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패션 CEO로 불러주세요”

패션회사 CEO로 맹활약중인 탤런트 이혜영

“사장님, 이 옷 어때요?”“네크라인이 너무 파였어. 한국 여자들은 이렇게 야한 거 잘 안 입어. 여기 목 부분을 좀 올리고 원단은 무난하게 블랙과 핑크 두 종류로 하지.”새로 출시될 봄 원피스를 평가하는 여사장의 태도가 여간 꼼꼼하지 않다. 주인공은 ‘미싱도로시’라는 패션 브랜드로 업계에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 이혜영. 그녀는 1992년 혼성 3인조 그룹인 1730으로 데뷔해 가수, 연기자, 모델 등을 두루 섭렵한 만능 엔터테이너. 옷 잘 입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난 2004년 CJ홈쇼핑을 통해 런칭한 브랜드 ‘미싱도로시’는 이혜영의 세련되고 사랑스러운 패션 스타일을 그대로 반영해 여심을 사로잡았다. 출범 첫 해 100억원의 매출을 올린 미싱도로시는 지난해 150억원을 달성한데 이어 올해는 250억원을 목표로 삼았다. 허황된 목표는 아니다. 브랜드가 재런칭된 지난 3월4일. 이날 오후 3시10분부터 4시40분까지 90분 동안 무려 12억원어치의 제품이 팔려나갔다. 분당 1333만원어치씩을 팔아 치운 셈이다. 그때 이혜영은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고. 세상만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얼마전 그녀는 10년 동안의 연애끝에 결혼에 골인했던 동료 연예인 이상민과 1년여 만에 헤어졌다. 마음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터다. 하지만 낙천적인 성격을 바탕으로 홀로서기에 나선 끝에 여성 최고경영자(CEO) 반열에 당당히 올라서게 됐다.“‘돌아온 싱글’ 이혜영보다는 ‘패션 사업가’ 이혜영으로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이혼의 아픔을 달랠 틈도 없이 정말 바쁜 시간을 보냈어요. 벌여 놓은 사업이 있었고 회사는 내가 하나하나 결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는 게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워낙 옷을 좋아하다 보니 사업이 힘들지 않았고 아침에 눈뜨면 내가 출근할 회사가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지요.”그녀가 패션 사업에 뛰어든 건 우연이 아니다. 10년 전 그녀는 백상예술대상 등에서 신인연기상을 휩쓸며 주목받는 연기자로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었다. 쌓여가는 시나리오에 행복한 비명을 질러야 했지만 그녀의 머릿속에는 다른 생각이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패션 스타일리스트’ 로 변신했다.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놈의 옷에 미쳐’ 일을 벌이게 된 것이다. 샤크라 디바 엄정화의 스타일리스트로 시작한 이혜영의 ‘패션 사랑’은 곧 ‘패션 사업’으로 발전하게 됐다. 2002년도 지인으로부터 패션 사업을 제의 받은 이혜영은 덜컥 사업에 뛰어들었다. 돈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던 시절이라 단지 옷이 좋았기 때문에 무턱대고 사업을 시작한 것. 하지만 현실의 장벽은 높았다. 브랜드 하나 만드는 데 40억~50억원 정도의 큰돈이 필요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일월드컵은 다른 곳에 특수를 만들어내는 대신 의류 시장을 불황으로 몰았다. 사업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슬그머니 발을 빼기 시작했고 쌓여 있는 재고는 모두 그녀의 몫이 돼버렸다. 암담했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재고 처분에 팔을 걷어붙였다. 가건물을 빌려 쌓여 있는 옷들을 30~50%씩 대폭 할인한 가격에 팔아치우기 시작했다. 1만 장 가까이 있던 재고들은 눈에 띄게 팔려나갔고 제품을 모두 판 그녀는 기분 좋게 손을 털 수 있었다.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말이 있다. 