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의 성공스토리
가 만약 세일즈를 하지 않았다면 지독한 강성 노조원이 됐을 것입니다.”무일푼으로 창업 전선에 뛰어들어 20여년 만에 연 2조원 대의 매출을 올리는 중견 그룹을 일군 웅진그룹 윤석금 회장은 인터뷰 도중 불쑥 이런 말을 던졌다. 정수기 임대 사업 등을 시작해 업계에서 ‘블루오션 제조기’로 불릴 만큼 유감없이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대표적 자수성가형 기업가가 이런 극단적인 말을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모두 지독하게 가난했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암울한 젊은 시절을 보내야 했다. 만일 노동운동에 빠졌더라면 유례없는 강성 활동가가 됐을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 세일즈맨 생활을 시작하면서 그의 인생항로는 극적으로 전환됐다. 그는 영국의 브리태니카 백과사전 판매사원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초기에 물건을 잘 팔아 능력을 인정받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감이 떨어지고 실적도 신통치 않았다. ‘해도 안 될 거야’란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면서 고객을 만나면 ‘그 사람은 돈이 없을 거야’ ‘아무리 훌륭한 세일즈맨도 그에게는 물건을 못 팔 거야’란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아무래도 판매는 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니저를 만나 “그만 두겠다”고 말했다. 매니저는 만류했지만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결국 매니저는 “사표를 받아주겠지만 딱 1주일만 열심히 일해 달라”고 부탁했다. “겨우 1주일을 못해주겠느냐. 마지막으로 한 번 해보자”는 생각에 다시 일을 시작했다. 계약을 하지 못하면 밥을 굶겠다는 각오로 뛰었다. 성과는 놀라웠다. 1주일 동안 11개의 계약을 해내 그 주에 전국 최고 실적을 올렸다.“이 더위에 물건 파는 일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면 기가 빠지고 결코 판매에 성공할 수 없습니다. 정신을 집중해야 합니다. 머릿속에 들어있는 나쁜 생각을 빼면 땀으로 노폐물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상쾌한 자신감이 생겨납니다. 정신적인 면에서 기를 넣고 에너지를 만들어내면 분명 성과가 좋아집니다. 판매하면서 흥겹게 콧노래를 부를 수도 있게 됩니다.”‘판매왕’이란 목표를 달성한 윤 회장은 다시 새로운 목표에 도전한다. 출판사를 직접 차리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그것도 외국인의 돈으로 사업을 시작하겠다는 담대한 목표를 세웠다. 지금이야 외국인 투자가 활성화됐지만 1970년대 말 상황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목표였다.“영국 브리태니카 본사에서 전 세계 판매책임자들이 참석하는 회의가 열렸는데 여기서 일본 판매 담당자를 알게 됐고 그를 통해 일본 출판 회사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회의가 끝난 후 다른 사람들은 모두 고국으로 돌아갔지만 저는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리고 호텔에서 무작정 전화를 돌렸죠. 대부분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지만 헤임인터내셔널이란 회사에서 연락이 왔고 이 회사의 미우라 사장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인간적인 교감이 통했는지 술자리까지 이어졌죠.”이후 일사천리로 투자금 유치 작업이 진행됐고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으로 정국이 요동치는 가운데서도 7억8000만엔(78억원 상당)이란 거액을 유치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무작정 전화를 돌린다고 모두가 이런 행운을 잡을 수 있을까.“미우라 사장은 치밀한 사람이었습니다. 제 말투나 행동 등을 직접 보고 평가했을 뿐만 아니라 제가 브리태니카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를 미리 다 조사해 봤던 거예요. 이런 평가를 바탕으로 과감하게 투자를 결정한 것이지요.”창업에 성공한 후 윤 회장은 남들과 같은 길을 가지 않았다. 일례로 80년대 초 과외 금지조치가 내려지자 그는 ‘헤임고교학습’이란 책과 테이프를 만들었다. 과외가 금지됐지만 학생들을 가르치겠다는 부모의 욕구는 여전하다는 점을 파악하고 당대 최고의 과외 강사를 발굴해 강의 테이프와 교재를 만들었다. 학부모와 학생을 동시에 설득하기 위해 밤 9시 이후에 판매에 나섰고 결국 큰 성공을 거뒀다. 이런 성공을 발판으로 그는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왜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기린이나 코끼리, 타조 등 외국 동물 일색인 책을 보며 공부해야 하는지 항상 의구심을 품어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시골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동식물과 자연 풍경을 소재로 어린이용 책을 만들기로 결심했죠. 주위에서는 대부분 반대했습니다. 차를 타고 한 시간만 교외에 가면 볼 수 있는 동식물 이야기를 누가 읽겠느냐는 게 주변 사람들의 한결같은 의견이었어요. 하지만 저는 밀어붙였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의 자연과 정서를 가르쳐 줘야 한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입니다.”윤 회장의 예상은 적중했다. 