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떨어져 미국·베트남 등 투자 찬스

환교수 자격으로 미국에 간 김길동씨(49·가명)는 미국 부동산 열기에 새삼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7년 만에 다시 찾은 미국 집값이 그 사이 50% 이상 뛰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대거 모여 사는 로스앤젤레스(LA) 근교 팔로스 버티스에 집을 알아봤지만 매월 내야 할 임대료만 3000달러(300만원)가 넘어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다른 곳을 알아보기에도 마땅치 않다. 태평양이 바라다보이는 언덕에 있는 이곳은 캘리포니아 주에서 주거 환경이 가장 뛰어난 곳이다. 특히 팔로스 버티스 고등학교는 캘리포니아 주 학력평가지수에서 1~2위를 다툴 정도로 교육 수준이 높다. 김씨는 2년 후 한국에 돌아와야 하지만 자녀들은 미국에 남게 할 생각에 팔로스 버티스 내 타운 하우스를 90만달러(9억원)에 구입했다. 매달 임대료로 3000달러를 내느니 장기간 돈을 묻어둔다는 생각에 아예 집을 샀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부동산 규제 정책이 계속되는 가운데 해외 부동산이 고소득자들의 대체 투자처로 주목받고 있다. 정부가 환율 하락 등 외환시장 위기 타개책의 일환으로 해외 부동산 투자의 빗장을 열어젖히고 있어 투자자들의 관심이 더욱 높아지는 실정이다. 정부는 올 들어 세 차례에 걸쳐 해외 부동산 취득에 관한 규정을 대폭 완화했다. 주거용 해외 부동산 취득 기준을 100만달러 이내로 확대했으며 송금허용 기준도 100만달러로 늘어났다. 이 밖에 귀국일로부터 3년 이내 처분해야 하는 조항도 폐지했고 해외 반출 시 국세청에 신고해야 할 한도액을 20만달러에서 30만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또 개인의 해외 투자도 전면 자유화했다. 이러자 주택 구입을 목적으로 해외로 자금을 보내는 경우가 크게 늘어 올 초부터 4월26일까지 집계된 금액만 5402만달러(164건)로 작년 한 해 송금 규모(783만달러, 26건)를 크게 앞질렀다. 더 나아가 정부는 연내 거주용이 아닌 투자 목적의 해외 부동산 취득을 전면 허용할 계획이어서 해외 부동산 투자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재정경제부 고위 관계자는 “최근 계속 떨어지고 있는 원·달러 환율 방어를 위해 원래 내년께 풀 예정이던 투자용 해외 부동산 취득 규제를 서둘러 완화하려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최근 계속되고 있는 환율 하락은 해외 부동산에 대한 투자 매력을 더욱 키우는 실정이다. 지난 5월3일 현재 원·달러 환율은 943원으로 지난해 같은 날 1009원에 비해 66원이나 떨어졌다. 지난해 5월3일에는 10억900만원이 있어야 100만달러짜리 주택을 구입할 수 있었지만 올해는 9억4300만원이면 구입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환율 하락이 수출에는 악영향을 주고 있지만 해외 부동산 구입 등에는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해외 부동산 투자에 대한 전면 자유화 소식이 전해지면서 미국 중국 베트남 등에 주택과 토지를 구입하려는 수요가 크게 급증하고 있다. 해외 부동산 투자를 알선하는 업체들에 구체적인 물건을 찾는 전화가 폭증하고 있으며 일부 알선 업체는 투자 방문단을 구성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 현지 분위기도 상당히 빠르게 변하고 있다. LA 뉴욕 워싱턴 등 한인들이 밀집해 있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거래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모습이다. 