 그 무렵 사내 공고가 한 장 붙었다. 1년 후부터 직원 대상 영어시험을 실시한다는 것. 홍 대표는 “저 시험에서 1등 하면 해외로 보내주겠구나” 싶었다. 시험에서 1등을 차지해 해외로 간다는 그의 전략은 원칙주의자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그는 그날로 영어 학원에 등록했다. 그리고 1년 후 진짜 1등을 했다. 뭐든지 정공법으로 끝장을 보는 그의 스타일은 그의 샐러리맨 시절 최대 경쟁력이었고, 마흔 아홉에 오너 비즈니스로서 새 출발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기도 했다. ‘영어 시험 1등’ 성적은 뜻밖에 일본 지사 발령으로 이어졌다. 당시 ‘뜨는 해, 일본의 시대’였다. ‘일본 지사를 강화하라’는 고(故)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지시에 따라 도쿄와 오사카 두 곳이던 지사를 센다이 규슈 나고야 니가타 등으로 늘리던 시기였다. ‘영어 1등’ 홍 대표도 그 와중에 일본에 상륙했다. ‘영어를 잘 하면 일어도 금세 배우지 않겠느냐’는 게 발령 이유였다. 현대 스타일의 좀 거친 인사였지만 그리 틀린 것도 아니었다. 일어 독해조차 제대로 못하는 상태로 일본으로 건너간 홍 대표는 메모장을 가지고 다니며 닥치는 대로 모르는 단어와 문장을 적고 외웠다. 그렇게 4년간 적은 것이 100쪽이 넘는 두툼한 노트로 8권이나 됐다. 그가 지독하게 일어에 매달린 이유는 한 가지였다. 빨리 일본인 인맥을 만들어 물건을 팔아야 한다는 목표 때문이었다. 그의 이런 정공법 ‘세일즈 노력’은 일본인 공산당원 중계 무역상에까지 힘을 미쳤다. 당시 그 일본인은 공산당원이라는 사상적 기반을 비즈니스와 결합해 폴란드 체코 등 동구권, 쿠바 등 남미의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무역을 중계하고 있었다. 홍 대표는 그를 통해 쿠바에 총 150만 달러어치의 군복 수출 계약을 따냈다. 85년 당시로선 꽤 많은 물량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제조업 경쟁력이 그다지 높지 않은 상황이어서 그는 어렵사리 수출 오더를 따놓고도 클레임에 걸려 뒤치다꺼리 하는 일이 많았다. 그가 일본 생활에서 배운 것은 ‘인간에 대한 신뢰를 쌓는 법과 일하는 방식’이었다. 한번 관계를 맺으면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한 꾸준한 신뢰 관계를 쌓아가는 사람 관리법은 일본 지사 시절 몸에 익힌 노하우다. 모든 일을 판단할 때 ‘예측 가능성’을 중시하는 일본식 일 처리 방식의 장단점도 배웠다. ‘속도’의 중요성과 ‘변화에 대한 유연한 대처’가 화두로 떠오른 21세기에는 이런 방식이 오히려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위기에 강하고 저력이 생기기 때문에 길게 보면 승자로 남을 확률도 높다. 4년 만인 1988년 귀국한 홍 대표에게 한국의 직장 현실은 실망스러웠다. 좋아하던 선후배들은 퇴사하고 남은 직원들의 사기도 저하돼 있었다. 무엇보다도 막강한 일본 샐러리맨의 위상에 비해 한국 직장인은 ‘소모품’처럼 초라해 보였다. 의욕을 상실한 홍 대표는 1989년 11년의 상사맨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동양매직 부장으로 옮긴다. 기획, 재무, 국내외 세일즈에 해외지사 경험까지 두루 거친 홍 대표는 동양매직에서 국내 영업 및 마케팅 경험을 본격적으로 쌓는다. 하지만 늘 사내 정치에는 별 관심이 없던 그는 1995년 ‘알 수 없는 이유’로 자회사인 ‘베스트홈’으로 인사 발령을 받는다. 베스트홈은 동양매직이 가스오븐레인지 판촉을 위해 오븐용 요리 개발을 목적으로 설립된 요리학원 운영 업체였다. 사실상 외곽으로 ‘아웃’ 되는 신호였다. 하지만 매사는 생각하기 나름. ‘국보급 요리실력’을 가진 모친 밑에서 자란 미식가 홍 대표에게 베스트홈은 도전해 볼만한 대상이었다. 늘 새로운 일이 주어지면 도전해 끝장을 보고야 마는 그의 성향도 한몫했다. 그는 외곽 사업이었던 베스트홈 총괄이사로 부임해 9개이던 요리학원을 19개로 늘리는 추진력을 과시한다. 베스트홈 사업이 탄력을 더해가자 본사에서도 요리 전문지 창간을 추진했다. 1996년 12월 고급 요리전문지 쿠켄을 창간, 잡지 사업을 덧붙였다. 하지만 이듬해 속칭 ‘IMF 사태’로 불리는 외환위기가 불어 닥치자 본사의 지원이 뚝 끊겼다. 주업종도 아닌 데다 돈만 투자되는 사업이 달가울 리 없었다. 1998년 ㈜베스트홈 대표이사로 취임한 홍 대표는 그때부터 사실상 ‘사장’처럼 회사를 꾸려갔다. 