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0억달러의 투자신화를 쏘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 누구인가

네브래스카 주의 오마하. 인구 39만 명의 작은 도시다. 이 도시의 외곽 한 귀퉁이에는 회색 벽돌집이 자리 잡고 있다. 집주인은 올해 76세의 노인. 이 노인은 아침이면 산보를 하고 가판대로 걸어 나와 신문도 산다. 코카콜라를 입에 달고 다니며 시간이 남으면 미식축구 TV 중계를 보거나 카드 게임을 즐긴다. 정장을 해도 넥타이가 삐뚤어져 있는 등 어색하기 짝이 없다. 영락없는 은퇴한 시골 노인네다. 이 사람이 바로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다.440억달러를 가진 세계 두 번째 부자.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인(포천 선정). 세계에서 돈에 대해 가장 잘 알 것 같은 사람(포브스 조사). 세계 최고 부자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 돈에 관한한 ‘지존’이 바로 워런 버핏이다. 그렇지만 그가 받는 연봉은 고작 10만달러. 집도 지난 1953년에 구입해 53년째 살고 있다. 재산의 99%도 그가 운영하는 벅셔해서웨이에 투자돼 있다. 죽으면 재산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그다. ‘원칙과 정도’를 투자의 철칙으로 삼고 있으며 이른바 ‘윤리경영의 선구자’로 꼽히기도 한다. 그러니 많고 많은 수식어 중에 ‘오마하의 현인’이란 수식어가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다. 버핏은 지난 1930년 아버지가 증권 세일즈맨인 오마하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가정은 평범했지만 그는 돈에 관한 한 비범했다. 부친이 쓴 주식시장에 대한 책을 읽기 시작한 건 고작 여덟 살 때다. 열한 살 때는 증권회사 객장에서 시세판을 적는 일을 했으며 난생처음으로 주식을 사기도 했다. 열세 살 때 신문 배달을 해서 번 돈으로 25달러짜리 중고핀볼게임기를 이발소에 설치해 1주일에 50달러를 벌었다. 이때 처음으로 소득세를 냈다. 그가 처음 산 주식은 시티서비스사(CSP)라는 종목. 매입가는 주당 35달러. 그러나 주가는 버핏의 기대를 저버리고 27달러까지 미끄러져 내렸다. 이후 주가를 회복해 40달러까지 오르자 버핏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주식을 팔아 치웠다. 그러나 웬걸. 주가는 그후 200달러까지 치솟았던 것. 천재성을 타고난 어린 버핏은 이때 투자에 필요한 건 ‘종목 선정과 인내’라는 교훈을 배운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버핏은 돈을 버는 다양한 경험을 한다. 그렇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평범한 시골 젊은이에 불과했다. 그가 진학한 대학도 고향의 네브래스카대학이었다. 인생의 전기가 마련된 것은 대학 졸업 즈음. 어느 날 읽은 한 권의 책이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제목은 ‘현명한 투자자(The Intelligent Investor)’. 저자는 벤저민 그레이엄(Benjamin Graham) 컬럼비아대 교수. ‘가치 투자(Value Investment)’의 경전으로 일컬어지는 이 책을 본 버핏은 곧바로 뉴욕으로 날아가 그레이엄 교수의 제자가 된다.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에 입학한 그는 그레이엄 교수로부터 가치 투자의 진수를 전수받는다. 오늘날 버핏식 투자 방법인 가치 투자는 벌써 50년 전에 완성된 셈이다.가치 투자란 저평가된 좋은 기업을 찾아 투자한 뒤 빛을 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골자다. 말이 쉽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저평가된 기업을 찾아내는 것도 그렇거니와 가치를 발휘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여간 지난한 작업이 아니다. 특히 온갖 풍문과 뉴스가 난무하는 증시에서 귀를 닫고 기다린다는 건 대단한 뚝심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증시가 문을 닫아도 행복할만한 주식을 사고, 자신이 아는 주식에 투자하라’는 버핏의 투자철학은 이때 형성됐다. 어쨌든 가치 투자로 무장한 청년 버핏은 스물다섯 살 때 고향인 오마하로 돌아와 투자 펀드를 결성했다. 총자산은 10만5000달러. 버핏의 지분은 100달러에 불과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1969년 해산할 때 투자조합은 연 30%라는 경이적인 수익률을 올렸던 것. 투자조합을 운영하면서 자신감을 얻은 버핏은 저평가된 주식을 찾다가 1965년 매사추세츠 주의 뉴 베드포드라는 도시에 있는 벅셔해서웨이라는 방직회사를 찾아낸다. 방직업이란 사양산업이긴 했지만 튼튼한 재무 구조를 가진 ‘가치주’를 놓치지 않았다. 그후 버핏은 보험회사 등을 인수, 벅셔해서웨이를 투자 지주회사로 탈바꿈시킨다. 벅셔해서웨이를 바탕으로 수익을 쌓아가던 버핏은 80년대 들어 전국구 스타로 떠오른다. 코카콜라와 질레트 투자를 통해서다. 버핏은 88년 당시만 해도 그냥 그런 음료수회사였던 코카콜라 주식 10억달러어치를 매집했다. 그 후 5년 만에 주가는 6배가량 올랐고 버핏과 벅셔해서웨이는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질레트에 대한 투자도 마찬가지다. 버핏은 지난 89년 질레트 주식 9900만주(10%)를 6억달러에 샀다. 그후 16년 동안 주식을 갖고 있다가 질레트가 P&G에 넘어가면서 45억달러의 대박을 터뜨렸다.그러나 버핏이 명성을 얻은 것은 2000년 인터넷 거품 붕괴 때다. 1990년대 말 욱일승천하던 인터넷주를 버핏은 철저히 외면했다. 가치 투자 철학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지난 1999년 S&P500지수는 21.0%나 올랐지만 벅셔해서웨이는 겨우 0.5%의 수익을 내는데 그쳤다. “이젠 버핏도 갔다”는 수군거림이 나오는 건 당연지사. 그러나 웬걸. 그의 예언대로 인터넷 거품이 붕괴하면서 그는 ‘투자의 선지자’로 업그레이드됐다.그는 시대를 관철하는 안목과 투자 철학을 지녔다. 그래서 ‘투자의 귀재’다. 그렇지만 그의 진가는 다른 데 있다. 그는 사람에 투자한다. 벅셔해서웨이의 68개 자회사의 경영에도 관여하지 않는다. 주주를 가족이라 여긴다. 윤리에 어긋나는 기업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엄청난 재산을 대부분 사회에 환원할 예정이다. 흔히들 투자의 귀재 하면 탐욕을 연상한다. 그러나 버핏은 다르다. 탐욕과는 거리가 먼, 귀감적인 귀재다. 그래서 그는 ‘오마하의 현인(Oracle of Omaha)’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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