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작에는 때가 없다

친은 함경도 회령에서 월남한 피란민이었다. 광복되기 전부터 목재업을 하셨는데 이남에 와서도 평생 ‘나무장사’로 일관했다. 아버지에겐 우리 형제들이 낙담하거나 좌절할 때마다 항상 입버릇처럼 하신 말씀이 있었다.“무슨 일이든 10년은 해야 문리가 트이고, 20년은 해야 비결이 생긴다. 그런데 요새 아이들은 기껏 2, 3년 해보고 안 된다고 팽개치니 그래 가지고 되는 일이란 도둑질밖에 더 있겠니.”어렸을 때 귀가 따갑도록 들은 이 말씀은 그 뒤로 내가 10년에 걸쳐 대하소설을 쓰는 내내 커다란 지침과 버팀목이 되었다. 힘들 때마다‘그래, 꼭 10년만 해보자’고 각오를 다지고 무너지려는 의지를 추슬렀다. 요즘 유행어로 과연‘10년의 법칙’인 셈이다. 사람들은 대개 무위도식으로 며칠을 보내면 까닭 없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우리 세대 이상은 특히 그렇다. 전쟁 이후 베이비붐 세대의 치열한 경쟁사회를 살았기 때문이다. 여유를 즐기거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여유 따위는 애당초 없었다. 스무 살도 안 된 나이에 진로 선택을 강요받고, 다시 입시 열풍에 휘둘려서 뭐가 뭔지도 모르고 걸어온 게 우리네 인생의 보편적인 모습이다. 물론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겪은 강박관념이 잘못됐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그 덕택에 오늘날 이만한 여유와 풍요를 누리게 됐음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 흐름과 사회 조류가 달라졌다. 삶의 가치가 물질에서 정신세계의 풍요를 추구하는 쪽으로 옮아가면서 성공이나 행복의 의미 또한 과거와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난다. 한마디로 시대의 모럴과 패러다임이 바뀌고 변한다는 말이다. 시대가 변하는데 그 안에서 사는 인생이 변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이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면 지금부터 낙오자가 된다. 치열한 경쟁사회를 살면서 우리가 놓친 중요한 점은 스스로에 대한 충분한‘모색’의 단계며 과정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현실이 따로 논다. 꿈과 현실이 다를 경우, 꿈이 꿈으로서만 존재할 경우에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세월이 흐를수록 스스로 초라해지고 불행해지게 마련이다. 서해안 대호 방조제를 구경하고 나오는데 길가에 이름 모를 들꽃이 무더기로 피어나 미풍에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길섶에 차를 세우고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꽃무더기를 향해 걸어갔다. 돌이켜보면 그날, 그 순간에 너무도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나는 그저 흐드러진 만화방창(萬化方暢) 찬란한 춘경 속에 잠시 서 있었을 뿐, 봄은 봄이고 나는 나였다. 필경은 내가 이 세상에 없었어도 미풍은 불고 들꽃은 피어나 그때처럼 흔들렸을 거였다. 그 순간처럼 지독한 절대고독을 언제 또 느꼈을까. 내가 있든 없든 어차피 세상이 따로 돌아간다면, 내가 있어서 무언가가 달라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진정한 존재의 이유가 있을 테고, 그런 의미에서 내 삶과 인생이 과연 어떠해야 할지 확연히 눈에 보였던 것이다. 10년의 법칙은 역설로도 통하는 진리다. 무슨 일이든 10년만 하면 실체가 보이고, 20년쯤 하면 가치전도가 일어나기도 한다. 깊은 통찰과 모색을 통해 선택한 진정한 자신만의 인생이 아닐진대 20년이면 근본적인 회의에 빠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주저하지 말고 다시 시작하기를 권한다. 쉰에 새로운 일을 시작해도 칠순이면 20년 전문가가 된다. 너무 당연한 얘기겠지만 진정한 부(富)는 물질이 아니라 마음이며, 행복과 불행은 달리 표현하면 마음의 상태를 뜻한다. 해마다 봄은 오는데, 봄을 봄이라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과히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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