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아이칸과 巨富 아이칸’의 치열한 삶
드거 브론프만 2세, 에드워드 램퍼트, 커크 커코리안….이 정도 이름을 듣고 무엇을 얘기하려는지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세계 금융 업계를 ‘좀 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칼 아이칸(70)을 추가한다면 무릎을 치는 사람은 훨씬 더 많아진다. ‘아! 그 냉혹하다는 기업 사냥꾼들….’작년까지 사실 칼 아이칸을 아는 사람은 국내에 많지 않았다. 윌버 로스란 인물이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때 한국에 들어와 기업을 사고팔고, 쪼개고 합치고 하면서 한국 경제를 쥐락펴락했다는 기억 정도가 전부였을 터다. 그런데 이런 ‘사냥꾼’이 이제 다시 한국에서 조명을 받고 있다. 모두 칼 아이칸 덕이다.칼 아이칸은 ‘월가의 해적’ ‘무자비한 사냥꾼’ ‘부도덕한 사채업자’란 소리를 듣고 있다. 자신은 ‘주주 행동주의자(shareholder activist)’로 불러주길 원하지만 그나마 ‘제왕적 주주(imperial shareholder)’ 소리를 듣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월스트리트에서도 이처럼 비판을 받다 보니 ‘인간 아이칸’과 ‘거부(巨富) 아이칸의 삶’을 제대로 살펴보려는 시도는 그리 많지 않았다. 물론 이는 아이칸의 업보다. 아이칸은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지만 이로 인해 주주들이 이득을 보는 측면도 있다”고 역설한다. 하지만 작년 9월 그는 자신이 합병한 미국 뉴저지주 애틀랜틱시티의 샌즈카지노 호텔의 소액주주들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합병 과정에서 소액주주들에게 지분을 처분할 기회를 주지 않아 재산상의 손실을 봤다는 주장이다.2003년 파산한 미국 이동통신업체 XO커뮤니케이션즈 주주들도 아이칸의 칼자루에 나가떨어진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이런 비판은 물론 ‘이유 있는 반항’이다. 하지만 그가 이룬 부(富) 만큼은 정말 엄청나다.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가 2005년 발표한 ‘미국 최고 부자 400명’에 따르면 그의 재산은 85억달러에 달했다. 미국에서 24번째 부자로 집계됐다. 가난한 나라의 연간 국내총생산과 맞먹는 수준이다. 2004년 포브스의 세계 최고 부자 중에선 47위를 차지했다. 당시 재산은 76억달러로 추산됐다. 대충 보면 1년 새 10억달러 가까이 재산이 늘어난 셈이다.이곳저곳 돈을 집어넣다 보니 명함도 수십 개에 달한다. 그는 아메리칸 리얼 이스테이트 파트너스 회장이자 온라인업체 블록버스터 이사, 아메리칸 레일카 회장이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최고층 카지노로 유명한 스트라토스피어의 대주주이기도 하다. 아이칸 마스터펀드(15억달러 규모)와 아이칸 파트너스펀드(11억달러) 등도 굴리고 있다.아이칸은 1936년 미국 뉴욕시 퀸스에서 변호사인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족함이 없는 집안이었다. 러시아계 유대인 출신으로 당연히 독실한 유대교의 전통 속에서 성장했다. 그는 명문 프린스턴대에서 철학, 뉴욕대에서 의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2학년을 마치고 의대를 중퇴했다. 자기 말로는 “시신과 일하기 싫어서 그랬다”고 한다. 그리고 1961년 드레퓌스앤드컴퍼니에서 주식 브로커로 월가 인생을 시작했다. 당시 그가 포커 게임에서 딴 4000달러가 오늘날 85억달러 재산의 밑천이 됐다는 얘기도 있다. 그가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처럼 정석 투자가의 길을 걷지 못한 것은 역시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이 크다. 월가 초년병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기반을 잡고 활발한 투자에 나섰던 것은 1980년대. 마침 정크본드(투기등급의 채권 판정을 받은 기업) 투자가 각광받던 시절이었다. 증권 당국의 규제에서 벗어나 있어 누구나 군침을 흘리던 투자처였던 것이다.아이칸의 투자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 먼저 특정 회사 주식을 일반 주주로부터 30% 이상 프리미엄을 주고 대거 사들인다. 그리고 회사 이사회에 관여해 실적 향상을 주문한다. 이어 매수 위협을 가한 뒤, 주식을 되팔아 차익을 올린다. 그가 시도했던 이런 투자를 뒤에 ‘그린메일(green mail)’이라 부르게 됐다.그는 1982년 시카고의 유명 백화점 마셜필드앤드컴퍼니 주식 11%를 사들여 3000만달러의 이익을 올리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84년엔 석유회사 필립스 페트로리엄 주식을 사들여 5250만달러의 이익을 냈다. 1987년에는 텍사코 주식을 대량으로 매집해 5억달러라는 천문학적 이익을 남겼다. 정말 큰 대박은 1990년대 중반 미국 대형 담배 및 식품업체인 RJR나비스코 투자에서 터졌다. 이 회사의 구조조정을 통해 그는 무려 13억달러를 벌어들였다.이런 식으로 그는 눈덩이가 불어나듯 부를 키워갔다. 1996년부터 2004년 5월까지 총 56개 기업에 투자, 27억7000만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연평균 수익률로 환산하면 53%나 된다. 