최근 들어 투자 패턴도 크게 바뀌어 지난해까지만 해도 미국 현지에서 초·중·고교에 다니는 자녀들이 살 집을 마련해 주는 실수요가 많았다면 올해부터는 현지인에게 임대하는 투자 목적의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입국 비자 면제 협의가 진행 중인 것도 미국 부동산 투자에 있어선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현지 부동산 관계자들은 비자가 면제되면 미국을 방문하기가 한층 쉬워져 미국에 주택과 토지를 구입하는 것이 훨씬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지 업체가 주도적으로 나서 개발형 프로젝트를 벌이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어 미국 내 한인 투자 업체인 J업체는 국내에서 투자자들을 모집해 금융 회사들이 밀집해 있는 LA 윌셔가에 오피스를 매입했다. 또 워싱턴DC와 버지니아 주 애넌데일에서는 국내 모 중견 건설 업체가 쇼핑몰을 건설하기 위해 부지를 매입했으며 샌디에이고에서는 사모 방식으로 모집된 국내 부동산 펀드가 오피스를 매입한 사례도 있다. 올림픽과 엑스포 등 대형 행사를 앞둔 중국 부동산 시장도 뜨겁다. 단기간 급등했던 상하이 푸둥 등은 다소 주춤한 반면 베이징 톈진 다롄 칭다오 쪽은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중국 정부가 부동산 가격 안정책을 펴고 있으나 밀려오는 투자 자금을 막아내기는 역부족이다. 특히 ‘동북공정’이라는 이름으로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인 동북부 지역은 매년 두 자릿수 이상의 가격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 정부는 한국 일본 등과의 무역 교류를 늘리기 위해 동북부 지역을 거점권역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때문에 중국 현지에서는 상하이 엑스포가 끝나는 2010년까지는 부동산 값이 강세 내지는 강보합세를 이어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동안 중국 부동산 투자는 주로 주상복합아파트 등 주거용 부동산에 국한됐지만 최근 상가 수요가 급증하면서 근린상가 쪽 투자가 늘고 있다. 중국부동산연구회 박준희 회장은 “자영업자를 육성해 실업률을 낮추려는 중국 당국의 정책으로 상가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면서 “이에 따라 아파트 1층을 헐어 상가로 개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 불고 있는 부동산 투자 열기는 비슷한 개방 정책을 표방하고 있는 베트남 캄보디아 등으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베트남의 경우 종전 이후 주택 공급이 거의 이뤄지지 않아 신규 주택에 대한 수요가 높다. 최근 외국인들의 투자가 늘면서 특히 오피스 호텔 등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고 현지 소식통들은 전한다. 이에 베트남 정부는 장기 개발계획을 세워 하노이와 호찌민 외곽에 신도시를 건설하고 있으며 GS건설 두산건설 포스코건설 대우건설 등 국내 대형 건설 업체들이 신도시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아파트 분양가는 평당 300만원 정도이며 임대료는 월 50만~80만원 수준이다. 오피스 수요도 급증세다. 베트남 영자 일간지인 베트남 뉴스에 따르면 ㎡당 월 임대료가 현재 11달러에서 3년 후에는 35달러로 치솟을 것으로 예상된다. E-타운 빌딩, 비텍스코빌딩 등 지난 2003년 호찌민 중심부에 건립된 빌딩들은 공실률이 2% 미만이다. 캄보디아는 수도 프놈펜을 중심으로 부동산 투자 붐이 일고 있다. 외국인 투자가 늘면서 프놈펜의 오피스 빌딩이 평당 350만원 선에 거래되고 있고, 시 외곽의 신도시 부지는 평당 100만원 선에 분양 중이다. 국내 투자자들의 경우 대부분 현지 법인을 설립해 투자하고 있다. 캄보디아 정부도 외국인이 캄보디아 부동산 취득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지난 3월 부동산 등기 관련 제도를 변경했다. 이에 따라 외국인 명의의 부동산 등기가 가능해져 투자 위험을 크게 줄였다. 이 밖에 루마니아 슬로베니아 등 동유럽에 있는 고성 등을 구입해 고급 호텔로 개조하거나 비인가 사모 펀드를 구성해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지에 고급 리조트를 건설하는 사례도 조금씩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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