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의 폐허에서 피어난 가슴시린 불멸의 사랑

뮤지컬 ‘미스 사이공’ 7월 7일 한국 첫 무대

계 4대 뮤지컬에서 다른 세 작품이 주로 판타지나 아득한 추억의 예스러운 맛을 추구한 반면 ‘미스 사이공’은 가슴 시릴 정도로 처절한 전쟁의 아픔과 시대정신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소재의 현실성에서 여타 작품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특성을 지녔다.”뮤지컬 비평가인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의 지적이다. 뮤지컬 ‘미스 사이공’은 막도 올라가기 전부터 팬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아직 공연되지 않은 세계 4대 뮤지컬의 마지막 작품, 세 번의 토니상과 30개의 주요 극장상 수상, 미국 브로드웨이 개막 전 3700만 달러어치의 예약 티켓이 팔려나가 기네스북에 등재…. 다양하고 흥미로운 기록을 가진 뮤지컬 ‘미스 사이공’의 힘은 관객의 눈을 ‘토끼 눈’으로 만들어버리는 절절한 러브 스토리에서 나온다.미스 사이공은 출발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한 장의 흑백 사진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하게 된 것. 사진은 1985년 베트남 호찌민 공항에서 생이별하는 베트남 여인과 혼혈소녀의 모습을 담고 있다. ‘레 미제라블’의 영국 시장 진입을 성공시킨 뒤 후속 작품을 모색하던 작곡가 클로드 미셸 숀버그와 작사가 알랭 부빌은 이 사진을 보고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한다. 결국 이들은 ‘나비 부인’을 베트남 전에 맞춰 각색하자는 작품 제작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게 된다. 뮤지컬 미스 사이공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실제 사진 속 인물들의 사연은 기구했다. 월남전 당시 한 베트남 여인이 미군 파일럿과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전쟁의 혼란 속에 헤어져 서로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세월을 보낸다. 하지만 갖은 노력 끝에 여인은 마침내 옛 연인에게 연락을 한다. 그녀가 끝내 포기하지 않고 사랑했던 미군을 찾았던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바로 미군 병사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 때문. 혼혈의 아픔을 안고 사는 딸과 함께 여인은 베트남을 떠나고 싶었다. 그런데 문제가 쉽지 않았다.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미군 병사는 이미 다른 미국 여인과 결혼한 몸이었고, 결국 아이의 비자밖에 허가가 나지 않았다. 이제 헤어지면 죽는 날까지 만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여인은 사랑스러운 딸을 풍요로운 세상, 미국에 보내기로 결심한다. 사이공이 함락되기 수주일 전 아이가 떠나는 날, 그래서 공항은 생이별의 울음바다가 됐다. 미스 사이공은 낡은 흑백 사진 한 장에 담겨 있는 슬픈 사연을 푸치니 오페라 ‘나비 부인’의 뼈대에 옮겨와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제작 과정이 드라마틱한 것처럼 미스 사이공의 인기도 드라마틱하게 치솟았다. 17년 전 런던 초연 이후 흥행에 대성공, 세계 4대 뮤지컬로 우뚝 올라선 것이다.1989년 9월 런던의 로열 드러리 레인 극장에서 초연한 미스 사이공은 지금까지 10개 국어로 번역돼 전 세계적으로 1만9000회 공연을 통해 3100만 명의 관객을 유치했다. 오리지널 미스 사이공 음반은 런던에서 처음 발매됐을 때 3일 만에 15만 장이 팔리며 ‘골드 디스크’에 선정됐다. 그동안 9억5000만 파운드의 공연 수입을 올렸으며 미스 사이공 한국 공연에는 100억 원 정도의 제작비가 소요됐다. 한국 초연을 위해 5년을 기획했고, 무대를 만드는 데만 3년이 걸렸다고 한다. 앞으로 한국을 비롯해 독일 남아프리카공화국 호주 네덜란드 일본에서도 공연할 예정이라고. 4개월에 걸쳐 치러진 오디션에는 1100명이라는 한국 뮤지컬 사상 최다 지원자가 몰려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베트남 여인역의 ‘킴’과 베트남 전에 출정한 미군 ‘크리스’역을 꿰찬 행운의 주인공들은 누굴까. ‘킴’은 전쟁으로 인해 한순간에 모든 걸 잃고 미군을 상대로 한 술집에서 일하지만 순수함을 잃지 않는 베트남 여인이다. 미군 병사 크리스를 만나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운명적인 사랑을 나누는 열정을 보이는가 하면 부모가 정해준 약혼자 투이에게 단호히 저항하는 결연함도 보여준다. 게다가 자신의 아이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용기도 갖춘 인물이다. 킴을 연기하기 위해선 맑고 순수한 목소리와 때 묻지 않은 청초한 외모가 필수다. 그래서 더블 캐스팅된 주인공이 바로 ‘오페라의 유령’ ‘지킬 앤 하이드’의 김아선과 ‘인어공주’의 김보경이다. 이들은 스타가 아닌 신예 뮤지컬 배우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베트남 여인 킴의 순수한 매력에 이끌려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미군 병사 ‘크리스’ 역에는 현재 브로드웨이 뮤지컬 배우로 활동 중인 마이클 리가 낙점됐다. 마이클 리는 1973년 뉴욕 출생의 한국인으로 스탠퍼드 의대 재학 중 뮤지컬을 향한 꿈을 이루기 위해 브로드웨이 미스 사이공 오디션에서 ‘투이’역으로 합격해 뮤지컬 스타로 자리매김한 배우다. 이 밖에 킴의 약혼자 투이 역에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토스카’ 등에서 주역으로 활동한 하지원이, 크리스의 부인 엘렌 역에는 ‘로미오와 줄리엣’ ‘마리아 마리아’에서 열연한 김선영이 연기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토리는 1970년대 베트남 전쟁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5년 4월 베트남전에 참가한 미군 병사 크리스는 사이공의 한 술집에서 킴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킴을 사랑한 투이가 거칠게 항의한다. 1978년 호찌민 정부가 들어서자 급박하게 미군이 철수하고 크리스는 킴과 함께 미국으로 가려고 하지만 아비규환 속에서 결국 킴은 미국 행 헬리콥터를 타지 못하고 둘은 헤어지게 된다. 관료가 된 투이는 반역자로 몰린 킴을 찾아와 자신에게 돌아오라고 호소하지만 킴은 자신의 아이가 크리스의 아들임을 밝히고 이를 거절한다. 투이가 크리스의 아들을 죽이려 하자 킴은 투이를 사살하고 방콕으로 도망간다. 전쟁이 끝나고 우연히 방콕에서 킴의 행방을 알게 된 크리스의 동료 존이 이 사실을 크리스에게 알린다. 이미 미국에서 결혼한 크리스가 부인과 함께 킴을 찾아 방콕으로 간다. 크리스의 부인을 본 킴은 좌절하여 삶의 의욕을 잃고 자살하고 크리스는 아들을 데리고 떠난다.엇비슷한 전쟁을 경험한 우리 민족에게 베트남전의 슬픈 얘기를 무대에 올린 ‘미스 사이공’은 깊은 공감을 살 수 있는 공연임이 분명하다. 베트남전에 참가한 당시 세대들에게는 보다 더 특별한 공연으로 남을 터다. 이것이 다른 공연과는 달리 ‘미스 사이공’ 한국 초연만이 가지는 ‘남다른 매력’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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