아폴로자산관리의 수석파트너인 리온 브랙은 “아이칸은 가치를 분별할 줄 아는 엄청난 후각을 가졌다”고 말했다. “그런 가치를 실제 돈으로 만드는 모든 수단을 알고있다”고 덧붙였다. 또 “그의 눈은 항상 결승전의 볼에 집중돼 있다. 협상에선 언제나 전투적”이라고 성공 요인을 분석했다.아이칸은 복잡한 투자기법과 분석 리포트를 중시하지 않는다. 자신이 ‘직관적’으로 투자한다는 점을 직접 인정한다. 그는 “내재가치는 높은데 주가가 낮은 회사를 투자 대상으로 삼는다”며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라고 말했다. 또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을 때가 투자의 적기”라며 “이때 마치 마우스를 클릭하듯이 돈을 집어넣는다”고 설명했다.그래도 그는 주도면밀한 사람에 속한다. 주변인들이 전하는 그의 협상 전술을 보면 금세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이칸은 매수 협상 전날에는 충분히 잠을 자둔다. 당일 오후에도 늘어지게 낮잠을 잔다. 그러고는 협상 장에 늦게 나타난다.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지는 협상에서 그가 주도권을 쥘 수밖에 없다. 바짝 긴장한 상대방은 지칠 대로 지치고 순간 판단력이 흐려지는데 아이칸은 말짱한 표정으로 협상에 임한다는 것이다.그런 그에게도 실패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1월 캐나다 토론토 소재 페어먼트호텔 리조트 그룹을 주당 40달러에 인수하려고 했으나 사우디아라비아 억만장자인 알 왈리드 빈-탈랄 왕자가 45달러를 제의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1985년 사들인 미 항공사 TWA도 아이칸에게는 쓰라린 기억으로 남아 있다. 7년 뒤인 92년 파산 보호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아이칸은 “3~4년 안에 회생시키려고 했다”면서 “(결과적으로 볼 때) 좀 더 일찍 발을 뺐어야 했다”고 씁쓸해 한다. 특히 TWA는 적대적 인수에 성공한 뒤, 경영 일선에 직접 나선 경우여서 실패의 상처가 더욱 컸다.아이칸의 인간적인 모습을 살펴보자. 보통 자기 세대에서 ‘일가(一家)’를 이룬 사람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골프를 안 한다’는 것이다. 아이칸도 골프를 하지 않는다. 스코어가 줄지 않아서 투정부리듯 골프를 싫어하는 게 아니다. 그저 시간낭비라고 생각한다. ‘인생을 즐기지도 않는데 돈을 벌어 무엇 하느냐’는 비아냥에도 “돈 버는 데 신경 쓰는 것은 나만의 편집광적 성격 때문”이라고 솔직히 말한다. 그리고 당부 한마디를 빼놓지 않는다. “성공하기 위해선 당신도 편집광이 돼야 한다”고.아이칸의 아버지는 변호사였지만 일하는 것을 즐기지는 않았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고 아이칸은 지금도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의 대학시절 전공은 철학. 학위논문 제목은 ‘중요한 의미 분류 기준을 명확히 하기’였다. 지금은 다시 읽어봐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며 그는 너털웃음을 짓곤 한다. 물론 지금은 논문의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자신의 삶과 비즈니스에 대해서만큼은 명확한 분류 기준을 갖고 있는 것 같다.아이칸은 또 ‘냉혈한’이란 이미지와 ‘박애주의자’라는 상반된 얼굴을 갖고 있다. 진정한 그의 모습이 무엇인지 오직 그만이 알 수 있지만 그의 말과 행동을 통해 유추해 볼 수는 있다. 그는 일단 아무도 믿지 말라고 한다. “당신이 비즈니스에서 배워야 할 것은 명백하다. 친구를 원한다면 차라리 개를 한 마리 사서 길러라”라고 독설을 퍼붓는다.하지만 그는 월가 견습생으로 드레퓌스에서 일할 때부터 사귄 친구들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의 친구인 로버트 벌린은 “아이칸은 오랜 친구를 잊지 않는다”며 “아무리 바빠도 내 전화를 받고 어떤 경우엔 일도 맡긴다”고 말했다. 그는 학대받고 버림받은 아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 그는 아동권익위원회 회장으로도 일하고 있다. 아버지가 없는 가정을 위한 아이칸하우스, 아이칸 가족재단 등의 창립자이기도 하다. 뉴욕시 랜달섬에 있는 아이칸 스타디움, 아이칸 사이언스 센터와 초어트 로즈마리 홀의 아이칸 장학 프로그램 등이 모두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1999년엔 유전학 연구소를 설립하기 위해 모교인 프린스턴대에 2000만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임클론시스템스:1억9640만달러 투자, 4억1700만달러 수익 (수익률 212%)·레블론:1억9680만달러 투자, 2억8120만달러 수익 (수익률 143%)·샘소나이트:3410만달러 투자, 1억360만달러 수익 (수익률 304%) ·비저홈즈:7000만달러 투자, 3800만달러 손실 (수익률 -54%)·제록스:3200만달러 투자, 2120만달러 손실 (수익률 -66%)·타이탄:2180만달러 투자, 1470만달러 손실 (수익률 -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