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와 혁신 즐기는 CEO

오경수의 청류탁류

처럼 매우 급하고 빠르다는 ‘급어성화(急於星火)’는 최고경영자(CEO)들이 뽑은 지난해 기업경영을 대표하는 사자성어다. 이는 급변하는 대내외 경제환경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스피드 경영과 속도 경영의 중요성이 대두된 한 해였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출과 내수 간 심화된 경제 양극화를 반영한 ‘운니지차(雲泥之差)’와 유가 주가 원자재 등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큰 폭으로 오른 것을 나타낸 ‘천정부지(天井不知)’가 그 뒤를 잇고 있다.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기업들 간에 CEO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명확한 기업의 목표와 비전 제시는 물론 변화를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인류 최초로 남극을 정복한 노르웨이의 아문센이 길을 떠날 당시 영국의 로버트 F 스콧 경도 남극 정복길에 올랐다. 아문센은 우선 에스키모인들의 경험담과 여행 노하우를 철저히 분석한 후 그에 맞는 장비와 루트를 마련했다. 에스키모 개가 끄는 썰매로 사람과 장비를 운반하게 하고, 남극점까지 이르는 루트 곳곳에 세운 베이스 캠프에 물품을 가득 채워 탐험대가 지고 가는 짐을 최소화했다. 치밀한 준비 덕분에 아문센의 탐험대는 단 한명의 희생자도 없이 남극점을 정복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영국 해군장교 출신 스콧은 사전 답사 없이 출발을 강행했다. 길을 떠난 지 닷새 만에 수송용 모터엔진 썰매가 얼어붙었고, 망아지들은 동상에 걸려 죽어버렸다. 복장과 장비를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많은 짐을 지고 가던 대원들은 모두 동상에 걸리고 말았다. 10주 동안 800마일을 걸어 남극점에 도달했지만, 그곳엔 이미 아문센 일행이 한 달 전에 꽂아놓은 노르웨이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돌아오는 두 달 동안 굶주림과 추위에 지친 대원들은 하나 둘씩 죽어갔고, 베이스 캠프에서 불과 150마일 떨어진 지점에서 대장 스콧마저 죽음을 맞이했다. 아문센이 기업의 나아갈 바를 정확히 파악하고 직원들의 동기를 북돋우며 기업 성장을 이룬 성공적인 CEO였다면, 스콧은 아집만으로 밀어붙인 끝에 기업의 틀마저 붕괴시킨 실패한 CEO다. 살아남는 것뿐만 아니라, 성장까지 이루기 위해 CEO가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것은 기존의 가치와 관행을 고수하는 관리자에서 벗어나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변화를 도모하는 기업가 정신이다. 무엇이든 만들면 팔리던 공급자 중심의 푸시(Push) 경제 하에서는 제품 생산성과 효율성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러나 지금은 소비자 중심의 새로운 풀(Pull) 경제의 시대다. 고객 중심의 브랜드 소유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시장 변화나 고객의 욕구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고객 중심형 회사로 변모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CEO는 고객의 인식 속에 자사의 제품과 서비스가 가장 효과적이고 신속하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브랜드를 구축해 가는 브랜드 빌더(Brand builder)의 역할까지 해야 한다.기업의 내실을 다지고, 혁신을 꾀하는 것 외에 CEO에게 기대되는 역할은 조직 내에서 탁월한 인재를 발굴하고 키우는 것이다. 사업의 지속적인 성공을 위해 탁월한 역량을 갖춘 차세대 리더를 확보하고 육성하는 것 또한 필수 과제다. 인텔의 앤디 그로브 전 회장도 “당신이 그 부서의 리더라면 자신이 그 자격이 있음을 매일 현장에서 입증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얼굴마담에 불과한 CEO를 원하지 않는다. 업(業)의 개념을 명확히 하고, 이를 제대로 실천해갈 수 있는 진정한 리더로서 변화의 중심에 서는 CEO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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