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조 효성라이프스타일PU 사장의 ‘인생부자론’
등학교 때 학교 잡지에 시나 에세이를 기고하면서 시인의 꿈을 키워 왔습니다. 하지만 아버님은 시인이 되려면 국내에서 50위 안에 들어갈 정도는 돼야 하는데 저에게 실력이 안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경영학과에 입학했고 기업인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마케팅의 귀재’로 불리며 수많은 히트 상품을 제조한 박영조 효성 라이프스타일PU(퍼포먼스유니트) 사장에게 시인의 꿈을 접게 한 아버지는 ‘청록파’ 시인으로 잘 알려진 고 박두진 시인이다. 고희 기념 인터뷰 때 “이제야 시를 알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높은 기준을 가진 한국 문단의 거목을 만족시킬만한 시를 쓰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기업인의 길을 가는데 부친이 물려준 재능과 사상은 큰 도움이 됐다. 그의 부친은 자연을 무대로 인간의 염원을 노래한 청록파 시인이었지만 기업을 무척 사랑한 시장주의자였다고 한다.“아버님은 시인이 가난한 것은 당연하지만 기업인은 돈을 벌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아버님은 성경 마태복음에 나오는 ‘달란트(유대인 화폐 단위)의 비유’를 들려주신 적이 있습니다. 주인이 하인에게 돈을 맡기고 갔는데 한 하인은 돈을 다 써버렸고 다른 하인은 땅에 묻어두었던 반면 또 다른 하인은 상업을 해서 돈을 불려놓았습니다. 주인이 돌아온 후 돈을 다 써버린 하인은 말할 것 없고 땅에 묻어 두었던 하인에게도 ‘미련하고 게으른 종’이라며 크게 야단쳤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 이 이야기를 듣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기독교는 자기가 받은 재능이나 능력, 재물을 활용해 이윤을 창출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었던 것입니다.”경쟁과 건전한 부의 창출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함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시인의 유전인자도 비즈니스의 자산이 됐다. “시에 익숙해 있고 시를 쓰는 훈련을 해봤던 경험은 광고 카피를 잡는 데 큰 도움을 줬습니다. 시는 곧 압축이고 광고 카피도 여러 정보를 하나로 압축한다는 면에서 같은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제품의 컨셉트나 특징을 잡아내는데 시를 써 본 경험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또 문학적 상상력도 마케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그가 만든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청바지 브랜드인 ‘게스(guess)’다. “일경통상이란 회사에 근무하고 있을 때 ‘리’ ‘리바이스’ 같은 브랜드가 청바지 시장을 주도하고 있었는데 당시 게스란 브랜드를 수입해 팔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청바지 가격이 3만 원이었는데 게스를 8만 원에 팔기로 했습니다. 대신 실용적인 관점이 아니라 ‘패션 청바지’란 개념을 국내에 처음 도입해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쳤습니다. 지금은 거의 대부분 브랜드들이 패션 청바지란 컨셉트를 사용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매우 신선한 시도였습니다.”박 사장은 패션이란 브랜드 컨셉트를 기반으로 파격적인 광고 실험도 했다. 두 개의 패션 잡지에 무려 14페이지짜리 광고를 낸 것이다. 또 압구정동 현대백화점에 초호화 직영 매장을 설립,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어 결국 게스는 큰 성공을 거뒀다.그는 어린이용 완구 ‘레고’를 국내에서 히트시킨 주역이었다. 또 일경물산에 근무하면서 폴로와 버거킹을 성공시켰다. 1996년에는 유로통상의 사장으로 취임, 몽블랑 만년필과 버버리, 라프레리 화장품 등 명품 판매를 담당하며 브랜드 가치 높이기에 성공했다. 1998년에는 개인 사업을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스위스식품을 인수, 베이커리 브랜드의 연매출액을 30억 원에서 180억 원으로 6배나 높여 롯데에 되팔기도 했다. 이후 소비재 사업을 확대하고 있는 효성이 그를 스카우트해 건강식품 사업부를 맡겼다.“스피루리나란 건강식품을 판매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클로렐라가 주도해 왔던 시장에서 나름대로 입지를 잡은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건강식품은 제품의 우월성을 알리기 어렵고 치료제처럼 효과가 금방 나오지 않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소비자의 로열티를 높이는 데 주력할 계획입니다.”박 사장은 부친으로부터 평생 삶의 밑천이 되는 인생관을 물려받았다.“제가 결혼 하고 아이를 낳은 후 아버님께 우리 집에도 가훈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가훈을 하나 정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내가 무슨 가훈을 남기겠느냐. 그저 성경 말씀대로 살아라’라고 말하셨습니다. 사실 가장 어려운 것이 성경 말씀대로 사는 일입니다. 평생 실천해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아버님이 남겨주신 것이죠.” 그래서 그는 꾸준히 사회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백혈병 어린이와 소년소녀 가장을 돕는 일을 지속하고 있으며 스피루리나 매출액 2%를 소아암 환자를 위해 기부하고 있다. 또 자살 예방 및 고민 상담을 해주는 무료 조직인 ‘생명의 전화’를 지원하기 위해 거래 약국에 모금함을 설치하기도 했다. 박 사장은 매주 목요일 저녁에는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아카펠라 노래봉사도 하고 있다.“지난 98년부터 매주 목요일 노래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매주 암병동이나 소아과병동 등을 다니다보면 운명하는 분들도 많이 보게 됩니다. 편안하게 생을 마감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노래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부에 대한 확고한 소신을 갖고 있는 그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도 또렷하게 견해를 밝혔다. “기업은 사회에 공헌해야 합니다. 그런데 기업의 가장 중요한 사회 공헌은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직원을 고용해 일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기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면 직접 고용한 인원만 먹고 사는게 아니라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기업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표현에 대해 거북하게 생각합니다. 환원이란 말은 뭔가 잘못 돈을 벌어서 사회에 돌려준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