한 번의 사업 실패 경험은 ‘보약’이 됐다. 2004년 이혜영은 CJ의 제안으로 ‘미싱도로시’라는 브랜드를 런칭하게 된다. 사업으로 치면 ‘재수’를 하게 되는 셈. 그녀는 사장이 아닌 ‘수석 디자이너’로 계약을 하고 사업을 도왔다. 당시만 해도 홈쇼핑은 아줌마들의 전유물이라 젊은 세대를 타깃으로 하는 제품을 판매하는 것 자체가 파격이었다. 이 브랜드는 대성공을 거뒀다. 이혜영은 올 초 투자자금을 끌어들여 이 브랜드를 인수했다. 온라인 매장(MDstory.com)도 오픈해 방송에서 못다 판 재고 소진 경로로 활용하고 있다. 오너 겸 CEO로 변신한 것이다. “사람들이 미싱도로시의 옷을 사는 이유는 ‘디자인’ 때문이고, 반품하는 이유는 ‘품질’ 때문이라고 입을 모으더군요. 그래서 전 재런칭하자마자 철저한 품질관리에 돌입했어요. 중국에서 OEM으로 생산하던 제품들을 지금은 한국 공장에서 자체 생산해요. 곧 200여 평 규모의 공장을 사들일 예정이죠.”CEO로서 이혜영의 눈빛이 빛난다. “일할 땐 화장 안 해요. 연예인 이혜영과 CEO 이혜영은 달라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 저는 ‘사장님’이라는 말에 익숙해진 지 얼마 안 됐어요. 사업을 처음 시작했을 땐 직원들이 ‘사장님’이라고 불러도 쳐다보지 않은 적이 많았죠. 하지만 요즘엔 커피숍에 앉아 있다가도 멀리서 누군가가 ‘사장님~’ 하는 소리가 들리면 벌떡 일어날 정도에요.(웃음)”패션 브랜드의 대표이자 수석 디자이너인 이혜영은 경영학도 출신. 패션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매력적인 디자인을 줄기차게 선보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동물적인 감각’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무계획이 계획’이라는 그녀는 소위 ‘본능에 충실’한 디자이너다. “입어보고 싶은 옷을 디자인해 내놓으면 그게 패션 트렌드와 잘 맞아떨어져요. 참 신기하죠. 이번 봄여름 시즌에는 여성스럽게러플과 레이스가 들어간 옷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올 가을과 겨울에는 좀 차분하고 미니멀한 스타일을 입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게 올 패션가의 가을겨울 시즌의 트렌드라는 식이죠. 단지 그런 트렌드를 이혜영 스타일로 대중성을 잃지 않고 풀어내는 게 미싱도로시만의 특징입니다.”그녀는 평소 영국 브랜드인 ‘비비안 웨스트 우드’의 스타일을 좋아한다. 그 브랜드가 너무 좋아 분기마다 있는 패션쇼를 보기 위해 해외 출장까지 갔다고 한다. 제대로 된 연예인 출신 CEO인지라 사업에 관심이 큰 동료 연예인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녀는 대개 이렇게 컨설팅한다. “당신이 직접 경험을 쌓고 싶다면, 2년 정도는 돈을 주고 배운다는 마인드로 임해라. 하지만 돈만 생각한다면 실망할 수밖에 없다. 내가 평생 이 사업을 할 것인지, 죽을힘을 다할 용기가 있는지 잘 생각해 보라”고. 비장하고 단호하다. 시련과 아픔을 겪은 만큼 마음도 단단해졌다. 그때마다 어려울 때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준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는다. 그녀를 끝까지 믿고 맡겨준 CJ홈쇼핑의 미싱도로시 팀, 적은 월급에도 밤샘 작업을 밥 먹듯 해온 직원들, 항상 옆에서 힘이 되는 부모님, 오빠, 언니까지…. 그들을 생각하면 절로 힘이 솟는다. 그녀는 현재 한남동에 살고 있다. 청담동에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지만 시끌벅적한 강남보다 이제는 한적하고 여유로운 강북이 좋다고 말하는 그녀. 시간이 흐른 만큼 사람도 변한 듯 보였다. 아침 9시께 헬스로 하루는 시작하는 그녀는 오전 시간을 ‘나만을 위한 시간’으로 보내고 12시부터 여의도에 있는 사무실에 출근해 본격적으로 일한다. 보통 저녁 8~9시까지 근무하고 늦으면 밤 11시를 훌쩍 넘기기도 한다. 무려 10억원의 ‘다리 보험’에 들었을 정도로 환상적인 몸매를 지닌 그녀는 시간 날 때마다 열심히 운동하고 애완견 ‘도로시’와 ‘쪼꼬’를 데리고 산책하며 여가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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