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강남권 집값 잡기 딜레마
울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가 참여정부 부동산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8·31 대책 이후 재건축 추진 자체가 힘들 것으로 예상됐던 아파트들이 한 달 사이에 매매호가가 최고 1억원까지 뛰면서, 집주인들 사이에서 매물 회수 분위기가 역력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한 소나기식 대책을 연일 쏟아낸 정부로선 상승을 거듭하고 있는 재건축 아파트에 난감하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관계 부처 장관과 기관 회의를 열어 재건축 제도 자체를 다시 정비하라고 할 정도로 강남 재건축 아파트는 참여정부의 최대 딜레마다. 정부가 재건축 추진 연한 연장, 개발 부담금 과세 등의 대책을 언급하자 강남 재건축 아파트 가격은 오름세가 꺾인 상황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최근 서울 재건축 아파트 상승률은 0.27%로 2주 전의 0.97% 에 비해 상승폭이 크게 둔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달 말 주간 상승률이 1%를 웃돌던 강남구 재건축 아파트값은 0.12% 상승에 그쳐 강남권 중 가장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그러나 이 같은 약세는 불과 한 달 전 강남 재건축 아파트의 오름세를 살펴보면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실례로 서울 송파구 잠실동 주공 5단지 35평형은 지난해 연말 10억2000만원 선이었다. 그러나 2월초 이 아파트 가격은 11억1000만원으로 한 달 만에 9000만원이 뛰었다. 용적률 완화가 무산된(210%→230%→210%)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34평형도 최근 10억원 대를 돌파하고, 요지부동이다. 주변 중개업소는 “지난해 말부터 9억5000만원의 보합세를 유지했던 로열층 시세가 10억원을 돌파했다”며 “정부의 규제 소식이 들리면서 찾는 사람이 줄었지만, 가격은 떨어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용적률 177%를 받아 200% 이상 나올 때까지 재건축 추진을 보류한 개포지구 아파트 가격도 큰 폭으로 오르기는 마찬가지다. 1월 초 9억4000만원에 거래됐던 개포주공1단지 17평형은 지난 2월 초 10억원에 육박했다가 최근 9억7000만원 선을 유지하고 있다.그러나 강남 재건축 아파트는 정부의 규제로 사업 진척이 느려질 수밖에 없다. 그만큼 투자 수익성이 낮다는 얘기다. 예컨대 정부는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경우 재건축이 추진될 경우 소형 평형 의무비율 적용에 따른 설계 변경이 뒤따른다. 또 임대아파트 건설 의무화에 따른 설계 변경 등으로 조합원 분담금 증가가 불가피하다. 또 건축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건축물 동간 거리가 기존 0.8배에서 1배로 증가하면서 신축 가구 수가 크게 줄어 분담금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설계 변경을 진행하면 건축심의 등의 인·허가 절차를 다시 거쳐야 하는데 이 경우에는 기반시설부담금제가 적용될 수 있다. 입주권이 주택 수 계산에 포함되는 만큼 조합원 지분 매도 시 양도세 중과에 해당되는 조합원도 상당수다. 규제와 함께 집값 변수 중 하나인 입주 물량도 넉넉하다.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올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 입주 예정 물량은 예년(8700호)보다 26%가량 증가한 1만1000호에 달한다. 최근 10년 동안 강남 3구 아파트 재고 증가가 1만9000호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이는 강남 주택시장의 안정 기조를 확고히 정착시킬 수 있는 엄청난 물량이라는 게 건교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문제는 각종 규제와 풍부한 물량에도 불구하고 강남 재건축 아파트 가격이 ‘청개구리 뜀박질’을 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왜 뛸까. 과거 강남 재건축 아파트가 보여준 뛰어난 투자 수익률이 그 첫째 이유다. 최근 최고가 아파트 자리를 위협하고 있는 강남구 도곡동 렉슬은 2002년 1월 재건축 사업 승인 당시 10평형 시세가 4억2000만원 선이었으나 추가부담금 약 9000만원을 내고 33평형에 입주하고 난 뒤 집값이 12억원이 됐다. 집을 팔지 않고 보유한 조합원들은 앉아서 2배 이상 이득을 챙긴 셈이다. 이는 강남구 대치동 동부센트레빌이나 잠실저밀도지구 내 재건축 아파트도 조합원이 1억원 내외의 분담금을 내고 수억~수십억원의 수익을 올리는 현상은 마찬가지다. 이처럼 재건축의 높은 수익률이 입증되자 강남권 아파트는 재건축 깃발만 꽂으면 수요자가 몰리고, 가격이 뛰는 것이다.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가격이 뛰는 또 다른 이유는 근본적으로 강남 진입 수요가 많다는 점을 전문가들은 꼽고 있다. 일부 투기 수요도 있지만 최근 강남 주택 구입자의 상당수가 실수요자라는 것이다. 양해근 우리은행 부동산 팀장은 “교통, 교육, 문화 등을 통틀어 강남만큼 좋은 곳이 없다”며 “경제적 기반을 잡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강남 입성을 추진한다”고 말했다.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도 가격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서울시 의회가 은마아파트 등 3종 일반주거지역의 용적률을 210%에서 230%로 상향 조정을 추진했고, 청담 한양아파트가 35층으로 건축허가를 받으며 압구정동, 여의도 일대 초고층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매물난 부족도 왜곡된 가격 상승을 주도하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즉 양도세와 취·등록세 등 거래세 부담 때문에 집주인들이 팔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따라 그 부담만큼 매매가에 전가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치동 A 중개업소 관계자는 “각종 세금이 중과돼 있다보니 (집주인들이) 팔고 싶어도 못 파는 실정”이라며 “그러나 대기 수요가 풍부해 세금만큼 웃돈을 붙여 거래되는 경우가 있고, 그 가격이 시세로 굳어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부동산 정책의 결정판이라며 내놓은 8·31대책이 입법화된 지난 1월에도 서울 평균 집값이 0.43%나 상승한 것은 규제 일변도의 정책의 한계를 드러내는 부분이다. 이사철을 맞아 실수요층이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시장 전체가 술렁일 정도로 주택시장은 구조적으로 취약하다. 강남에 대한 메리트는 여전한 상태에서 공급물량마저 틀어쥐고 있으면 자연히 기존 아파트 가치는 그만큼 더 뛰게 마련이다. 서승환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강남지역의 아파트 증가율이 최근 5년간 서울시 내 다른 지역보다 크게 낮아 최근의 집값 상승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강남권에 대한 공급책을 가다듬지 않고서는 집값 불안을 해소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 정책 발표 후 강남 집값이 뛴 ‘학습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과거 강남 부동산 시장은 정부의 의지를 거슬러서는 돈 벌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러나 2000년 이후엔 정부 정책이 나와도 집값이 뛰다보니, 정책과 엇박자 투자를 해야 돈을 벌 수 있다는 식으로 바뀌었다”며 “최근 강남 재건축 소유자들은 정권이 바뀔 때까지 기다렸다가 재건축을 추진하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고, 결국 재건축 아파트 가격 상승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고 덧붙였다.