본사에서의 자금 지원도 사실상 끊긴 상태여서 필요한 자금은 알아서 조달해야 했다. 상사맨 시절 일본에서 맺은 인맥이 이때도 힘을 발휘했다. 당시 외부 투자자 중에는 일본 친구들도 포함돼 있었다. 2002년 들어 동양매직은 자회사인 베스트홈을 공식적으로 접기로 결정했다. 자체 수익 사업이 아니라 가전제품 마케팅 지원 형식으로 운영되다 보니 만성 적자였다. 당시 부채만 5억 원. 회사 청산 비용으로 총 8억여 원이 드는 상황이었다. IMF 고비까지 넘기며 7년여 베스트홈을 꾸려가던 홍 대표는 안타까웠다. 회사를 청산하느니 인수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그는 본사에서 5억 원 부채를 갚아주는 조건으로 베스트홈의 주인이 된다. 그리고 이어 교보문고의 부동산 관리 자회사인 교보 리얼코에서 운영하던 종로 교보빌딩 2층의 프랑스 식당 라브리와 1층의 비즈니스 홀, 2개 레스토랑을 인수했다. 인수 비용은 총 7억 원. 이 가운데 3억 원은 홍 대표가 자기자본으로, 나머지 4억 원은 투자를 유치했다. 그 후 인테리어와 공사 등에 소요된 3억 원의 추가 비용은 은행 차입으로 해결했다. “집 담보를 넣어야 비로소 내 사업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는 홍 대표의 지론대로라면 이때부터가 진정한 오너 최고경영자(CEO)가 된 시점인 된 셈이다. 그는 만성 적자이던 두 개 레스토랑의 손익을 지난해부터 흑자로 돌려놓았다. ‘강북 최고의 프랑스 식당’이란 명성의 ‘라브리’에는 홍 대표의 와인 실력을 활용해 와인셀러를 갖추고 와인바의 성격을 가미했다. 또 단골고객의 예약에 따라 맞춤 메뉴를 제공하는 등 최고급 레스토랑(fine restaurant)이라는 컨셉트 걸맞은 서비스에 주력했다. 이런 ‘교과서적 운영’만으로도 운영 실적이 뚜렷하게 좋아지고 있다. ‘비즈니스 홀’이라는 간판을 내건 모호한 컨셉트의 1층 식당은 ‘캐주얼 레스토랑’으로 리뉴얼했다. 종로1가 1번지라는 행정구역상 주소에 식당 1번가라는 뜻까지 겸비해 ‘애비뉴 원(Avenue 1)’으로 이름 붙였다. 차 한 잔에서 스파게티, 볶음밥 등 캐주얼한 식사를 할 수 있는 이 식당은 늘 만원. 덕분에 라브리와 애비뉴 원, 두 개 식당 사업을 벌이는 서울에프앤비는 지난해부터 흑자로 전환됐다. 현재 홍 대표는 오프라인 월간잡지 쿠켄을 발행하는 ㈜베스트홈과 두개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서울에프앤비 2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양사의 매출은 각각 30억 원 정도를 기록했다.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월간 쿠켄도 지난해부터 흑자로 돌아섰다. ‘광고비’ 의존도를 낮추고 10년여 동안 쌓인 고급 콘텐츠를 판매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수지가 좋아지고 있는 것.그는 지금까지 요리 및 식당과 관련된 정공법의 기초 실력을 쌓은 덕에 비즈니스 기회가 많이 찾아온다고 말한다. 트렌드에만 편승하는 기업들이 넘치다 보니 진짜 실력을 갖추면 그것으로도 경쟁력이 된다는 얘기다. 홍 대표는 검토 중인 신사업이 있지만 신중하게 결정할 방침이라고 강조한다. 그의 말대로 ‘비즈니스는 사람을 얻는 장기전’이기 때문이다. 홍 대표는 ‘돈 버는 사업’을 하려면 3가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좋은 시장, 물건, 직원이다. 이 가운데 한 가지만 있으면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궤도에 올려 놓고 돈을 벌려면 결국은 3가지를 모두 가져야 가능하다. 예를 들어 그가 광화문 교보빌딩 1층의 ‘애비뉴 원’과 ‘라브리’를 인수한 것은 ‘좋은 시장’이 보장된 비즈니스였기 때문이다. 종로구 종로1가 1번지에서 레스토랑이 안 된다면 한국 어디에서 되겠느냐는 소리다. 좋은 시장이 있으면 그것을 앞세워 좋은 사람을 데려올 수 있고, 그 인재가 좋은 물건을 만든다. 거꾸로 좋은 사람이 있으면 좋은 물건을 만들어 좋은 시장으로 진출하는 것도 가능하다. 처음부터 셋 다 갖고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셋 중 한 가지만 있다면 그것을 지렛대로 나머지 2가지 요소를 하나씩 만들면 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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