우리의 문화와 환경, 한국 고유의 색깔과 풍경을 담은 12권의 책은 도시 생활에 지친 부모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결국 큰 성공을 불러왔다.1997년 외환 위기는 웅진에도 치명적인 위기를 가져왔다. 심혈을 기울여 오던 정수기 사업이 좌초 위기를 맞은 것. 경기 불황과 대량 해고로 소비자의 지갑이 얇아지면서 100만원이 넘는 고가 정수기를 사는 고객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판매량이 50%나 떨어지면서 생존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 지속됐다. 윤 회장은 기획조정실 직원 중 한 명을 정수기 업체인 웅진코웨이에 대표이사로 보냈다. 그러나 이 사람은 한 달 만에 그만뒀다. 몸이 아파 대표직을 수행할 수 없다는 이유였지만 실은 개인 보증을 서라는 압력이 커지자 대표직을 아예 포기해 버린 것이다. 더 이상 대안이 없다는 판단에 윤 회장이 직접 대표이사로 취임했다.“당시 웅진코웨이이의 분위기는 암울했습니다. 대규모 구조조정이 있을 것이란 흉흉한 소문이 퍼져나갔죠. 저는 ‘인력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또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것이라고 틈만 나면 이야기했습니다. 워낙 자주 이런 이야기를 하자 직원들 사이에서는 ‘회장에게 뭔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회사를 살리기 위해 고민을 거듭하던 윤 회장은 문득 정수기를 빌려주는 사업 모델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지인들을 만나 “만약 싼 값에 정수기를 빌려준다면 사용하겠느냐”고 물었다.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그는 결국 ‘렌털(임대)로 가자’고 결심했다.“사실 임대는 대단히 위험한 사업 모델입니다. 일례로 소비자 입장에서는 품질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이상이 있다고 느껴지면 임대료를 내지 않고 ‘정수기를 가져가라’고 하면 그만이지요. 고가의 정수기를 팔았던 시절에 고객들은 이미 100만원 이상의 거금을 미리 지불했기 때문에 회사에서 반품을 해주지 않는다고 버티면 억울하더라도 어쩔 수 없었죠. 하지만 임대는 상황이 완전히 다릅니다. 조금이라도 고객의 비위를 거스르면 바로 큰 손해를 봐야 하는 모델인 것이죠. 그야말로 고객이 왕을 넘어 ‘황제’가 되는 비즈니스 모델인 셈이다.”임대는 이처럼 위험 부담이 큰 사업이었지만 윤 회장은 극한의 원가 절감과 고객 서비스 만족도를 높여가면서 이를 실현시켜 나갔다. 일례로 정수기 필터를 교체해 주는 ‘코디’들은 무조건 차를 가진 사람만 뽑기로 했다. 교통비를 줄 형편이 못됐기 때문이다. 또 필터 같은 맑은 물을 만들기 위한 핵심 부품을 제외하고 나머지 불필요한 부분은 대폭 없애거나 줄여 원가를 낮췄다.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 정수기 물의 수질검사도 해줬다. 철저한 경쟁 시스템을 통해 직원들의 서비스 마인드를 높여가기도 했다.“지금도 컴퓨터 버튼 하나만 누르면 9000명이 넘는 코디들의 업무 능력이 1위부터 꼴찌까지 한 눈에 드러납니다. 또 코디들의 능력 평가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는 콜센터 상담원들의 업무 수행 능력도 한 눈에 볼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춰 놓았습니다. 이런 경쟁 시스템을 통해 판매 능력이 강화되면서 연수기나 비데, 공기청정기 등 새로운 사업도 순항하고 있습니다.”이를 기반으로 웅진코웨이는 300만 명이 넘는 가입자를 확보했으며 작년 웅진코웨이 매출만 1조원을 넘어섰고 웅진그룹 전체도 2조원 대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윤 회장의 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성장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람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인사담당 임직원들은 박사급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자주 해외로 나갑니다. 국내에서도 능력 있는 인재라면 가리지 않고 영입하고 있습니다. 또 이런 인재를 기반으로 앞으로 3년 내 세계 최고 수준의 제품 7개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이미 공기청정기의 질은 일본 수준에 올라섰습니다. 다른 제품도 최고 수준의 선진국 제품에 못지않은 품질을 갖추고 있습니다. 최고 인재만 지속적으로 확보한다면 어렵지 않게 이런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윤 회장은 또 현재의 사업 구조만으로는 연평균 20% 고성장을 이뤄내기는 어렵다고 보고 인수합병을 통한 건설업 진출도 선언했다. 지금까지 정수기 음료수 학습지 등 소비재 중심으로 사업을 진행했는데 건설업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건설업을 하더라도 천편일률적인 아파트를 짓지 않고 남들과 다른, 독특한 가치를 주는 아이디어를 개발한다는 방침이다.윤 회장은 성공을 꿈꾸는 직장인들에게 희망과 열정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직장에서 성공하려면 다른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친구든 상사든 고객이든 정말 나를 좋아하는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다른 사람이 나를 좋아하게 만들려면 항상 희망적이고 활동적이며 살아 움직이고 있어야 합니다. 마치 싱싱한 식물이나 팔팔한 물고기 같은 사람이 돼야 합니다. 이런 사고를 갖게 되면 표정이 밝고 좋아집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의 기분도 좋게 만들 수 있습니다. 물론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보려는 노력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